빈틈을 가지고 먼저 다가갈 것

마음 나누고 쌓기

by 조이아


송별회, 헤어지는 시간이라는 걸 망각하고 그냥 회식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게 닥친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도 저 선생님들처럼 꼭 이 학교를 떠야지 하는 생각이 아쉬움보다 컸다. 출퇴근이 멀고, 작은 규모라서 업무가 엄청난 데다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오는 학교가 아니라 타시도 전입교사, 신규 교사, 신규 교감, 신규 교장선생님들이 오는 곳. 나 또한 서울에서 발령받아 왔으니 말 다 했다. 2월의 출근일 - 학교에서 전출 학교를 안내하고,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시간을 보내고 모인 식당에서도 나는 얼른 밥 먹고 어린이 둘이 있는 집으로 갈 생각을 했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떠나는 모든 분들에게 건배사를 하라고 제안하셨다. '엥?' 하는 마음이었는데 말 잘 듣는 우리 선생님들은 정말 한 명씩 앞에 나가서 그동안 어떠했는지와 남은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들을 술술 하셨다. 교직원 서른 두 명 중에서 여덟 분이나 이렇게 인사를 하셨다. 첫 번째로 앞에 나간 선생님은 막내에다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짧게 근무한 분이었는데, 이 분이 이렇게 선생님들 앞에서 말씀을 잘 하시나 놀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이 자리가 이별의 자리라는 걸 실감했다. 이 학교에서 근무한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이 다 느껴져서다. 저마다 맡은 업무가 많고, 저마다가 힘들었다. 편하게 근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홀로 일하는 사람들도 그 나름대로 괴로웠을 거다. 그분들이 모두 이 학교에서 많이 배웠고,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는데 - 전혀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 거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이 차오르면서 그분들의 진심이 들렸다.


인생의 장마철을 여기에서 보냈다는 동갑내기 선생님의 고백에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내가 휴직을 많이 해서 겨우 이 년을 같이 있었다. 같이 책 얘기며 수업 철학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선생님이었는데, 좋은 연수도 추천해주고 만날 때마다 서로 응원했는데, 그래도 외로웠구나, 고단했구나. 인생의 장마철을 보냈지만 여기 아이들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없었던 정체성을 찾았다는 고백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도 우리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의미 없지는 않구나. 오늘만 해도 이 선생님에게 업무를 인계받으면서 선생들이 쓸데없는 업무에 에너지를 쏟고 정작 수업 연구할 여력이 없다며 한탄했는데, 이런 것에 속상해한다는 자체가 수업 고민을 하고 있다는 투덜거림이었을 거다.

또 다른 동갑내기 선생님은 학기말에 몰린 업무로 바쁘게 지내다가 갑작스레 학교를 옮긴 분이다. 같이 학년부장을 하면서 고민도 나누고, 학교일을 상의하고, 같이 투덜거리기도 했는데도 늘 더 친해지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사정상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날 수가 없었고, 교무실도 달라서 자주 얘기 나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제도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만나야지 이런 얘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우리는 매주 두 번이나 회의 시간에 둘러앉아서- 물론, 우리 둘은 아니고 교장, 교감 선생님도 함께 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던 사이가 아닌가. 가끔은 서로의 교무실로 가서 옆자리에 앉아있다가 오기도 했고. 정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네.



옆 테이블에서는 작년 신규 선생님 두 분을 포함하여 동갑내기들끼리 하하호호 이야기가 넘친다. 부럽다. 옆자리에서 밥을 먹던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신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모임이 생긴다는 말씀에 더 큰 부러움이 일었다. 어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그게 벌써 이십 년이 되셨단다! 나는 왜 그런 모임이 없을까. 첫 학교 때에도, 그다음 학교에서도. 나는 늘 몸을 사리며 살아온 기분이다. 예전에 내가 떠난 학교로 부임했던 내 친구는, 실무사분들을 포함하여 선생님들과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같이 여행도 다녀왔었다. 나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졌다. 이제는 부러워만 하고 싶지가 않다.



나를 위안하자면, 얼마 전 생일에 첫 학교 선배 선생님이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주셨다. 그 선배 샘과 나는 어떻게 아직도 이어져있을까. 몇 년에 한 번꼴로 만나게 되는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내 젊은 날을 기억해주시는 것부터, 아이 옷도 물려주곤 하신다. 나는 나대로 선배님께 감사를 표현하곤 했다.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이어지게 하는 걸까? 같이 집단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정기적으로 만나 속내를 털어놓았던 그 시간들이 관계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은 '조이아'한테 이런 모습을 다 보이네 하며 눈물을 닦으셨지.

몸을 사리며 살아온 기분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좋은 면만 보이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깨달음은 이제 그만 쓰고 싶은데, 나는 늘 제자리구나.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얘길 늘어놨었네. 아직도 나에 대해 알아간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구겨진 마음들을 내가 펴는 기분이다.


학교를 떠나는 분들, 또 내 주위에 있는 분들께 더 이상 내 자리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무가 없어도 다가가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바쁘면 바쁘다고, 힘들면 힘들다고도 말하고 싶다. 나를 보이는 일에 나는 인색하다. 특히 부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고, 인간적이지도 않잖아.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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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서 선생님이 다른 부서로 갔고, 같은 학년 담임 선생님 하나는 또 같은 학년이 되었다. 예쁜 선생님들, 작년 여름의 길던 방학에는 그분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들로 마음을 키워야겠다. 우리 부서라서 챙기는 게 아니라, 든든한 동료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내가 챙기고, 나를 챙기는 사이가 되고 싶다. 꼭 모임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 가는 대로.

일단 어제 그 선생님들에게 일 없이 전화 한 번 해야겠다. 이제는 그분들이 없는 학교가 너무 적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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