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꺼
"매일 뒷머리 뒷목에 뻐근하고 아파.. 긴장형두통이시군요"
오늘 뉴스를 검색하다가 본 제목(news1, 2020. 5. 17.)은 딱 내 얘기였다. 며칠 전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던 게, 점심 먹고 일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아 화면을 보자마자 어어엄청 아팠다. (점심도 안 좋았던 것 같고, 회의를 앞두고 회의 준비를 안 해서 그랬나 싶다.) 코로나로 보건교사 미배치교였던 우리 학교에 근무하시게 된 보건 선생님은 나의 두통에 두통약만 주신 게 아니라, 마음까지 써주셨다. 긴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두통이 잦다면 목과 어깨의 긴장 탓으로 그럴 수도 있다며 도수치료도 받고, 자주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고. 심지어는 그다음 날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셨는데 나아졌는지 여부를 물어봐주시고 잠시라도 내려와서 마사지를 받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 몸 둘 바를 모르겠는 큰 감사함을 느꼈다.
꼭 오른쪽이 아픈 편두통인데 그전에는 모르겠고 이 학교에서 유독 두통약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집에서는 두통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학교에서의 두통이라면 뭔가 역사를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두통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내가 언제 언제 머리가 아팠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두통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으로, '아, 그때 머리가 아팠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다.
작년 복직 후에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학교운영위원회 일이었는데, 첫 번째 학교운영위원회 진행 날에는 두통약을 두 개나 먹었다. 협의회(회식)까지 있어서 거기서 다른 부장님과 주고받은 얘기 중에 두통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스트레스받으면 머리 아파. 오늘 힘들었구나." 하는 말씀을 해주셨던 게. 처음 맡은 업무인데 학부모와 지역인사도 오시고, 학교 선생님들 회의 순서도 챙겨야 했고, 위원님들이 식당까지 오시는 일,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나는 늘 귀만 열려있지만)까지 모든 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회의 전 3월에 있었던 학부모총회는 저녁에 이루어졌고, 내가 진행을 맡게 되었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년 학부모총회 때면 턱 부근에 커다란 뾰루지와 함께 했다는 것도 기억난다. 전에 담임했던 아이의 학부모님께 인사를 하면서 "선생님, 힘드신가 봐요.", "그러게요, 여기 좀 보세요. "했던 게 벌써 두 번이니.
보건교사가 없는 우리 학교에서 작년에 나는 몇 번이나 교무실 약통에서 두통약을 찾았고, 진통제가 없을 때면 보건 업무를 맡은 우리샘한테 가서 받아오곤 했었다. 큰 눈망울로 "많이 아프세요?"하고 걱정하던 우리 신규샘의 다정한 목소리가 기억난다.
어허. 그러고 보니 학교뿐만이 아니구나. 명절 때마다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시댁과 두통 - 이것도 나는 전혀 연관을 짓지 못했는데, 시어머님이 기억해주시고 말씀해주셔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두통은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두통이 없으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어떻게 하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나요? 나에게는 모든 게 스트레스인데.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끼리 지내는 일에도 나는 신경이 쓰인다. 학교에서 가장 작은 교무실이고 내가 가장 연장자에다가 부장이어서 다른 분들이 나를 신경 쓰면 썼지, 나로서는 신경 쓸 사람이 없는 편안한 공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과 편안하고 다정한 분위기로 지내기 위해 나는 뭔가를 신경 쓰는 것이다. 이분들이 나를 신경 쓰고 있지는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분들과 편하게 지낼까,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거? 그리고 또 그런 게 보이거든. 이분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예민한 편이다. 정말 별 게 다 신경 쓰인다. 잠시 티타임을 가졌다가 나는 내 할 일이 생각났는데, 어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내가 일어나 내 자리에 가서 일을 하면 이분들도 눈치 보고 그러는 거 아닐까. 몇 번이나 슬그머니 일어나서 일하고. 나 먼저 할 거 한다고 일어나면서 좀 더 먹으라고도 하고 그랬는데, 또 그때마다 나는 고민하는 것이다. 또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거의 다 먹고 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나는 또 언제 자리를 파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또 그 자리에서는 내 말 한마디에 바로 일어나는 분위기인 거다. 그런 위치가 나는 불편하다. 나의 줏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나를 어째야 하나. 타로카드라도 봐야겠다.
엊그제 스승의 날 오후에는 비슷한 나이 선생님들끼리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여러 차례 '좋다'를 연발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저녁, 팔을 쭈욱 펼치고 허리를 돌리면서 오늘 사회생활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이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냥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면 좋을 텐데. 지레짐작하고 판단하는 거 말고. 사람들과의 거리 때문에 내가 불편한 걸까. 신경 쓰지 않는 일은,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이런 말들이 너무 무섭다. 나도 모르게 신경 쓰고 있는 내가 참 싫다.
남편이 웬일로 작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아이 평생(10년)에 손에 꼽을 만한 일이다. 저 굵고 낮은 목소리가 나의 글쓰기를 방해한다. 저 책, 분량이 짧지 않은데 과연 끝까지 읽어주려나? 따로 책 읽고 있는 큰애가 방해받지는 않을까? 발음도 신경 쓰인다. 잘못된 발음을 아이가 배우면 안 될 텐데. 이런 거. 이제 그만 쓰고 가서 참견을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