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는 이유
달리기는 참 이상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에어팟을 귀에 꽂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일이 신이 난다. 그러면서도 할 때마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있다.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호흡이 가쁘고, 그러다가 괜찮아지면 이런저런 변명거리가 떠오른다. 밥 많이 먹고 너무 금방 달리러 나왔나? 맥주는 마시지 말 걸 그랬나? 화장실에 한 번 더 다녀올 걸 그랬나? 그러다가는 그 생각들이 사라지고, 다른 생각들이 밀려온다. 놓치고 있던 생각, 저 멀리 밀어두었던 생각, 나도 모르던 생각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겨우 30분 달리기를 해내는 나이지만, 나는 '러너'가 되어가고 있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몸의 말들>이란 책을 읽고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를 찾아서 보았다. (<몸의 말들>은 여덟 명의 작가가 쓴,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를 부제로 달고 있는 책으로, 몸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책이었다. 록산 게이의 <헝거>만큼이나 진솔한 고백들이라고 생각한다. 백세희 작가의 첫 번째 글에서부터 나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아르테 출판사의 아르테S 시리즈를 다 읽어보고 싶다.) 책에서 감독이 썼듯, 여성들의 몸을 바라보게 하는 영화였다. 내 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의 경험을 쌓아가는 일이 달리기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달리기로부터 시작했음을 자영은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달리기를 하다가 노래와 노래 사이에 음악이 끊겨서 내 발소리가 들릴 때면, 마치 내가 영화 속 자영과 현주처럼 가볍고도 힘차게 달리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 연상만으로도 힘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서 반환점을 돌고 나면, 내 머릿속에는 나도 모르던 생각들이 두서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어제 내가 만난 생각은, 이런 것이다. 자기보다 남들을 바라보면서 보낸 젊은 날,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늘 남들을 부러워하던 어린 날. 자기가 자기인 줄을 모르고 남들을 따라하던 어린 날. 그 자체만으로도 꽉 찬 존재인데 그것을 모르고 늘 몇 퍼센트 정도 부족하다고 여기던, 1이 될 수 없었던 내가 생각났다.
그런데 탁탁탁탁 리듬감 있게 달리는 지금의 나는, 그게 바로 내 모습인 것이다. 나로 꽉 차 있는 존재. 0.8도 아니고 1로서 우뚝 서 있는 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나의 모습이 여기 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의 모습이었다. 괜히 우울했던 중학생의 나, 어중간했던 고등학생의 나, 어설펐던 대학생 때의 나도 늘 내 존재가 충만해지기를 기다려왔던 것 같다. 첫사랑을 만났을 때에는 충만했을까? 그에게서도 내 결핍을 보면서 외로워했던 것 같다. 나를 나로 채우는 데에는 우정으로도, 사랑으로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내 두 다리로 달리고, 내 두 팔을 흔들면서 달리기를 하는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 손가락, 머리 스타일, 읽어 나가는 책, 말하는 방식, 목소리 모두가 나다. 그런데 왜 그리 남을 닮아가려 했을까. 왜 그리 자신감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을까. 달리기를 하는 나는 이렇게 나로 충만한 것을.
달리기는 자신과 마주하게 한다. 땀 흘리고 나서의 상쾌함,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달리기를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의 단상들 때문이다. 내가 달리기를 힘들어하면서도 동시에 기다리고 신나 하는 데에는 그 이유가 큰 것 같다. 어떤 생각이 들지 나도 모르는 데에서 오는 기쁨. 그것은 작게는 쇼핑리스트가 될 수도 있고, 내일 입을 옷차림이 될 수도 있고, 글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달리기가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지는 이유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2009, 문학사상
<몸의 말들>, 강혜영 외, 2020, 아르테
<아워 바디>, 한가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