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수업 첫 활동
이번 주, 중학교 3학년이 등교개학을 했다.(등교개학 전의 준비 사항과, 등교 첫 날의 우왕좌왕은 적고 싶지가 않다. 보건 업무가 있는 부서 부장으로서 부담이 매우 컸다. 학생들 등교 전날에는 퇴근하자마자 맥주 두 잔을 들이켰고, 그것은 등교 첫날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등교 둘째 날엔 퇴근하는 내내 하품을 하다가 집에 오자마자 사십분을 누워있었다. 오늘 금요일은, 금요일이라 다행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수업을 하다가 마스크를 먹을 뻔했다는 것은 말해 두고 싶다.)
앗, 괄호로 한 문단을 다 썼다.
학생들과의 첫 대면 수업시간이 있었다. 국어 수업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첫번째 활동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짧은 글을 쓰고, 말하기를 하기로 했다. 물론 3월이 되기 전부터 한 고민이자 계획이다. '십 년 후의 나를 소개해보자'는 어떨까. 뻔한 자기 소개 대신 미래의 나에 대해 말해 보자고 제안했다. 자아존중감도 느껴보고, 가능성을 가진 우리에 대해 말해 보자고 말이다. 사는 곳, 하는 일, 함께 사는 사람, 나만의 생활 방식, 이룬 것 혹은 앞으로 이룰 것 등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자신의 십 년 후의 하루를 써 보자고 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인 글은 다음과 같다.
내 나이 쉰. 학교를 휴직하고 파리에 와 있다. 파리 6 대학에서 연구를 하겠다는 남편을 따라 이곳에 다시 왔다. 아이들은 할머니네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예전에 일 년 살아본 경험으로 프랑스어를 조금씩 놓치 않은 덕에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없다. 나의 하루는 이렇다. 일어나자 마자 세느 강 쪽으로 슬슬 걷는다. 웜업이 되면 세느강변을 달린다. 30분 정도 달리면 생 루이 섬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코스다. 집 앞 빵집에서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사는데 오늘은 열 살도 안 된 것 같은 아이가 바게트를 사러 나왔길래, 먼저 사게 했다. 과일가게 무슈는 오늘도 부지런하게 가게를 단장한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맡아보는 바게트 내음은 식욕을 돋군다. 적당히 땀이 식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사과 반 쪽과 커피까지 마시고는 샤워를 한다. 오전에는 글을 쓴다. 이번에 낼 책은 내가 만난 학생들과의 오래된 관계에 대한 글이다. 나의 책은 다 학교와 관련된 책이다. 만난 학생들에 관한 책, 학생들의 글을 엮은 책, 학생과의 상담을 통한 성장담으로 책을 세 권 냈다. 삼 년에 한 권 꼴로 낸 셈이다. 이번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연락을 주고받는 제자들과 관련된 책으로, 파리에서의 추억도 담길 예정이라 글 쓰는 장소가 맞춤하다. 오전 세 시간 글쓰기를 하고 나면, 남편 연구소 앞으로 가서 같이 점심 식사를 한다. '주씨유' 역은 시테섬과 가까워서 우리는 파니니를 하나씩 사서, 강변에서 먹기도 하고 혹은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자주 가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 남편이 연구소에 들어가고 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서점 등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낸다. ... 남은 인생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책을 내면서 보내고 싶다.
(이렇게 자세하게 쓰지는 않았는데, 또 브런치에 쓰다보니까 상세하게 쓰고 싶어졌다.)
일곱 줄 정도의 글을 읽어주면, 학생들은 똘망한 눈빛으로 나의 상상력에 힘을 실어 준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다음 시간, 학생들의 십 년 후를 듣는 일은 흥미로웠다. 스물여섯 살의 그들. 나처럼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체로는 현실감각이 있는 아이들이라서 취업 준비라든지, 고양이 한 마리와 살겠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여전히 예민한 큰아이, 코로나 시대의 학교 생활의 고됨이나 2주 간 교생실습을 마치고 간 선생님 이야기 등), 오늘 수업시간에 한 활동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나의 십 년 후를 발표했지. 그러자 이어지는 남편의 십 년 후는 이렇다.
내 나이 쉰 하나. 운석이 떨어진지 삼 년이 지났다. 하늘은 까맣고 하늘 밑 모든 것들에는 재가 쌓여 회색빛이다. 운석이 떨어지면서 인류의 삼분의 일이 사라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인류는,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는 그나마 하늘이 트여 있고, 숨을 쉬기에도, 함께 살기에도 그럭저럭 괜찮다. 내 아내는 자주 <이건 책이 아닙니다>라는 책을 꺼내 들여다본다. 가끔은 손가락을 꿈틀거리기도 한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아내를 위해 자주 산책을 시킨다. 아내는 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안쓰러운 마음뿐이지만 특히 성인 남자를 만나면 자꾸 물슈? 므시? 뭐라고 해, 내 입장은 곧 난처해지고 만다. 아무래도 '무슈'라는 단어인 것 같다. 내 아내는 운석이 떨어질 때 머리를 다쳤다.
나는 남편의 스토리 스틸러가 되기로 한다. 앞으로 발행하는 글들도 그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로 한다.
여기까지 쓴 글의 맞춤법 검사를 했는데,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늘의 글은 맥주 두 잔과 함께였다. 내가 어디에 부딪혔던가?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이건 책이 아닙니다>는 장 줄리앙의 그림책(키즈엠)
<Ceci n'est pas un livre> Jean Jullien(Phai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