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인지

교감 선생님, 김신지 작가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작가님께 감사를

by 조이아

교감 선생님이 바쁘냐고 잠시 걷자고 하신다. 본부 교무실에 가서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 상의드리고 나서였다. 왜 그러실까 의아해하며 나온 건물 바깥의 해는 뜨거웠고, 우리는 마스크를 챙겨 쓴 채였다.


둘만의 산책이라니 이는 무슨 연유인가 궁금하면서도 그늘만 골라 디디며 나는 나대로 그동안 상의드리고 싶었던 일들을 숨차게 쏟아 냈다.(마스크 때문이다.) 주로 독서 업무에 관한 일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도서관 일을 진행하기란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평가를 위해서는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를 들면 독서 행사의 경우, 아이들을 남겨서 한 곳에 두는 일 자체가 힘든데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시 낭송회 행사로 이동식 사람 도서관을 생각해 냈다.(코로나 상황과는 별개로 시 낭송회는 6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교실에 앉은 채로 교사들이 순회하며 시를 낭송하는 시간. 아이들은 미리 인쇄된 시들을 받아 읽고, 어떤 선생님이 무슨 시를 좋아하고 골랐을까를 맞히는 거다. (젊은 선생님들이 많은 우리 학교에서 시를 낭송할 그들은 학생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학생들은 그들대로 맞히면 상품을 받고.) 시를 눈으로도, 귀로도 감상할 수 있고, 필사도 해보자는 독서행사! 전교생이 참여하는 독서행사! 얼마나 멋진가! 며칠 전부터 생각하면서 혼자 신나서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한테 얘기하곤 어떠냐 묻던 일이었다. 내가 숨 가쁘게 이런 계획에 대해 두서없이 말씀드리자 교감 선생님은 다행히 좋은 아이디어라며 격려해주셨고, 그렇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까 차차 해보자고 하셨다. 가뜩이나 국어 교과셨던, 게다가 작년까지 독서교육 업무를 하셨다던, 작년에 성장소설만 70여 권을 읽으셨다던 교감 선생님의 평가가 두려웠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격려를 해주셔서 나는 조금 고무되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곧바로 용건을 꺼내셨다. 그래서 나는 뭔가 크게 혼나려나 싶어 금세 주눅 든 마음으로 태세 전환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직전에 본부 교무실에서 상의드린 일에 대한 처리를 너무 늦게 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보통 3월에 해야 할 일인데 이제야 진행하는 데에는 물론 코로나가 그 원인이지만, 그래도 등교 개학 전에 미리 처리해둘 수도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감선생님은 내게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칭찬을 해주시면서 (나는 속으로 많이 당황했다, 왜 그러시지? 나 또 무슨 일을 시키시려나 하고.) 교육전문직 준비에 대해 권유해주셨다. 또다시 나는 나한테 왜 이러시나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알을 굴리고, 속으로 전문직이란 무엇인가를 되뇌었다. 나는 정말로 교육전문직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당신이 내 나이 때에는 이런 말 해주는 분도 안 계셨다며, 내가 이런저런 조건이 좋고, 지금까지 지켜보니(교감 선생님을 뵌 지 고작 삼 개월이 넘었다. 그렇지만 내가 어쩌다가 올해에 일명 코로나 부서의 부장으로서, 보건과 정보, 그러니까 코로나 대응과 원격수업 업무 폭탄을 맞았는데, 그것을 어찌어찌 겨우겨우 치러내는 꼴을 보시고 하는 말씀이셨다. 나는 코로나 덕분에 불안감과 두통에 시달렸고, 현재는 등 여드름이 확 퍼진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며, 아직도 너무 많은 공문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우리 부서 선생님-신규 선생님과 4년 휴직 후 복직하신 선생님이지만 엄청 든든하다-에, 새로 오신 보건 선생님에, 보조 인력 선생님까지 함께 해주셔서 여차저차 무능을 가리고 있는 참이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다만 생활지도 업무 점수가 없는데 그것은 이러한 길이 있으니 생각해보라는 거였다. (내가 이 학교를 떠나기를 원하시나 싶다가도, 올해만 지나면 집에서 좀 더 가까운 학교로 옮기길 원하는 걸 알고 계셨으므로, 우리 학교에 좀 더 있으면서 파견을 나가면 어떻겠냐는 말씀까지 해주신 걸로 보아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교감 선생님 덕분에 너무도 오랜만에 나의 1정 점수(1급 정교사 자격 연수 시험 때의 점수로, 십 년도 전 일이다.)도 복기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는 교육전문직이라는 실체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딱 그 산책 시간 동안만이었다. 그런데 그 내가 전문적으로 일처리를 해내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해낼 수 없을 것이 당연하며, 내가 아는 그분들의 겉모습과 목소리들을 떠올렸더니 그분들의 업무 과로 이런 게 느껴지면서 '참 별로다'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아 난감했다. 내가 꿈꾸는 삶이 전혀 아니어서(저는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작가 하고 싶어요.) 속으로는 땀방울이 주르르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겉으로는 "네~네"하며 또, "이런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영혼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끝으로 꽤 오랜 산책이 끝났다.


언젠가는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는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드디어 놓여나서 내 볼펜과 문서를 찾으러 본부 교무실로 되돌아 갔고, "더웠지? 아이스크림 좀 먹어요." 하는 말씀에 거기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얻으면서 "저는 한 개로는 안 됩니다, 네 개 주세요." 해서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과 나눠 먹었다. 그리고는 덥고 부풀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제자리에 앉아서 독서교육 업무에 열을 내기 시작했다.


독서교육에 관한 일, '맞아, 역시 내가 재미있게 하는 일이 최고야'라 생각하며. 그래서 겨우 한 시간 남짓만에 신나게 '도서관 활용 수업 계획' 열네 쪽짜리 문서를 완성했다. 기껏 시 낭송회 아이디어나 생각해내고 있었는데(6월이 되었으므로), 도서관 활용 수업 계획(독서동아리 사업을 안 하기로 하면서-코로나 때문에 아쉽지만 마음을 접었다- 이번 학교 평가에 필수적인 항목이다.)이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진척을 낼 수 없던 일이었다. 코로나 비상 상황에서 도서관이란 활용할 수가 없는 특별교실이었고, 현재 학급 도서도 교실에 들여놓지도 못한 상태여서(공용 물건을 사용하면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모든 독서 업무는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도서관을 활용하게 될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계획을 어떻게 세우냐는 회의적인 마음이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했었는데, 전혀 다른 방향의 격려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힘이 나는 것이었다. 작년에 하던 도서관 수업 자료를 뒤적여 내용을 넣고 나니 도서관 활용 수업의 목적과 방향과 세부 추진 내용과 기대효과까지 어느 정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물론 많이 허술하다, 추진 시기부터가 코로나 비상 상황 종료 후니까. 그렇지만, 이 계획서를 작성하는 내내 왠지 모를 에너지가 내 몸에 흘렀던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혀 엉뚱한 것이라도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은 당사자를 북돋아준다. 나는 내가 정말 빈틈이 많고 아는 게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내 허리를 곧추 세워주고 뇌마저 반짝이게 하였다.




이 글을 쓴 데에는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다가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겼고, 마음이 동했던 것은 일에 대한 글이었는데, 그 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뒤죽박죽인 이 글을 쓰고 나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지만, 이렇게 내 일에 관한 글이 작성되었다. 요즈음 구독하고 있는 '어떤 요일'에서 특별히 김신지 작가님의 '월요일의 엽서가게'가 늘 내 마음을 흔들었으므로, 그냥 그분의 글에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던 거라고 결론 내려 본다. 잠시나마 헛생각으로 부풀었던 나를 현실에 있도록, 또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해주신 교감 선생님과 김신지 작가님께 감사를 전한다. 우리 지역 최고 미녀라는 우리 교감 선생님, 참 따뜻하셔서 한 번씩 내 등을 두드려주시는데, 요즘 같은 등 여드름 상황에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라는 것을 한 줄 추가한다.

도대체 무슨 글일까, 이 글은. 이런 식의 글을 쓰니까 오랜만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작가님도 떠오른다. 신간이 나온 것 같던데 찾아 읽어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등교 개학, 십 년 후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