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이웃 할머니

봉주르, 마담.

by 조이아

다산책방에서 나온 <나의-할머니에게>에는 할머니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여섯 편 실려있다. 그중에서도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는 왠지 모를 아련함을 주었는데, 배경이 파리라서 그럴 수도 있고, 할머니에게 일어난 연애 사건(Love affair)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우리 남매를 키워주던 할머니는, 아버지의 발령으로 함께 파리로 가 몇 년을 지낸다. 식구 모두가 각자의 생활로 바쁜 와중에 할머니의 고독은 커져갔고, 그 틈에 들려온 피아노 소리로 한 프랑스 할아버지와 언어가 아닌, 음악과 눈빛과 존재로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


일 년 간의 파리 생활이 환기되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프랑스어를 읽어보고, 할아버지는 베토벤을 이렇게 발음했겠지 상상해보고.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낯선 나라에서 남겨진 혼자만의 시간, 낯선 언어 속에 혼란스러워하던 나도 생각나고. 그러다가 나의 아름다운 이웃, 파리에서 자주 마주쳤던 우리 라인의 할머니들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들에 관한 기억이라면, 이른 아침부터 맥주를 시켜 바에 서서 드시던 모습들. 카페에서 추근대던 거밖에 없어서. 그래, 벌써 나는 그런 나이인 것이다. 예에전에는 젊은 남자들이 말을 걸어왔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들의 관심을 받.... 내 커피 값을 계산해주겠다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 할머니들은 잘 지내고 계실까. 코로나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답답하실까.


우리 라인의 할머니로 기억하는 분들은 두 분인데, 한 분은 우리 위층에 사시던 지적인 인상에 은회색 단발머리를 하고 키도 크시고 늘씬한 분.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식구들과 만났을 때 인사를 주고받다가 우리가 한국에서 온 걸 아셨다. 따님이 서울에 있어서, 한국에서 지내던 적이 있다고 하셔서 더욱 반가웠다. 손주가 아침마다

"~~슴니다~"

라고 했다며, 몸을 굽혀 꾸벅 인사를 하시며 따라 해 주셔서, 내가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맞다며 함박웃음을 보내주셨다. 종종 마주칠 때마다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셨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잘 지내고 있니?' 하는 다정한 염려가 느껴졌었다.


또 한 분의 할머니는, 늘 보랏빛 또는 분홍빛의 아이섀도와 금빛 머리칼에 구불구불 힘을 주고 다니셨던 분이다. 그 멋진 화장 위에 금테 안경을 쓰시고 빠르지 않은 걸음걸이와 몸짓이, 우아하다기보다는 조금은 난해하기도 하고, 왠지 무서워 보이기도 하는 인상이었다.

"봉주르, 마담(Bonjour, madame)!"

하고 인사할 때마다 같이 인사는 해주셨지만 약간은 도도해 보이는 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몇 초가 흐른 후에 몇 층 사냐고 물으셔서,

"11층이요."

대답했더니, 너희는 11층이 아니라 12층에 사는 거라고 바로 정정해주셨다. 프랑스는 우리의 1층이 0층으로 되어 있다. '그래도, 뭐, 엘리베이터는 11층을 눌러야 하는 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또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에는 내가 층 버튼을 대신 눌러드리기도 했는데, 이분은 내 프랑스어 실력(?)을 모르시고 두런두런 말을 걸어주시기도 했었더랬다. 매우 다행히도 할머니는 말씀 또한 걸음걸이처럼 느려서 나는 겨우겨우 내용을 추론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집 난방이 나오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중앙난방이었는데, 처음엔 매우 약하게 스팀이 나와서 나는 한국에서 부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이불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모노프리에 가서 이불을 샀던 때였다. 파리는 생각보다 일찍 추웠다. 할머님의 물음에 나는 '약하다'가 어떤 단어더라 얼른 생각하다가 '세지 않다'라고 대답했고,

"맞아요, 저도 춥더라고요."

등 아는 단어를 반복해가며 대답을 했다. 그 후로 한두 번은 더 우리는 서로 집이 추운가 괜찮은가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할머니도 나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집 앞의 야채 가게나, 생선 가게나 슈퍼마켓을 들르시는지 우리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자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같은 머리 모양에 눈이며 입술엔 공들여 화장을 한 모습이셨다. 아, 또한 가을부터 봄까지 주야장천 무스탕 한 벌을 걸치고 다니셔서 그분의 시그니처로 보였는데 그 색은 할머님의 머리칼 색깔처럼 진한 노란빛이었다. 날이 꽤 푹할 때에도 그 옷을 입고 다니셔서, '저분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타시는구나, 그래서 우리는 늘 추위에 대해 이야기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됐다.


어느 날 남편이랑 장 보러 가던 길에 집 앞 골목에서 할머니와 마주치고는 꽤 오랜만에 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늘 뽕이 들어가 있던 머리칼에도 힘이 빠져있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팔에 깁스를 하고 계신 거였다. '어머나' 같은 말은 프랑스어로 뭐더라. 모르겠어서 나는 그냥 늘 하던 인사로

"봉주르, 마담. 싸바(Bonjour, madame. Ça va)?"

하고 인사를 건네니까 안 좋으시다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셨다.

"왜요?"

라고 여쭙자, 넘어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무척 애처로운 표정으로 간절한 눈빛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도 멍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안 됐네요."

"자신을 돌보세요."

하고 내가 아는 문장만 말하고,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내드렸다. 그러면서도 그 도도하시던 할머님의 얼굴에서 이토록 안쓰럽고 간절한 표정이 나타난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할머니 뒤엔가 앞에는 할머님의 손자뻘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있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내 프랑스어 실력이 드러날까, 또는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 금세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지나치고 나서도 할머님의 우리를 향하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하고도 얘길 했지만, 우리가 뭐라고 우리에게 그토록 애절한 눈빛을 보내주셨던 걸까.

나는 앞에서 언급한 할머니와는 달리, 이분은 지나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왠지 까칠한 고모 같은 기분이 늘 들었다. 어쨌거나 초췌한 모습의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나는 꽤 오랫동안 마음이 이상했는데 혼자 모락모락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저 할머니, 뭔가 정이 그리우신 걸까, 집에 초대해서 커피라도 한 잔 내려드릴까, 한국 음식이라도 맛보시게 해야 하나 등등.


한국으로 이사 오기 전에, 할머니를 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내 표정이 언제 간절했냐는 듯 다시 도도한 할머님으로 돌아가 계셨다. 흐흐.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할머님의 그 애처롭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던 걸까, 내가 어떻게 해드렸다면 좀 더 위로가 되었을까. 어깨라도 쓰다듬어 드릴 걸, 아님 안아드릴 걸 그랬나. 우리는 어쩌면 좀 더 친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나이듦에 관해 공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 소설에서처럼 꼭 프랑스어가 아니어도 말이다. 시크한 프랑스 할머니의 느릿느릿하고 다소 걸걸한 목소리가 오늘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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