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마음

반성의 기록

by 조이아

드르륵, 앞문이 열렸다. 2월의 졸업식날이었다. 학생들과의 마지막 날, 식을 마친 교실에서 졸업장과 메시지를 써넣은 사진 한 장씩을 일일이 나눠주고, 우리 반을 향해 말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물론 교실 뒤편에는 학부모들도 서계셨다.

갑작스레 등장한 아버님의 모습에, 나는 그가 누구이며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를 퍼뜩 알게 되었고, 놀란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아버님,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안 그런 척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가족 중 아무도 아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없었겠지. 교무실로 들어와, 나를 보며 '이 어른은 믿어도 되는 걸까' 망설이던 아이 친구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언제나 초코파이며, 과자를 들고 다니던 아이로 알고 있었다. 유독 군것질거리를 들고 다녔고, 그걸 친구들에게-친구라 부를 수 없는 애들에게도- 주는 걸 자주 목격했다. 직접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우리 반이 되어서도 아이는 내내 밝았다.


가을이 막 지난, 겨울 무렵이었나 보다. 고등학교 관련한 개인 상담을 자주 하던 한철이 지나고, 아이와 단짝 친구 둘이 나를 찾아왔다. 아이보다도 친구가 더 적극적으로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몸이 아파 늘 누워있다는 아버지, 집안에 담배 냄새가 배어있다 했다. 반 아이들은 아이에게 나는 냄새에 대해 여러 차례 내게 제보를 하기도 했다.


무거운 얘기를 한 게 먼저일까, 팔과 다리의 커다란 멍을 보여준 게 먼저일까. 흐릿한 기억이 내 태도 또한 흐릿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사진도 남겼고, 상담 기록도 남겼고, 부모와 통화도 시도했을 것이다. 학교에도 알리고.




사진동호회에서 어느 휴일, 민속촌 출사가 있었다. 일행 없이 조금 늦게 따로 향했다. 합정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갔던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고, 버스에서 내려서 일행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했다. 버스에서는 아이의 어머니였다. 선생님이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렇다고,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얘길 하셨다. 그러나 내가 길게 통화를 한 상대는 어머니가 아닌, 오빠였다. 가해자인 오빠가 내게 말했다. 굵고 느릿한 목소리로, 동생이 담배를 피우고 놀러 나가는데 그걸 그냥 두냐고.


통화 내용보다도 상황 자체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고등학생인데, 동생 담임을 가르치려 들고 있고, 그 옆에서는 어머니가 다 듣고 있다. 소통은 되지 않았다. 각자 같은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배가 아파왔다. 격렬한 대화가 이어졌다. 내 목소리는 분명 떨렸을 거다.

내가 전화에 대응하느라 예상 도착 시간보다 늦어,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식당에 도착한 나는 복통이 계속되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날 무슨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얼이 빠져서 하염없이 걷다가 겨우 코코아 한 잔을 마시고, 밤이 되어서야 나아진 기억.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도 아니고, 폭행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닌 그 잠깐의 시간이 위경련을 불러왔다. 하물며 수시로 얼굴을 보고, 험담을 듣고, 아픔을 겪었을 아이는 어떠했을까. 게다가 그 상황을 부모가 묵인한다면.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부장님께 상의를 드렸다. 마침 부장님은 그 오빠를 가르쳤다고 하셨고, 집안 분위기도 파악하고 계셨다. 여러 가지 절차와 처리 과정을 알아보신다고 하셔서 나는 조금 안심했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음에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내게 도착한 소식은, 형제에 의한 것은 가정폭력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신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전이었다. 허탈했다. 그 오빠라는 형제는 고등학교에서 운동을 한다는데, 그 주먹으로 아이를 때리고 있는데 말이다. 부장님은 오히려, 너무 개입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많이 실망스러웠고. 따로 상담 부서의 개입이 있었는지 어쨌는지의 기억은 없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렇다.


졸업식 전에 아이는 집에서 나온 모양이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졸업식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전화였다. 아이를 찾으러 오겠구나, 예감은 했다.


졸업식 행사가 끝나고, 담임 시간이었다. 교실 앞문을 활짝 연 채

"OO, 어딨어?"

하는 그분을 향해

"아버님,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옆에 앉았던 단짝과 얼굴을 마주 보았고, 학생과 학부모님께 아쉬운 인사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축복의 말들을 쏟아내던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마쳤나 모르겠다. 처음 치르는 졸업식에 아이를 따로 붙잡아 두는 것도 못 했던 것 같다.




졸업과 입학 사이의 붕 뜬 시기에 청소년 쉼터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안심이 되는 동시에 걱정도 됐다. 거길 찾아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했다. 아이가 등록하지 않았다고 연락을 주던 고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지만, 졸업생들로부터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고.


<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 레모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을 읽었다. 흔들리는 청소년 이야기와 더불어 교사와 엄마 또한 휘청거리는 이야기가 학대와 무관심을 중심으로 펼쳐진 소설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휙휙 읽어나가고 마지막 부분을 보고서야 숨을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겠지? 그럴 거야.'를 되뇌며.

그리고 곧 내가 행한 방임이 떠올랐다. 나는 진실하지 못했고, 비겁했다.

첫 학교였다. <내 생애 아이들>을 읽으며, 나도 이런 책을 썼으면 좋겠다 했던 때였다. 이제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그 아이들에 대해 쓸 수 있는 거였다. 그래야 기억도 잘할 수 있는 거였다. 흐릿한 기억을 가진 나는 반성의 기록밖에 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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