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전하는 일

중학생이랑 메일 주고받기

by 조이아

메일 쓰기의 즐거움을 체험하고 있다. 상대는 1학년 때부터 봐오던 학생으로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다. 반듯한 모범생 타입으로 빨간 머리 앤처럼 마르고 예쁘장한 얼굴에 윤기 나는 머리칼이 길다. 수업 중에 종종 졸음과 싸우는 모습도 보았지만, 보통은 눈을 빛내며 집중하는 모습에 그 아이를 보며 설명한 적이 많았다. 2학년이 되면서 키가 부쩍 자라서 크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냐는 인사를 하기도 했고, 키뿐만 아니라 마음도 쑥쑥 자라는 그 아이를 이제부터 (앤 같이 감정을 바로 드러내지는 않고 다이애나와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 다인이라고 부르겠다.

다인이는 책을 많이 읽어 교내 독서 대회에서 상을 받곤 한다. 12월 독서기록 결산을 위해 다인이의 일 년 간의 독서기록을 읽다 보니, 1학년 때와는 달라진 게 느껴졌다. 책을 골라 읽는 취향도 나와 비슷해졌고, -물론 내가 추천한 책들이 있었으니까: 수업 중에도 수시로 책을 소개하지만, 다인이를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추천해주기도 했다- 독서록에 담아 놓은 생각들이 기특하기도 했다. 다인이랑 독서동아리를 하고 싶었는데, 교내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다인이가 지원하지 않아서 나는 혼자 서운하기도 했다.


한 번은 다인이에게,

"다인이는 힘든 일을 털어놓을 어른이 있어?"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동공이 흔들리면서

"모르겠어요. 없는 것 같아요."

라 답하는 다인이에게, '누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라 말하면서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늘 바르고 모범적으로 지내는 다인이는 무엇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까에 대해서도 물었다. 내가 아는 다인이는 속으로 삭이거나,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할 데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인이는 그것도 잘 모르겠단다. 물론 무척 친밀한 단짝 친구가 있고, 둘은 서로에게 언니처럼 동생처럼 잘 지낸다.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가정환경에 대한 정보를 통해, 다인이가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이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1학년 때 다인이가 쓴 수필이 그런 얘길 했고, 간혹 조는 모습을 볼 때에도 다른 학생들과 다른 이유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인이를 따로 불러 독서록을 돌려주면서, 쪽지 한 장과 수첩 한 권을 건넸다. 쪽지에는 다인이랑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요지의 글과 함께 내 메일 주소를 적어 두었다. 다인이는 자기만 오라고 해서 혼나려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선물을 받았다며 웃으며 돌아갔다.

그 주말에 메일이 왔다. 책을 매개로 얘기하고 싶다는 나의 요점을 정확하게 반영한 메일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이 추천한 그 책을 이제 읽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치만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써 주어서, 나는 다인이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아이는 누군가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다인이에게 메일을 받고 바로 답장을 했다. 다인이의 근황에 대한 나의 느낌, 내 어린 시절 이야기와 중학생 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책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렇게 메일을 주고받기를 벌써 아홉 차례. 다인이가 쓴 메일은 간혹 책 얘기만 할 때도 있었지만,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었다. 그 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두근두근했는데,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나 궁금했기 때문이고, 읽고 나서는 안타깝고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났다.


다인이를 향한 메일을 통해 내 중학생활도 떠올려 보며 나도 그랬다는 얘기로 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신의 생활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힘들 땐 힘들다고, 슬플 땐 슬프다고 말할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종업식 날 다인이에게 책을 선물했다. 메일을 주고받다가 떠오르는 책이었다. 요조와 임경선의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둘이 서로 교환일기를 주고받듯 우리는 메일을 주고받는다. 이제는 다른 학교에서 생활할 우리가 인연의 끈을 이어 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책의 띠지에 적힌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닌가. 메일을 쓸 때면 신기하게도 예전의 내가 생각나고, 해주고 싶은 말들도 떠오른다. 나 또한 장녀라 누가 옆에서 생활에 대해, 감정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메일을 쓸 때면 나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게 생기는 기분이다. 내 안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라니, 그 실체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렇게 신나서 다인이에게 메일을 쓰는가 자문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한국어판 서문을 읽다가 이런 부분에 꽂혔다.

'닐 타이슨에게 보내는 칼의 답장 편지도 나왔다. 브롱크스 소재 한 고등학교의 학생이던 닐이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칼에게 문의한 이후, 둘은 서로 존경하고 격려하는 관계였었다.'

'둘은 서로 존경하고 격려하는 관계'였다니, 나도 저런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거라는 확신이 든 거다. 책 속에서 내 생각을 마주한 셈이다. 다인이를 향한 격려는 일방적인 게 아니다. 나는 다인이가 보낸 메일에서 나를 긍정하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안심한다. 다인이에게 믿을 만한 어른으로 인식되어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 예의 바른 다인이가 하는 인사말과 감사의 표현이 내 안에 들어와서 포근하게 쌓인다. 중학생 아이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는 내 안의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가 받지 못했던 위로의 말들을 그에게 건넨다.

'방학이니까 충분히 쉬어, 그래도 돼.

게으르게 지내도 괜찮아.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썼어.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어.

괜찮아.'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지금 너 자신만으로도 충분해.'


나의 다정함이 따스하게 가닿아, 아이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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