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짓을 실컷 했다

이제는 후배가 된 제자에게

by 조이아

꼰대 짓을 실컷 했다. 정말로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도 했을 거다. 가물가물한 이십 년 전의 기억을 더듬느라 뇌와 혀가 빠르게 움직이진 못 했다. 그럼에도 내 얼굴은 발그레했을 거고, 입가는 위로 올라가 있었을 테다.


아끼는 제자가 나의 후배가 되었다. 합격 소식 이후로 두 번을 만났는데, 한 번은 함께 걷자고(아니, 달리자고!) 운동복을 입고 만났고, 한 번은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된 내 생일을 즈음해서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달릴 수가 없었다. 얘기하느라 바빴다. 걷는 내내 호흡이 가쁘고, 몸이 더워졌더랬다. 우리는 스무 살의 앞날을 이야기하다가, 과거의 스무 살 무렵의 나를 그려보다가 그랬다.

"선생님은 그때 어땠어요?"

를 묻는 사람이 있다니!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번째 만남도 그랬다. 공통분모를 하나 더 갖게 된 우리는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 때는'을 이야기할 기회가 어디 있었던가. 첫사랑도 생각나고, 새내기 때 오티며 어리바리하던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것인가? 그건 모르겠다. 입학을 앞두고도 복수전공이니 취업이니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현실이 너무 무거워서다.


리더십도 있고, 꿈도 원대한 아이에게서 나와 닮은 데를 찾기란 어려웠다. 국문학을 좋아한다는 것과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 정도? (프랑스어로 치면, 나에게는 작은 관심이지만 아이에게는 큰 열정이 있을 것이니 공통점은 관심이다.) 더 큰 공통점으로는 편지 쓰기를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일까? 사십 년이 넘게 살도록 내가 한 사람에게 받은 편지의 양으로 따지면, 이 아이에게 받은 게 최고로 많을 거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다니면서 주고받던 편지도 댈 게 아니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주고받던 친구들과의 편지도 댈 게 아니다. 첫사랑 남자아이도 이 정도의 양은 아니었을 걸.(하고는 고민한다. 우리는 월간 '좋은 생각'에 메시지를 써서 주고받기도 했었네...아 몰랑.)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던 딱 일 년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지내던 것이. 내가 휴직을 했고, 해외에 있었고, 아이는 고등학교에 갔으니! 학교에 있을 때에도 스승의 날이라든가, 아님 학교에서 편지 쓰기 행사를 할 때에도 편지를 받은 것 같다. 그보다 자주 하트를 받았고.(언젠가 썼던 것처럼, 쪽지에 그린 하트라든가, 음료수 플라스틱 조각이 하트 모양으로 된 사진이라든가) 일 년에 두세 번, 만날 때마다 아이는 나에게 편지를 준 것 같다. 한 통씩 건넬 때도 있었지만, 왕창 한 뭉치를 주거나, 작은 수첩 하나에 꽤 긴 시간에 걸쳐 내게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다. (앗 잠깐, 나와 책장을 공유하는 소울메이트 친구에게 받은 편지와 비교하면 일이위를 다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양으로는 아이가 준 편지가 일 등인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편지를 쓸 만큼 나를 엄청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공부하느라 바빴을 아이에게, 나에게 편지 쓰는 시간이 쉬는 틈으로 기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본인 말로 그동안 이성친구나 연예인에 빠진 적도 없다고 했으니. (그러나 코로나 시기부터 덕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나 또한 편지쓰기라면 자신이 있는데 내가 중3 때 하던 편지쓰기 방식을, 아이에게서 받아보고는 크게 감동했다. 뭐냐 하면 수첩 하나를 정해서 한 사람에게 주야장천 편지를 쓰는 거다. 친구의 생일을 준비하는 나만의 이벤트였다. 일기와도 같은 편지를 글쎄 제자로부터 받다니 정말 말을 잇지 못할 만큼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뭐라고'하는 마음도 들었고, 한 장씩 넘기면서는 고마운 마음과 아이의 생각이 이만큼 자라고 있다는 느낌에 벅차오르기도 했다. 편지 뭉치를 받을 때에도 그랬다. 차곡차곡 모아서 건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아이와 만나고 올 때면, 그리고 반듯하고 작은 글씨로 자신의 일상과 느낌을 공유하는 아이의 편지를 읽을 때면, 잘 살아야겠다고 자꾸만 다짐하게 되었다. 더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선배와 후배의 인연까지 맺게 되어서, 우리는 무척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되 어렸을 때 했던 실수들도 더 얘기하고 싶다. 내가 받았던 상처라든가 내 허물을 좀 더 보이고 싶다. 아이가 세상을 접할 때 너무 두려워하지 않도록, 덜 완벽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완벽에 가까워지느라 너무 고생했을 아이에게, 이런 모습도 괜찮다며 좀 더 편안하게 한 방향을 향해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는 내가 더 자주 아이의 앞날을 응원해야겠다. 스무 살의 청춘은 더 이상 내게 편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만하고도 또한 지칠 만큼 바쁘기도 할 테니! 엊그제 나의 생일을 즈음해 만나기로 했을 때에도, 그동안 미뤄둔 만남들로 스무 살은 약속이 많았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도 예쁜 꽃다발과 핑크빛 편지를 건네는 아이야, 이제 그만 훨훨 날아가렴. 내가 간간이 편지 쓸게. 그리고 함께 캠퍼스를 거닐자.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어깨의 긴장을 조금은 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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