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읽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어냈다. 큰 성취감을 느꼈다. 독서모임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한 번, 서로에게 한 번 박수를 쳤다.
아홉 명이서 열세 장을 쪼개어 한 장 혹은 두 장을 요약 설명했다.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책 한 권을 다시 한 번 훑는 것은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이 읽고 싶은 문장도 공유했다. 1장을 과학 선생님이 설명해주어서 더 좋았다. 혼자 읽을 때 1장은 내게 먼 글 같았는데, 다 읽고 1장의 내용을 다시 들으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코스모스>는 각 장의 제목에서부터 은유가 담긴 문학적인 글이다.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2. 우주 생명의 푸가
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4. 천국과 지옥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7. 밤하늘의 등뼈
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9. 별들의 삶과 죽음
10. 영원의 벼랑 끝
11. 미래로 띄운 편지
12. 은하 대백과사전
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이 글을 읽기 위해, 누군가는 '푸가'가 어떤 음악인지를 알아보았을 만큼 이 책에는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역사와 철학, 인류학 등 온갖 분야를 망라하며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어 무척 놀라웠다.
좋아하는 시가 있다. 제목이 <우주>다.
우 주
안도현
잠자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곳까지가
잠자리의
우주다
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동안은
잠자리 한 마리가
우주다
3월 국어 수업을 안내할 때 이 시와 함께한다. 이렇게 멋진 시가 있다고, 처음에는 드러난 내용을 살피고, 그다음에는 잠자리 대신 내 이름을 넣어 생각해보자고 한다. 우리의 행동반경이 우리의 우주이지만, 우리 자체도 우주라고! 잠자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날 수 있고, 먹이를 찾으며, 비를 피하기도 하고, 좁고 높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졸 수도 있다. 잠자리가 우주의 신비가 아니면 무엇인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빛을 빛내며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고 노래도 하고 행복을 전할 수도 있다. 너희 안에 무한한 가능성, 잠재력, 우주가 담겨 있다. 나는 그렇게 여러분을 대하고 싶다는 이야기.
내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게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코스모스>를 읽고 보니 그렇지 않다. 언젠가 있었던 빅뱅으로 별들이 탄생했고, 우리를 구성하는 분자는 별을 구성하는 분자와 같다니.
'코스모스'는 우주이자 만물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코스모폴리탄' 또한 '코스모스'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이제껏 '코스모폴리탄'을 세계시민이라 불러왔다면, 칼 세이건은 이제는 더 나아가 '우주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제안한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내가 마주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주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코스모스>가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류애를 담고 있는 거대한 책이라서일까. 읽고 나서는 이렇게 오랜 세월 상상도 못 할 만큼 커다란 우주, 그 안에 은하, 또 그 안에 태양계,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일개 인간으로서 말이다, 내가 이 우주에 티끌만 한 피해라도 안 끼치고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너무 큰데 그게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미래 세대가 좀 더 사용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 세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큰 숙제를 남겨준 책. 절멸이 아닌 희망을 품고 살고 싶다.
한 치 앞만 내다보며 살던 나에게 '우주적 시야'를 얻게 해 준 책을 읽었다.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조화로운지, 아름다운지 잊지 않기 위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