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을 읽고
켄 리우 <종이 동물원>으로 화상 독서모임을 했다. 잊을 수 없는 포인트는 경상도가 본가인 남자 선생님이, 자기 차례만 되면 고개를 모로 돌리고 화면을 외면한 채 말씀 하시는 것. 선생님은 다른 곳을 보며 열심히 자신의 감상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자꾸만 웃었다.
줌으로 하는 독서모임은, 호스트로서는 조금 힘들기도 했다. 발언 순서를 정해놓고 그 순서대로 감상을 말했으나, 자꾸 동감하고 싶은 이 호스트가 함부로 끼어들어서 자꾸 오디오가 겹치고 그랬거든. 하지만 마스크를 벗은,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반가웠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연결해서 읽은 <종이 동물원>은, 처음에는 이 책이 왜 <코스모스>와 연결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을 포함해 앞부분에는 중국의 전통과 약간의 판타지가 연결된 것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은 미국에 사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면서 문화대혁명으로 고아가 된 엄마의 사연에는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작가 소개를 보면, 미국으로 이민하여 하버드 영문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법을 공부해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단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이력뿐만 아니라 우주나 생물학 등의 과학과 역사도 전공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보인다. 게다가 이야기의 재현으로서의 소설 또한 참 잘 쓴다. 이 두꺼운 소설집을 읽기에 앞서 머리말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에게 반하고 말았는데, 이 명철하고 똑똑한 사람이 참 따스했기 때문이다. 소설 또한 그의 온기가 묻어나는 작품들이었다.
열네 편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모노노아와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켄 리우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이야기를 다룬다. 홍콩, 타이완 그리고 일본. -두 번 한국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읽기에 끔찍할 정도로 일본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모노노아와레>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하게 된 '히로토'의 이야기이다.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대한 묘사도 있고, 우주선을 타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과 비밀 이야기, 과거 사랑했던 미국 과학자의 배려로 아들을 태워 보내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이 이야기가 영웅에 대한 체스와 바둑의 은유로 읽혀 좋았다. 우주선 내에서 어른이 된 히로토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꼬맹이는 자신은 바둑보다 체스가 더 좋다며, 체스 말들은 다 다른 장점을 갖고 멋진데 바둑돌은 너무 평범하다고 불평한다. 궤도대로 순항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던 히로토는 우주선의 항로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태양돛의 구멍을 메우러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들려주던 단시(시 명칭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책은 이미 친구에게 보낸 터라! 하이쿠는 아니었는데.)를 떠올리며, 시 하나에 어울리는 상황 묘사를 한 장면씩 보여주는데 그 부분들이 참 멋졌다. 짧은 글 안에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시를 너무도 잘 구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히로토의 결심은 바둑돌 하나의 움직임과도 같은 것이어서, 평소에는 너무도 평범해 보이지만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장소에 있는 것으로도 영웅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영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뒤에 나오는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와 <송사와 원숭이 왕>이라는 소설에서도 이어지는 듯하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것과 은폐된 역사를 까발리는 용기를 내는 것 또한 영웅의 행위라는!
좋았던 소설을 중심으로 모임원들의 감상을 들었다. 최애작 중 하나는 일단 영화 같은 전개로 가슴 졸이며 읽을 수 있는 <레귤러>라는 작품이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돕는 '레귤레이터'를 삽입해서 지내는 전직 형사 '루스'의 이야기다. 안구에 카메라를 삽입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몸 파는 여자들과, 그들을 이용해 권력자들의 돈을 크게 한 탕하려는 '워처'와의 대결을 다뤘다. '루스'는 딸을 잃게 된 트라우마로 힘겨워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장면은 정말 독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상태변화>라는 소설은 사람의 영혼이 어떤 사물에 깃들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잔 다르크 같은 위인들의 영혼이 나뭇가지였다든지, 커피 한 잔이었다든지 하는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자신을 각얼음이라 여기며 지내던 '리나'가 좀 더 유연해진 것처럼 나 또한 자유롭게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은 여우로 변신하는 전통적인 요괴의 이야기로 시작해 나중에는 크롬 여우라는 은빛 종이접기 구조물 같은 로봇으로 구현되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은 무척 슬펐다고 하셔서,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던 결말 장면 때문에 크롬 여우가 되기 전의 폭력적인 이야기를 놓쳤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리징이라는 요괴 '염'과 그 요괴를 사냥하던 '나'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간헐적인 우정을 보이며 원래 자신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듯이 보였으나, '나'의 도움으로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나는 읽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 많이 언급해주신 작품은 <천생연분>이었다. 생활 맞춤 제안을 하는 '틸리'라는 가상의 AI는 '사이'의 모든 생활을 조절하고 통제한다. 영화 <Her>도 생각나면서, 금세 우리의 현실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현재라고 정정하고 말았다. 상품 하나를 검색하면 그 후로 들어가는 모든 사이트에서 그와 관련된 상품이 뜨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내게 최적화된 제안은 과연 누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원래부터 나의 취향이라는 건 있을까? 추천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좋아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착각 속에서 세뇌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다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밖에 <종이 동물원>을 읽으며 영화 <미나리>를 떠올리신 분도 계셨고, 펄벅의 <대지>를 떠올린 분도 계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김훈 작가가 생각났다는 분도 계셨다. <파자점술사>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거나, 앞으로의 일본과의 관계가 염려스럽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또한 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종이 동물원>이나 <천생연분>은 학생들과 같이 읽고 다문화라든가 인공지능에 대한 토론을 해보아도 좋겠다는 제안도 해주셨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정말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소설집이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작가의 상상력에 '경악'하셨다는 분도 계실 만큼, 켄 리우는 독자를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머리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중략)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번역이라는 기적이다. (중략)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좀 더 밝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
느껴지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성 이론이라든가, 외계 생명체가 어떻게 책을 읽는지에 대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그의 온기가? 켄 리우의 상상력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담겨있다.
@켄 리우 <<종이 동물원>>,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