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는 사람입니다.
꼬맹이의 요청으로 내 일기 상자를 낑낑대며 꺼냈다. 초등학교 때의 그림일기며 일기장, 중학생 때 쓰던 감성적인 일기장도 있고, 대학생 때 들고 다니던 다이어리며 학교에서 준 수첩, 해마다 쓴 다이어리, 출산 후 주로 꿈을 기록하던 (그래서 당최 알아볼 수 없는 글씨의) 모닝페이지가 차곡차곡, 아니 마구잡이로 담겨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기록을 꺼냈다. 둘째가 주도적으로 학년별로 정리하더니, 글씨에 대한 평, 그림에 대한 감상, 일기 내용에 대한 확인까지 했다.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주로 가족과 한 일이 나와, 아이는
"삼촌이 이랬어?"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기하다는 얼굴로 감상을 했다.
나는 나대로 너무 반가운 대학생 때의 기록을 보며 흐뭇해졌다. 친구들이 엠티 가서 써준 롤링페이퍼, 추억이 담긴 스티커 사진, 첫사랑의 기억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카톡으로 대학 때 친구에게 그가 써준 글귀를 되돌려주며 함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 혜O이가 써준 글에는 '내가 원래 좀 겁이 없어.' 이런 문장이 있었는데, 이걸 공유하며 "그때도 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네."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우리는 <자문자답>이라는 노트를 각자 써나가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안참 시간이 흐르면서야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그런데 스무 살 때에도 그랬단 말이야? 그러고 보면, 이 친구 덕분에 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했었다.
6학년 때 쓰던 일기를 읽다 보니 잊히지 않는 창피한 추억이 있는데, 그것은 과학과 관련된 경험이다.(이런 내가 과학교육과 공부를 하며 얼마나 헤맸던가!) 산성과 염기성에 대한 공부를 한창 하던 때였나 보다. '붉은산/푸른염' 뭐 이렇게 외면서 리트머스 시험지 어쩌고 하던 그 내용 맞다. 담임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돌아가면서 답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염기성'하고 대답하자마자,
"쟤 미쳤나 봐!"
라고 하셨다. 과학은 내게 늘 자신 없는 영역이었으므로 나는 주눅 들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당황한 얼굴로 담임선생님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내가 옳게 답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일기장에 썼다.
'아이들은 일제히 날 향해 바라보며 웃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가 맞다고 해서 선생님 쪽을 바라보니, 선생님께서 잘못 아셨다고 하셨다.
정말로 기분이 나빴다. 내가 틀린 것도 아닌데. '쟤, 미쳤나 봐'란 말이 자꾸 속이 상하게 하였다. 내가 누명을 쓴 것 같아 정말 기분 나쁘게 속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담임 선생님이 매일 검사하는 일기장에 말이다! 제목은 '망신'으로 붙였다. 선생님은 'OO아, 미안해!'라고 써주셨다. 나는 조금 우쭐했을까? 사과를 받았지만, 내겐 찜찜한 기억이었고, 그래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담임선생님이 그렇게(쟤, 미쳤나 봐!) 반응하신 이유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저 바로 전날의 일기 때문이다. 딱 느낌이 왔다. 내 일기가 담임선생님을 저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자연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자연, 집에서도 자연. 숙제도 모두 자연뿐이다. 그것도 엄청 많이. 어떤 날은 숙제가 많아 울면서 해간 적도 있었다.
어제 '웅진 아이큐'에서 '울면서 하는 숙제'란 글을 읽었는데, 우리 어린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또, 어른들이 항상 우리 뒤에서 격려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울면서 하는 숙제'란 글 속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이라고 무조건 꼬박꼬박 순종해서는 안 되겠다. 잘못 시키는 일은 따르지 않도록 하고, 때로는 반항하는 마음까지 갖도록 해야겠다-
난 이 말이 내 맘에 들었다. 아무리 자연 시험이 눈앞에 있더라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숙제는 해갈 수 없을뿐더러, 우리들의 꿈도 없어질 것 같다.'
어머어머, 내가 이런 글을 썼다니! 나는 늘 내가 비판 정신 같은 거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에는 그 점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나는 아주 날이 서 있던 어린이였나 보다. 이렇게 까칠한 이야기를 일기에 대놓고 - 선생님 보라고 - 써놓은 아이가, 선생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동안에는 그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편애했다 생각해왔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은 주고받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왜 이리 자연 공부를 많이 시키냐, 어른 말이 다 옳지는 않다, 하던 아이에게 선생님은 내심 틀리기만 해 봐라 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물론 선생님의 반응은 어른스럽지 못했고, 나는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거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삐딱한 아이였던 것이었다.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나는 또 새롭지만, 또 모르지. '조이아, 걔- 은근히 삐딱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너무 어두운 얘기를 했나, 하나 더 보태어 본다. 4학년 때 일기였나 보다.(너무 많은 일기를 읽어서 기억도 안 난다. '요술나무', '마성전설'이 들어간 일기를 읽고 남편하고 한참 게임 이야기도 했다.) 같은 반 애들이 'OO는 좋겠다, OO는 좋겠다'하면서 내 뒤에서 나를 놀렸단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예뻐해서 좋겠다는 놀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써두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헐, 담임선생님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쓰는 얘는 어떤 아이인가! 현재의 나는 뭐 이런 아이가 다 있나 싶었다. 담임선생님은 이런 일기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셨을까. 갑자기 4학년 때의 남자 담임 선생님이 - 3학년 때 선생님이던가, 남자 선생님 두 분 중에 한 분일 텐데- 떠오르면서, 그분 대신 얼굴이 붉어진다. 조금 많이 창피해서 남편이 볼까 봐 일기장을 슬그머니 아래쪽에 끼워두었다.
옛날 나의 기록을 통해 나를 새롭게 아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다. 나와는 다른 결의 기록을 하고 있는 작가님 글을 보면서, 나는 이제 행복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기록하기로 한다. 그날 마신 맥주에 대한 일이나, 와인에 곁들인 안주에 대한 기록도 좋고, 오늘 마주친 길냥이와의 기록도 좋겠다. 그 기록들이 쌓여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면 기록의 가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