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 Mar 01. 2021

산호 입장에서는 지금이 천국

가슴 아픈 스노클링의 추억

발리 1, 2편에 이어지는 글.


지난해 2월 발리 여행 중 스노클링 투어를 해봤다. 그냥 호텔에서 늘어지고 싶은 욕구도 강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언제 다시 동남아를 올지 모르니 물놀이를 한 번쯤은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발리 동쪽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렘봉안(Nusa Lembongan)’으로 향했다.


섬 이야기에 앞서 가벼운 지적질 하나. 수면에 둥둥 떠서 물속 세상을 구경하는 놀이 '스노클링(Snorkeling)'을 '스노쿨링'으로 오기하는 사람이 많다. 더운 동남아에서 바다에 풍덩 빠지면 시원하긴 하지만 '쿨링(Cooling)'은 아니라는 것.

발리 동쪽바다에 떠 있는 부속 섬 렘봉안.

함께 스노클링 배에 탄 여행객 중에는 한국인 가족도 있었다. 부모와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아들 둘이 함께였다.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신혼여행 오셨나 봐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태도라도 공손하면 모를까, 50대 중년 아재의 말투부터 표정까지 모두 거북했다. 언젠가부터 해외여행 중에 한국인 만나는 걸 꺼리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특정 부류의 한국인이다. 그중에 호구조사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은 경계 대상 1호다. 대체 왜 이역만리 외국까지 나와서 남들이 어떤 사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사는지가 궁금할까. 사실 한국인 천지인 패키지여행이 불편한 이유도 ‘한국말’ 때문인 것 같다. 호구조사뿐 아니라 아파트 시세부터 유학 보낸 자식 자랑까지 듣다 보면 버스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렘봉안에서는 세 번의 스노클링을 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수심이 얕았다. 2~3m 정도의 깊이였다. 일부 관광객이 이 정도 깊이는 안 무섭다는 듯 구명조끼를 벗고 들어갔다. 수중 영상 촬영이 취미인 나는 처음부터 구명조끼를 안 입었다. 최대한 깊이 내려가서 산호와 물고기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이상한 장면이 펼쳐졌다. 오리발로 산호를 밟은 채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인구조사관과 그 아들이었다. 그걸로 모자라 발을 허우적거렸는데 연약한 산호가 마구 잘려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황급히 물 위로 올라와 소리쳤다.

“아저씨, 산호 다 죽이고 있어요. 뭐 하는 거예요!”

나는 환경단체 회원도 아니고,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산호가 처참히 짓이겨지는 장면을 보고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인구조사관은 아들이 옆에 있어서 무안했는지 애써 내 얘기를 외면했다. 화가 치밀었다.

산호가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 한국인이어서, 인간이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곧 배로 올라와 아내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산호 짓밟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만천하에 알리겠다, 제목은 ‘무참히 산호를 짓밟은 어글리 코리안’으로 정했다고. 아내가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안 준 게 문제야.”

“그러거나 말거나 저 사람, 아까 말하는 것부터 영 재수 없더니만.”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 아들하고 잘 놀아주고, 부인한테도 엄청 다정하더라. 되게 자상한 가장 같아.”

후, 한숨만 나왔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렘봉안 섬의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투어까지 인구조사관 가족과 계속 함께했다. 아내 말대로 조사관은 자상했다. 아들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고, 아내에게는 살가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책임한 산호 파괴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잘려나간 산호. 산호는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초가 아니다. 먹이활동을 하고 산란을 하는 동물이다.

섬 투어를 하면서도 잘려나간 산호가 물에 둥둥 떠 있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 호주 케언즈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한 적이 있었다. 현지인 꼬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산호를 밟지 말라고. 내가 딛고선 바닥이 바위처럼 딱딱했기에 산호인지도 몰랐다. 꼬마의 눈에 나는 인구조사관 산호 파괴범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무식쟁이 관광객이었을 터였다.


생각해보면, 산호를 파괴하는 건 히틀러나 폴 포트 같은 희대의 악마도 아니고, 자녀를 학대하는 가장도 아닐 것이다.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아빠, 저렴한 비행기 표가 나올 때마다 훌쩍 동남아로 날아가는 여행광 친구. 그 누구든 무심코 산호를 파괴한 장본인일 수 있다. 아니, 수온 상승으로 세계 각지에서 산호가 죽어가는 ‘백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사실은 모든 인류가 산호 살육의 공범인 셈이다. 산호는 그 자체로 생명이지만 물고기의 집이자 피난처이기도 하니 인간은 물고기의 거주지를 말살하는 침략자나 다름 없는 존재다.

 

수심 5m 정도되는 렘봉안 바다의 산호와 열대어. 관광객이 끊긴 지금 저들은 회복의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이다.


렘봉안 섬은 코로나 확산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을 것이다. 렘봉안뿐 아니라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던 세계 각지의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명소는 지금이야말로 휴식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힐링을 찾아 떠난 인간이 사라지니 산호 입장에서는 비로소 ‘힐링의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발리 1, 2편 ▼


매거진의 이전글 상고대, 그게 뭐라고...소백산 눈꽃 산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