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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Mar 09. 2021

책 읽기 좋은 숙소 어디 없나요

직접 가본 북스테이 2곳

작년 2월, 코로나 상황이 덜 심각했을 때 ‘북스테이’를 취재했다. 북스테이(Book stay)란 문자 그대로 책을 주제로 한 숙소를 말한다. 도서관을 갖춘 호텔도 있고, 책방을 겸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전국에 북스테이가 몇 곳이나 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냥 책장 몇 개에 뻔한 베스트셀러만 진열해 놓고 ‘라이브러리’라고 우기는 호텔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 것만은 확실하다. 당시 수도권 북스테이 4곳을 소개했는데 봄이 되니 몇 곳은 다시 찾고 싶은 생각도 든다.



독서광인 30대 친구 셋이서 의기투합해 만든 북스테이 책방시점. 강화도 전등사 인근에 있다.

북스테이 책방시점은 기자협회보 기사를 보다가 눈여겨 둔 곳이다. 많은 기자들이 팍팍한 일상, 높은 스트레스, 자산 증식의 어려움 등등을 이유로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네, 저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기자를 하다가 전업에 성공했다는 동료나 다른 기자 소식이 들리면 늘 팔랑 귀가 된다. 책방시점에 관한 기사를 봤을 때 솔직한 심정은 이거였다. ‘신문사 기자가 회사를 관두고 북스테이를 차렸다고? 관심 있던 아이템인데 노하우 좀 캐볼까?’


책방시점은 전직 기자를 비롯한 30대 친구 셋이서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독서광인 이들은 함께 강화나들길을 걷다가 강화도에 단단히 반했다.  2019년 빚을 내서 주거 공간을 포함한 북스테이를 열었다. 위치는 전등사가 있는 길상면. 1층에 서점이 있고, 객실은 모두 3개다. 투숙객은 서점에 있는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과자를 먹다가 부스러기를 흘리거나 코를 파거나 해서 책이 더러워지면 어쩌나 싶은데, 깨끗이 보기만 하면 된단다.

책방시점에서 책을 사면 커피 한 잔을 내주신다. 작년 2월엔 그랬다. 지금도 그렇겠지?

책방시점을 취재하면서 사업 노하우를 묻진 않았다. 대신 서점을 차분히 구경했다. 꼭 북스테이에 가야만 책을 읽느냐고, 취미도 특기도 아닌 일상이어야 할 독서를 너무 유난 떨며 하는 것 아니냐고 삐딱하게 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러나 대형 서점과는 다른, 작은 서점의 책 큐레이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책방을 둘러보면 좋은 책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책을 보는 '안목'과 '관점'까지 덤으로 딸려온다. 그걸 1박 2일 동안 오롯이 누린다면 쏠쏠한 것 아니겠나.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을 만나면 좋은 자극도 얻을 수도 있다. 북스테이 중에는 독서모임,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곳도 많다.


당시 책을 2권 샀다. 책방시점의 베스트셀러인 함민복 시인의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가 그중 한권인데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시선집이어서 이전에 갖고 있던 시집에서 본 익숙한 시가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시인의 말랑말랑하고 따순 언어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얼마 전 함 시인이 출연한 팟캐스트도 들었다. 그의 맑은 시를 듣고 읽으니 짠내 나는 강화 갯벌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짧은 시 한 편 옮겨본다.


밴댕이


팥알만 한 속으로도

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


자, 인사드려야지


이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터득골 북샵 올라가는 길. 지난해 5월, 샤스타데이지꽃이 만발한 모습.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터득골 북샵은 코로나 1차 대유행이 꺾인 뒤 휴가차 아내와 찾아갔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원주였기 때문이다. 원주시민들에게는 죄송하나, 치악산 말고는 원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공공기관이 많은 따분한 행정도시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그러나 편견은 대체로 무지에서 비롯한다. 터득골을 비롯한 원주의 매력적인 공간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작년 5월에서야 깨달았다.


터득골은 명봉산 동쪽자락의 계곡 이름이다. 서점은 산 중턱 숲 속에 자리한다. 위치가 기막히다. 동쪽으로 시야가 시원하고 서점 뒤편 빽빽한 소나무에서 진한 솔향 머금은 산바람이 불어온다. 5월은 꽃이 가장 찬란할 때다. 입구에 핀 찔레꽃부터 계단에 흐드러진 샤스타데이지, 작약,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이 서점 주변에 흐드러져 있었다. 이 자체로 꽃돌이 아재인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꽃돌이 아재를 한참 붙들었던 찔레꽃. 어찌나 향이 강하던지. 장사익 아저씨가 괜히 절규하듯 찔레꽃 노래를 부른 게 아니다.


터득골 역시 투숙객은 하룻밤 묵으며 원 없이 책을 볼 수 있다. 서점 건물에 방은 2개인데 투숙객은 딱 한 팀만 받는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과 섞일 염려가 없다. 주인 부부가 출판인, 동화작가여서 그런지 재미난 그림책이 많다. 일감을 싸들고 간 탓에 책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책이 인상적이었다. 몸에서 뗄 수 없는 냄비를 달고 사는 아이가 핸디캡을 극복해가는 짧은 이야기다. 저자인 이자벨 카리에가 다운증후군 딸과 산단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권하고픈 그림책이다.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가 꾸민 터특골 북샵 내부. 책 향기, 나무 향기가 은은히 감돈다.

서점은 채광이 좋은 목조 주택이다. 인테리어도 나무를 활용한 덕에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충만하다. 알고 보니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가구를 만든 가구 디자이너가 직접 인테리어를 고, 가구를 댔다고 한다. 문 열고 나가면 숲 향, 꽃 향이 진동하고 서점 안은 책 향기, 나무 향기가 그득하다. 영화 ‘기생충’에 냄새가 중요한 테마로 등장하는데 나무만큼 사람에게 평온을 주는 향기도 드물 것이다. 책도 결국 나무에서 나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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