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배 타고10분 거리였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2020년 3월 11일, 이 즈음 해외여행이 사실상 금지됐다. 캐나다로 마지막 해외출장을 갔다가 3월 3일에 돌아와 보니 매주 금요일자인 신문의 여행 코너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구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시작되면서 국내여행도 크게 제한된 까닭이었다.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여행도 못 가는데 무슨 여행 기사를 쓰나. ‘여행이 사라진 시대’가 꽤 오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오 필승 코리아’는 금세 위기를 돌파하고 코로나 방역 월드컵에서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답답한 마스크만 썼을 뿐 한국인은 꽤 빨리 일상을 회복했다. 물론 전염병 탓에 일자리를 잃고 고통받는 사람도 많았지만.
두 달만에 여행 지면이 부활했다. 사실 코로나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했다. 집 앞 공원을 산책했고,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산을 올랐고, 캠핑을 즐겼다. 코로나는 한순간 ‘아웃도어’ 여행을 급부상시켰다. 몸을 쓰고 어딘가로 이동하며 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슈퍼 울트라 파워의 바이러스도 어쩌지 못한다는 게 증명됐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20~30대 중 난생처음 등산을 하며 스스로를 등린이, 산린이(등산 어린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원래도 아웃도어 중심의 여행 기사를 썼지만 더더욱 아웃도어를 들이 파야만 했다. 부활한 여행 지면 취재를 위해 두어 달 만에 국내 출장에 나섰다. 목적지는 코로나 확산 전까지 숱하게 드나들던 인천공항 바로 옆의 작은 섬 신도, 시도, 모도였다. 다리로 연결된 세 섬은 자전거 마니아 사이에서 익히 소문이 난 곳이었다. 어쩌다 따릉이나 타는 나 같은 非자전거족이 가기에도 괜찮은 섬이다. 선착장 주변에 자전거 대여 업체가 많다.
사실 자전거 취재는 쉽지 않다. 그럴싸한 체험기를 쓰려면 직접 타야 하는데 자전거도 타고 취재도 하면서 사진까지 촬영하는 1인 3역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래서 이 출장은 사진기자와 함께 갔다. 마침 1000만원을 호가하는 자전거를 여러 대 가진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 덕분에 나도 꽤 근사한 카본 MTB 자전거를 빌려서 취재에 나섰다.
인천공항 인근 삼목선착장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만 챙겨서 배를 탔다. 10분만에 신도에 도착했다. 안장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았다. 비교적 완만한 차로를 따라 라이딩하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포장도로만 달리는 게 심심했는지 사진기자 선배가 가벼운 오르막길을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좋다고 따라나섰다가 곧 후회했다. 자전거를 타고 일산과 서울을 오가는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가벼운 오르막길’은 나 같은 평민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등산로에 버금가는 오프로드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다. 허벅지가 타들어갔다. 안산(101m) 정상부가 가까웠다. 첫 번째 섬인데 벌써 삭신이 쑤셨다.
다리를 건너 시도로 들어갔다. 드라마 ‘풀하우스’ 촬영지로 알려진 수기해수욕장을 둘러보고 가장 작은 막내 섬 모도로 넘어갔다. 조각공원으로 꾸며진 배미꾸미 해변을 둘러본 뒤 한 식당에서 소라덮밥을 먹으며 숨을 골랐다. 1인분 1만원이었는데, 관광지 민박집 음식 치고는 맛이 준수해서 소라를 질겅질겅 씹으며 감탄했다. 덮밥에 들어간 소라를 앞바다에서 잡았다고 식당 사장님이 알려줬다. 오랜만에 출장 나와서 먹는 밥이어서 꿀맛이었던 것도 같다.
신도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괜찮은 카페가 있다 해서 찾아갔다. 작은언덕로마. 이름이 불길했다. 왜 또 언덕이야. 오로지 카페인 충전을 위해 꾸역꾸역 페달을 밟으며 로마를 향해 올라갔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 건너 인천공항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드문드문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봤다. 기분이 묘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일상적으로 탔던 비행기인데 너무 낯설었다. “저 비행기 화물기겠지?” “여객기여도 텅텅 비었을 겁니다.” “기내식은 언제쯤 다시 먹을 수 있을까?” “한 1~2년은 어렵지 않을까요.” 선배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신시모도, 삼형제섬을 다녀오고 1년 여가 흘렀다. 여전히 해외여행을 못 가고 있지만 이제 곧 빗장이 열릴 것 같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여행업계에서는 올해 말,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억눌렸던 해외여행 욕구가 분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연말 해외여행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대 심리는 최근 치솟는 여행사, 항공사 주식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세계적인 관광 전문기관은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2024년은 돼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여행시장이 회복될 거라고. 전문가의 보수적인 진단이 빗나가서 서둘러 전 세계 관광시장이 조속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여행 분야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빠른 회복을 바라는 게 마땅할 것 같으나 요즘 마음은 좀 복잡하다.
마스크를 벗으면 좋겠지만 뭐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반드시 좋은 걸까 싶다. 여행업계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말을 하면 돌 맞을 수 있겠지만 그간 우리는 너무 과하게 여행했다. 21세기 인류의 여행이 얼마나 지구를 괴롭히고,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는 방식이었는지. 과연 펜데믹 시기를 지나며 충분히 고민하고 반성했는지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충동하는 글을 써온 입장에서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당장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면, 우선 신시모도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전거를 타며 소박한 세 섬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소라덮밥을 먹고 서해바다의 황홀한 낙조까지 본다면 나름 벅찬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꼭 카페에 앉아서 인천공항의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라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사색에 잠겨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무엇인지,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어때야 할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자고, 너무 진지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교수님처럼 말을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