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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Oct 05. 2021

해방촌 생활인이 꼽은 베스트 카페 3

나의 든든한 홈카페 동반자들

용산동2가인지 용산2가동인지 여태 헷갈리는 동네, 용산동이라 말하면 아무도 모르지만 해방촌이라 하면 ‘아, 거기’ 하는 동네에 산 지 반년이 돼간다. 이사 초기, 제일 적응하기 힘든 게 집 근처에 갈 만한 카페가 없다는 거였다. 20대 커플이 주 고객인 와인바, 외국인 비중이 60%인 펍, 커피'도' 파는 레스토랑은 즐비한데 괜찮은 커피집이 없었다. 해방촌에 놀러와서 인증샷 찍기 바쁜 여행자가 아니라 거주자로서, 재택근무를 하며 끼니와 카페인을 해결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마음 편한 카페의 존재는 오래된 친구만큼 소중한데 말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옛 단골 카페가 동네에 분점을 열기도 했다. 자주 찾는 카페 세곳을 소개해본다. 나의 홈카페 생활의 동반자 같은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원두 방앗간 - 오랑오랑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그러니까 해방촌의 역사를 함께한 신흥시장의 터줏대감 같은 카페다. 오래된 갈색 벽돌 건물 안에 오래된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레트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처음 카페를 찾았을 때는 2층과 루프톱을 장악하고 바쁘게 사진 찍는 젊은 친구들(그래, 나 노땅이다)을 보고 ‘인스타 맛집’인가 보다 하고 금세 자리를 떴다. 폐건물 같은 분위기와 남산타워가 보이는 옥상이 사진 배경으로 좋기 때문이리라.

한참만에 찾아간 오랑오랑에서 원두를 사봤다. 그리고 집에서 모카포트로 라떼를 만들어 먹고 눈이 뜨였다. ‘엇, 뭐야. 괜찮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재택근무가 장기화하면서 홈카페를 즐긴다. 웬만한 커피도구는 다 갖췄고 원두는 투트랙 전략으로 쟁여둔다. 핸드드립용 싱글 오리진, 라떼용 에스프레소 블렌드. 오랑오랑의 블렌드 커피는 내가 딱 좋아하는 미디엄 로스팅에 고소한 맛과 산미의 조화도 적절했다. 가격도 좋다. 주로 사 먹는 조르바 원두가 200g 1만원이다. 원래 서울 유명 카페의 원두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었는데 배송료를 더하면 200g 1만5000원이니 오랑오랑이 3분의 2 가격인 셈이다. 필요할 때 냉큼 사올 수 있고 인터넷 주문보다 쓰레기가 덜 나오는 것도 좋다.

참고로 오랑오랑은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사면 1500원 깎아준다. 500원, 10% 깎아주는 곳은 있어도 1500원이라니 통도 크다. 오늘도 플랫화이트 한 잔을 3000원 주고 사 마셨다.


남산 산책길에 들르는 집 - KGML

KGML은 우연히 알게 된 집이다. 성수동 살 때 동네 카페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해방촌으로 이사 가는데, 괜찮은 카페가 없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 젠틀맨이 “괜찮다면 한 곳 추천해드려도 될까요?”라고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얼마든지요, 제발요. 그가 알려준 곳이 KGML이었고 카카오맵에 저장해뒀다. 그리고 이사오자마자 찾아가봤다.

KGML 해방촌이 아니라  건너편 이태원동에 있다. 위치가 다소 애매하다. 경리단길에서는 꼬불꼬불 계단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소월로, 그러니까 남산순환로에서 가까워 주로 남산 산책길에 들른다. 이곳 역시 원두 라인업이 준수하다.  좋은 원두를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고객 취향에 따라 원두를 추천해준다. 바리스타들이 원두 특징을 설명해주고 맛있게 마시는 법까지 기꺼이 알려주신다. 바리스타 두 분이 워낙 친절해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원두를 사봤는데 과테말라, 파푸아뉴기니 산이 괜찮았다.


KGML을 갔는데 디저트를 안 먹고 오면 섭섭하다. 특히 호박티라미수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잔이면 몸에 각성제를 주사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파니니, 치즈감자수프 같은 브런치 메뉴는 주말 아침 남산 산책 다녀오는 길에 먹으면 딱 좋. 여느 카페와 달리 이른 아침에 문을 연다. 무려 7시 반!!


카페인 충전, 그 이상의 경험 - 메쉬커피

그냥 카페가 아니고 하나의 브랜드가 된 카페들이 있다. 스타벅스 같은 세계적인 체인 이야기가 아니다. 독립 카페인데도 특유의 분위기로 그 동네를 상징하는 카페가 국내에도 여럿 있다. 성수동을 상징하는 메쉬커피가 바로 그런 곳이다. 성수동이 힙한 동네로 뜨기 전부터 개성 강한 커피로 마니아층이 탄탄했던 커피가게다. 이사 오기 전, 메쉬커피 사장님한테도 물었다. 해방촌에 괜찮은 카페가 아느냐고.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그 동네는 커피 팔아서는 월세를 감당 못 합니다. 괜히 술집이 많은 게 아니에요.”

그 이야기를 나눴던 게 4월 초였는데 메쉬커피가 거짓말처럼 8월에 해방촌에 분점을 냈다. 성수동에서도 여느 카페와는 색다른 감성을 뽐내던 메쉬는 해방촌에서도 메쉬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인파 북적이는 메인도로에서 한 골목 들어간 다가구주택에 카페가 들어섰다. 가정집처럼 편한 분위기에 독특한 미장으로 한껏 멋을 살린 인테리어 역시 해방촌에서 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방 하나는 LP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다른 방에서는 전시회도 연다. 그냥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문화와 경험까지 전달한다는 점에서 메쉬커피는 하나의 브랜드라 할 만하다.


커피 맛은? 아주 개성이 강하다. 가볍게 볶아 산미와 화사함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라이트 로스팅이 메쉬커피의 장기다. 라떼든 핸드드립이든 기분 좋게 밝은 향이 두드러진다. 메쉬커피 바리스타들도 손님과 커피 얘기 나누는 걸 즐긴다. 메뉴에도 없는 커피를 주문하면 뚝딱 만들어준다. 진한 농도의 카페라떼인 ‘코르타도’가 내가 자주 사먹는 커피다. 참고로 메쉬커피는 원두를 사면, 에스프레소 계열 커피 한 잔을 공짜로 준다. 성수동 시절부터 메쉬를 자주 드나든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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