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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Oct 19. 2021

"이번에도 등산복만 입을 거야?"

나도 패피가 되고 싶지만 편한 걸 어떡해

여보, 이번 출장 때는 트렌치코트 같은 도 챙겨가봐. 맨날 등산복만 입지 말고.”

생각보다 빨리 해외출장을 나가게 됐다. 목적지는 햇살 찬란한 남프랑스. 어디서나 대충 카메라를 들이대도 유화 같은 그림이 담기는 동네다. 고흐와 마티스, 까뮈가 사랑한  멋들어진 동네에 등산복이  말이겠나. 그런데 짐을 꾸릴 준비를 하려니 출장복이란   등산복스러운 옷들뿐이다.


나의 등산복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해외출장을 가도 아웃도어 중심의 취재를 많이 하다 보니 예전부터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를 활보할 때는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복장에도 TPO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MOMA 같은 박물관이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갈 때까지 등산복을 고집하진 않는다. 과거 중장년 패키지여행 단체가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으로 루브르박물관 간 사진을 봤을 때는 괜히 내가 부끄러웠다. 저건, 좀 심했네, 내 등산복은 저렇게까지 튀진 않지.


그래도 나의 등산복 사랑은 어찌하지 못한다. TPO를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나한테는 산과 바다에서 입을 옷이 많이 필요해서다. 시크한 차림으로 도심을 활보할 일이 드물다. 대신 비바람 몰아칠 때, 갑자기 추워질 때, 땀이 후줄근하게 흐를 때를 대비한 기능적인 용품들이 필요한 순간이 많다.

출장 가서 이러고 다니는데 언제 패션을 챙기겠어요.

그래서 이런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스포츠 브랜드의 매장을 검색한다. 출장 중 동선이 맞으면 꼭 들러본다. 이를테면 프랑스 산악지방을 갈 때는 살로몬 매장을 검색하고, 캐나다를 가면 아크테릭스 매장을 찾는다. 혹시나 할인점이나 아웃렛 같은 곳이 있는지도 찾는다. 대형 아웃렛을 가도 명품 매장은 관심 없다. 대신 아웃도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 박동수가 올라간다. 동공이 확장된다. 일본을 찾는 여행객이 돈키호테에서 간식을 사 쟁이고, 프랑스 여행을 가는 이들이 샴푸를 사기 위해 약국을 뒤지듯이 말이다.


2018년인가 밴쿠버에 갔을 때는 아크테릭스 본사에 딸린 매장을 찾아가서 값비싸기로 소문난 재킷을 한국 판매가보다 30% 저렴하게 샀다. 그래도 비싸긴 했다ㅜㅜ 하와이에서는 서핑 브랜드 립컬의 꽃무늬 셔츠를 반값 이하로 득템해 여름마다 아주 잘 입고 있다. 꽃무늬 하와이언셔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호주 태생의 세계적인 서핑 브랜드의 옷을 싸게 샀다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   알려졌지만 퀄리티가 좋은 브랜드를 발견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이를테면 영국 요크에서 아웃도어계의 유니클로라   있는 ‘마운틴 웨어하우스매장을 발견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플리스 재킷과 남방 등을 싼값에 샀는데 가성비가 뛰어나 아주 만족하고 있다. 옷만 찾는  아니다. 잡화를 사는 것도 재밌다. 미국 국립공원에서는 카멜백 브랜드의 물통을 사서 아웃도어 마니아인 선배에게 선물도 했다.  통에 물을 담아 마시면 괜히 물맛도 다른  같다.

캐나다 화이트호스에서 발견한 아웃도어 숍 '스포츠 엑스퍼츠'. 여기서 옷 몇 벌 샀다.

오로라 투어를 위해 방문한 캐나다 화이트호스에서도 아웃도어 쇼핑을 거를  없었다. 북위 60. 워낙 추운 동네 방한의류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역시나, 다운타운 숙소 근처에 여러 브랜드 제품을 파는 할인점이 있었다. 떨이 상품을 여럿 득템 했는데 점원들 설명이 웃겼다. 한국에서 간절기에나 입을 법한 얇은 패딩 재킷을 보고는 " 정도면 영하 20도까진 입을  " 했고, 캐나다구스 같은 거위털 빵빵한 점퍼는 "이런  영하 30 밑으로 떨어질 때나 입는 "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한국의 겨울이 춥긴 하지만 북극 원정을 가는 것처럼 두껍게 입는   오버 같다. 어쨌든 한국에선 꽤나 비싼 파타고니아 다운재킷과 맥킨리라는 미국 브랜드의 패딩을 거의 반값에 샀다. 캐리어 공간만 허락했다면 스키복, 등산화도 샀을 것을. 이왕이면 스키까지!!!


멋쟁이의 나라, 패피(패션 피플)들의 천국 프랑스를 가면서도 명품은 내 관심 밖이다. 과연 이번에도 등산 티셔츠라도 하나 건질지, 잘 몰랐던 아웃도어 브랜드를 발견해 뭔가 지르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중대한 출장을 앞두고 잿밥에나 마음이 팔려 있다니 조금 한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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