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중요한 여행의 연료
‘여행의 기술’이라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이틀을 걸고 한참 동안 연재 기사를 썼다. 햇수로 7년, 월 1회씩 썼던 때도 있고 주 1회 마구잡이로 기사를 양산했던 때도 있다. 여행 고수가 초보에게 한수 가르쳐주는 투의 칼럼 기사였다. 요즘 말로 ‘여잘알’ 행세를 했달까. 주로 해외여행에 대해 썼고, 코로나 사태 뒤로는 등산, 캠핑에 대해 많이 썼다. 등잘알, 캠잘알은 아니지만.
여행을 잘한다는 건 뭘까? 기사를 쓰며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 의문은 여행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3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여행을 잘하고 있는 걸까? 짧지 않은 시간, 여행 쪽에 한 발을 걸쳐 있는 사람으로서 여행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도 줄곧 하며 살았다.
‘여행을 잘한다’는 말은 여러 뜻을 가질 테다. 누가 뭐래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겠다. 틈만 나면 짐 싸서 어디론가 훌쩍 훌쩍 잘 떠나는 사람이야말로 여행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일 테다. 역마살, 방랑벽 이런 말과 질펀한 운명을 가진 사람, 여권에 온갖 희귀한 도장이 찍혀 있고 갱신 기간이 다가오기 전에 새 여권 만들러 당당한 걸음으로 구청 여권과를 찾는 사람. 뉴욕, 파리, 방콕 등등 남들이 가 봤을 만한 곳은 다 가봤거나 골목골목까지 빠삭한 사람. 반대로 파타고니아, 파푸아뉴기니, 파키스탄(‘파’자 돌림이네?)처럼 남들이 안 가봤을 법한 곳만 주야장천 다니는 사람.
한데 그런 식으로 여행을 잘하고 싶진 않았다. 30개국 이상 가본 뒤(이것도 자랑인가?)에는 여러 나라를 가봤다고 젠체 하는 게 우습게 여겨졌다. 기자 초년 시절엔 출장이라면 무조건 좋았다. 언젠가부터 두 달에 한 번 이상 해외를 나가는 게 버겁기 시작했다. 속 편하게 여행만 다니면 모르겠으나 가기 전에 준비하고 가서는 열심히 취재하고 돌아와서 짐 정리하고 기사 쓰는 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야만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란 걸 깨달으니 여행이란 쓸모가 마땅치 않은 관광지 기념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일을 분리할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여행을 잘한다는 말은 여행기사를 잘 쓴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선배 기자나 질투나도록 잘 쓰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도 저 정도의 글을 남겨야 여행을 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취재기자였지만 나는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잘 찍고 싶었다. 남과 다르게 찍고 싶었다. 그게 잘한 여행의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많이 돌아다니고, 여행기를 잘 쓰는 사람보다도 여행지에서 잘 노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윗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이클 조던이 넷플릭스 다큐 ‘라스트 댄스’에서 "현재만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일이니까. 디너 크루즈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유쾌하게 춤 출줄 아는 사람, 중국 야시장에서 돼지코 구이를 질겅질겅 씹어 먹을 줄 아는 사람은 정녕 멋쟁이일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런닝화를 챙겨가서 어디서든 조깅을 하며 ‘일상성’을 유지하는 사람, 절대 신라면과 햇반을 찾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 변비 안 걸리고 아무데서나 시원하게 볼 일 잘 보는 사람, 베드버그가 나오는 곰팡내나는 호스텔에서도 코 골며 자는 사람.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 등등등.
글을 마치려고 보니 ‘여행을 잘한다는 건 뭘까’라는 물음이 우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돈이 많아야 여행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돈은 편한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딱 거기까지다. 도리어 호기심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중요한 원천일 것이다. 생활인, 직업인으로서 밥을 벌기 위해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여행을 계속 할 수 있는 건 호기심이라는 연료가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증, 낯선 세상에 대한 까닭 모를 동경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