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나저씨'를 보고
얼마 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한 뒤 SNS에 끄적였는데 이지은(아이유)에 대한 찬사로 도배해버렸다. 정작 드라마 내용에 대한 감상은 없었다. 그렇게 끝내자니 뭔가 아쉽다. 여행기 위주로 브런치를 꾸렸지만 난데없이 드라마 리뷰를 쓰게 된 까닭이다. ‘좋은 책은 독자로 하여금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란 말이 있는데 ‘나저씨’가 꼭 그렇다. 책은 아니지만 나저씨는 뭐든 쓰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해야만 이 드라마의 짙은 여운과 잔상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드라마를 보며 애달파했던 동훈과 지안을 홀가분하게 놓아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안다는 건 뭘까. 나저씨가 내게 던져준 가장 큰 화두는 이거였다. ‘퍽퍽한 삶에 지친 어른(박동훈)과 거칠게 살아온 20대(이지안)가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드라마’라고만 쓰면 이 작품을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저씨는 어떤 스릴러나 액션 영화보다 흡인력이 강했던 드라마다. 탄탄한 스토리,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 빼어난 BGM이 두루 작용했을 테다. 한데 나를 사로잡았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두 주인공의 서로에 대한 ‘앎’이 무르익고 교차하고 꼬이는 전개.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게도 여러 번 눈물을 지었고 TV를 끄고도 쉬이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동훈과 지안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비대칭적이다. 객관적으로 지안이 동훈에 대해 아는 게 훨씬 많다. 지안은 봤다. 뇌물을 꿀꺽하려던 동훈을. 지안은 만났다. 쉽사리 판단하고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 어른을. 그리고 지안은 들었다. 함께 후계동 골목을 걸으며, 저녁을 먹으며 난생처음 배려 섞인 인생 선배의 말을. 그리고 불법 도청을 통해서 지안은 엿듣는다. 동훈의 가족사와 아내의 불륜, 회사에서 쫓겨날 뻔한 처지를. 굵직한 사건만 들은 건 아니었다. 동훈이 얼마나 책임감 강하고 의로운 사람인지도 알았다. 그의 지친 발자국 소리, 나직한 한숨도 들었다. 훔쳐 들은 소리를 통해서도 동훈의 인격과 진심을 알았고 동훈의 삶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드라마 초반에 위악적인 말투로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불행하게 산다”라고 동훈에게 말했지만 그건 애어른 같은 지안의 치기였지 누굴 깊이 이해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동훈은 처음엔 무심한 듯 지안을 봤다. 회사에서 봉지 커피 훔치는 장면, 누군가에게 맞고 멍든 얼굴, 힘겹게 할머니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예기치 않게 도움을 주고받은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동훈은 지안의 성장 과정과 치부까지 알아챈다. 지안이 불순한 의도로 도청을 시작한 것과 달리 동훈은 적극적으로 지안의 과거와 인생 속으로 다가간다. 지안을 돌봐준 어른 춘대를 만나고, 지안을 괴롭힌 광일과 싸우면서까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얼마나 눈물겨운가. ‘사람은 바뀌지 않아’,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같은 말들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생각한다면.
나저씨에는 대사와 대사, 장면과 장면이 대칭을 이루도록 구성한 부분이 많다. 이런 부분.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근데 슬퍼. 나를 아는 게, 슬퍼.”
4화에서 동훈이 동생 기훈과 술 마시며 나누는 대화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15화에서 도청을 들킨 지안이 “내가 밉지 않냐”라고 묻자 동훈이 건넨 대답이다.
누가 날 아는 게 왜 슬펐을까.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사는’ 자신의 모습을 들켜버려서, 뇌물 앞에서 갈등했던 모습이 부끄러워서, 겉으론 덤덤해 보여도 속이 썩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서였을 테다. 동훈은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삶은 그를 배신했다. 회사는 그를 내쫓으려 했고, 아내는 외도했다. 아무도 자기편이 아니라고 느꼈기에 ‘그지 같은 인생을 다 듣고도 자신의 편이 되어준(15화 동훈의 대사)’ 지안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원망하지 않았다. 도청을 당했다는 사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안의 진심을 알기에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나저씨를 보고 신형철의 이 문장이 생각났다. 동훈과 지안이 서로를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이 곧 위로하는 과정이었고, 그 위로는 시청자에게까지 전달됐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기도 했지만 관계를 통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안은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 없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음을, 동훈은 자신이 누군가를 돕는 썩 괜찮은 사람일 수 있음을. 그래서 타인을 안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이유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