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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Feb 05. 2022

“드론 별 거 아니네” 그리고 일주일 뒤

철원 한탄강을 다녀와서

드론을 샀다. 고민만 2년 이상을 한 것 같다. 드론 값은 마련해두었으나 계속 결정을 미뤘다. 취재하며 사진 찍기도 바쁜데 드론까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태국 푸껫 출장이 잡힌 김에 지르고 말았다.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를 하늘에서 굽어본다는 기대로 부풀었으나 느닷없이 출장이 취소됐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드론을 되팔까 하다가 잘 써보기로 결심했다. 가뜩이나 “여행기자가 드론도 없어?”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게 들은 터였다.


첫 드론 촬영지는 강원도 철원. 마침 한탄강에 ‘주상절리길’이 생겼기에 적절한 데뷔 무대라고 생각했다. 절벽에 아찔하게 매달린 다리인 ‘잔도’가 3.6km 이어진 길이다. 드론을 산 뒤 곧바로 ‘무인멀티콥터 4종’ 자격증을 땄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6시간짜리 강의를 수료했고(강의 영상을 틀어놓고 딴짓을 했고), 요령껏 시험을 패스했다(기출문제 족보를 참고했다). 드론 촬영에 필요한 알짜배기 기술은 유튜브에 다 있었다. 공단 강의라는 게 공대생 전공 수업처럼 이론적인 내용 중심이어서 실제로 드론을 띄우는 데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를테면 국내 법상 드론을 150m 고도 이상으로 날릴 수도 없는데 “구름 저면의 높이가 2~6km에 위치하는 것은? 답은 중층운.” 이런 식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용이 허다하다. 드론을 중층운까지 날려보고 싶긴 하다. 비행기처럼.


광나루 한강공원 첫 비행 영상

철원에 가기 전에 한강에서 연습 비행을 했다. 서울은 대부분 드론을 띄울 수 없는 비행금지 구역이지만 광나루 한강시민공원은 가능했다. 간단히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봤다. 잘 찍는다, 대단하다, 놀랍다는 칭찬 댓글이 달렸다. 생각보다 안 어려운걸? 우쭐했다.


철원 출장을 준비했다. 군사 분계선에 인접한 철원은 서울보다 드론 띄우기가 훨씬 더 까다로웠다. 지역 전체가 비행금지공역이었다. 서울지방항공청 웹사이트에서 비행 신청, 촬영 신청을 일일이 해야 했다. 공문을 보내고 복잡한 신청 절차를 다 거쳐서 가까스로 승인을 받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촬영 현장에 군인이 동행해서 통제를 해야 한단다. 맙소사, 어리바리한 조종 실력으로 너무 험난한 데뷔 무대를 골랐구나 싶었다.

취재 당일. 한탄강 주상절리길 매표소에서 지질공원해설사를 만났다. 그리고 약속시간보다 다소 늦게 앳돼 보이는 여군 하사가 나타났다. 셋이서 주상절리길을 함께 걸었다. 서너 번 멈춰 서서 드론을 띄웠다. 54만 년 전부터 형성됐다는 한탄강과 주상절리, 그걸 관람하기 위해 절벽에 설치한 잔도길을 다양한 각도로 촬영했다. 한탄강은 철원 평야 사이에 푹 꺼진 협곡이어서 다행스럽게도 촬영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군인은 딱히 통제라고 할 만한 뭔가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걸었다. 가벼운 농담과 군대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디피는 봤느냐” “요즘 병사들 말 안 듣지 않느냐” 같은.

어스름할 무렵 촬영이 끝났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해설사님과 군인에게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전통시장에 있는 오래된 분식집으로 의견을 모았다. 나름 군청에서 인증한 ‘노포 식당’이었는데 가격도 좋고 맛도 훌륭해 성대한 분식 파티를 벌였다. 맛난 떡볶이와 튀김과 순대를 먹으며, 엄마 또래의 해설사님과 민방위까지 마친 아재인 나는 스물다섯 살 하사의 군생활 고충을 들었다. 세상 갑갑한 게 군대이고, 군인이란 진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기본 복무기간만 마치고 전역할 예정이라는 하사에게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한 줄 아느냐’ 같은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서 조금 후회했다. 여하튼 추억 돋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분식점 때문에 철원을 또 가고 싶을 정도다.

철원 민속분식에서 먹은 음식들. 집 근처에 있다면 일주일에 세번은 갈 것 같다.

촬영도  마쳤고 기사와 영상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자 한국의 내로라할 만한 절경인 한탄강에 흉물스러운 다리가 생겼다고, 자연을 파괴했다고 비난하는 댓글이 많았다. 내가 잔도길을 너무 멋지게만 포장해줬나 었으나 무난히 드론 데뷔전을 치렀다는 점에서 흡족했다. 사실 그렇게 가볍게 지나칠 문제가 아닌  알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 잔도길과 그와 비슷한 출렁다리, 케이블카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기사와 영상이 결국엔 그런 식의 개발을 긍정해주는 분위기로 비쳤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일주일 뒤 충남 당진으로 출장을 갔다. 가톨릭 성지순례지 취재였기에 드론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 그래도 챙겨갔다. 성당과 성지 몇 곳을 촬영하고 마지막 촬영지인 수변공원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너무 추웠다. 맨손으로  조종기를 조작하다가 동상에 걸릴 것 같았다. 냉큼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큰 나무나 높은 건물 같은 장애물이 보이지 않았기에 차 안에서 조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륙을 하고 드론을 수직 상승시켰는데 5m쯤 올라갔을까. 갑자기 드론이 고꾸라지며 추락했다. 아뿔싸. 전깃줄을 못 봤다. 다시 냉큼 차에서 뛰쳐나갔다. 날개와 목이 부러진 드론의 모습은 처참했다. 만취한 운전자가 전봇대에 냅다 들이박은 자동차, 조종 실수로 추락한 헬기, 전장터에서 사경을 헤매는 부상병을 보는 것 같았다. 하늘이 노래졌고 속이 쓰려왔다. 왜 차 안으로 들어갔을까. 왜 전깃줄을 못 봤을까. 뺨을 때리며 자책했다. 이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진짜로 때렸다. 아주 세게. ‘에라이 멍청아!’라고 소리치며.

날개와 목이 부러진 드론 ㅜㅜ 추락한 새를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보내는 심정으로 배송했다.

교통사고 환자는 최대한 빨리 치료해주는 게 도리다. 곧바로 드론 회사에 AS를 접수하고 사고지 근처 우체국에서 만신창이가 된 드론을 포장해 배송했다. 수리비는 생각보다 적게 나왔고 사고 열흘만에 완쾌된 모습으로 드론이 돌아왔다. 아내가 “그 정도면 다행이다” “수업료 치렀다고 생각해라”라고 다독여줬다. 진짜 그런 것 같다. 첫 촬영을 너무 매끄럽게 마쳐서 잔뜩 어깨뽕이 솟아 있었는데 어깨를 다시 원위치로 돌이켜야 했다. 드론은 정말 얌전하게, 겸허하게 다룰 일이다. 드론은 촬영장비이기 전에 운행 장비, 비행 장비라는 사실을 사고가 나서야 깨달았다. 우습게만 봤던 교통안전공단의 교육 내용을 무시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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