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화이트호스 오로라 여행
쓰고는 싶은데, 써야는 하는데 영 안 써지는 이야기가 있다.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지나쳐서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이 막히기 전, 마지막으로 다녀온 캐나다 여행(정확히는 출장)이 그렇다. 모두가 버킷리스트로 꼽는 오로라를 보러 가는 취재 여행이었다. 브런치 시작할 때부터 오로라를 집대성(씩이나?)하는 글을 써보자 했는데 여태 미뤄뒀다. 당시엔 오로라로 책 한 권도 쓰겠다며 의욕 충만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감격도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더 이상 미뤘다간 오로라가 과자 이름인지,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인지 헷갈릴 지경이 될 것 같아 자판을 두들겨본다.
2020년 3월, 생애 두번째 오로라 여행을 다녀왔다. 첫 오로라 투어는 2018년 12월에 떠났다. 목적지는 같았다. 캐나다 북부 유콘 준주의 화이트호스. 브런치에 ‘코로나 시대의 여행’이란 카테고리에 글을 쓰고 있어서 나름 원칙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의 여행만 글로 쓰고 있는데 이번은 예외로 해야겠다. 2020년 3월에 다녀온 여행이 첫 오로라 여행 경험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규칙 위반을 양해해주시길.
유콘 지역은 사실 오로라로 가장 알아주는 동네는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인정한 최고의 오로라 관측 명당은 따로 있다.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란 동네다. 북극광이라 불리는 오로라는 태양풍과 지구 자기장이 만나 형성된다. 우주에서 보면 ‘오로라 오벌’이라 불리는 초록색 둥근 띠가 북극권 쪽에 떠있는데 자기장이 강하면서도 날씨가 건조한 동네일수록 이게 잘 보인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노르웨이 트롬쇠, 아이슬란드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옐로나이프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 정부가 옐로나이프보다는 관측 조건이 조금 불리하지만 관광지로 키워볼 만한 동네로 지목한 게 화이트호스였다.
화이트호스에 도착한 첫날밤부터 오로라 투어에 나섰다. 오로라 투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다. 인공 빛이 없는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하염없이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거다. 현지 투어 업체가 만들어둔 따뜻한 텐트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가이드가 오로라가 보인다고 알려주면 뛰쳐나가는 식이다. 투어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몰고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른바 ‘오로라 헌팅’이다.
당시 다섯 밤을 오로라 투어에 나섰다. 보통 3일 도전하면 관측 확률이 90%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 말은 어느 정도 믿을 만했다. 닷새 중 두 번 오로라를 알현했으니까. 소감은?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구름으로 덮였던 북쪽 하늘에 상서로운 조짐이 보이더니 레이저빔 같은 초록색 빛이 솟구쳤다. 그리고는 초록색 커튼이 바람에 춤추는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영하 15도 추위도 느끼지 못했고, 30분 이상 이어진 빛의 물결을 망연히 바라봤다. 사람이 거대 감동을 경험하면 말을 잊는다. 이때 내가 그랬다.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위용에 그저 압도당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기사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말로 푸는 게 영 고충이었다. 그래서 기사에 MSG를 사정없이 첨가했다. “오로라는 그저 빛이어서 아무 소리가 안 나는데 조성진의 쇼팽 연주가 귓가에 맴돌았다.” “ 홍콩의 야경이 이리 황홀할까, 프라하의 밤거리가 이렇게 낭만적일까” “호텔로 돌아와서도 감격이 이어졌다. 객실 천장에 초록빛이 어른거렸다.” 다시 보니 낯간지러운 구라의 향연이다.
화이트호스는 오로라를 볼 수 없는 낮에도 제법 즐길거리가 다양한 편이다. 뜨끈한 온천도, 야생동물 구경도 좋았지만 남는 시간에 다운타운을 쏘다닌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구별하기 쉽게 컬러풀하게 색칠한 건물들은 앙증맞았고, 냉혹한 날씨와 달리 사람들에게선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2만 5000명밖에 안 사는, 인구가 서울의 ‘동’ 정도인 이 도시의 노동자 대부분은 외국 이주민이다. 관광업계 종사자는 아시아인이 많다. 오로라에 반해 투어 업체에 취직한 일본인 가이드, 워킹홀리데이 왔다가 화이트호스에 정착하게 됐다는 한국인 호텔 직원에게는 괜히 더 마음이 갔다.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계절 뚜렷한 아시아에 살다가 북위 60도 도시에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일자리가 있다면 나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그러기엔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당신들의 도전이 멋지다며 엄지척! 했고 핫팩, 햇반, 라면, 참치 캔 등 챙겨 온 물품들을 건넸다.
화이트호스에 사는 캐나다인 중에는 예술가가 많다. 현지인의 설명이 흥미롭다. “자연 풍광이 멋지고 스트레스가 없고 밤이 길어 할 일이 없으니 이만큼 예술하기 완벽한 조건이 없겠죠?” 그래서일까. 박물관, 갤러리, 카페, 헌책방 어디를 가나 멋들어진 그림이 많았고 주민들이 주축이 된 소규모 공연도 곳곳에서 펼쳐졌다. 베이키드(Baked)라는 카페에서 진행한 캐럴 공연이 훈훈한 기억으로 남았다. 피아노 한 대로 지역 가수(프로페셔널은 아닌 듯)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와인을 홀짝이며 음악을 감상하고 서로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거대 감동은 실제로 맞닥뜨린 뒤에는 어떤 허무함이 몰려온다. 오로라를 봤을 때 그랬다. 알래스카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해발 6190m 디날리 산 상공을 날았을 때,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한 무리의 야생 코끼리를 마주쳤을 때 그랬다. 그때마다 세상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다시 여행 욕구가 솟구치기보다는 침잠하는 기분을 느꼈다. 세상의 비밀을 다 알아버린 뒤의 허탈함이랄까. 아니다. 어쩌면 세상이 아니라 내 자신이 시시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저 위대한 자연 앞에서 한 점 먼지 같은 내 존재에 대한 자각이랄까. 오로라를 만난 뒤 여행기자로서 슬럼프를 겪었다. 어떤 여행도 흥분되지 않았다.
반면 소소한 감동이 차곡차곡 쌓이면 진득한 추억으로 오래 남는다. 화이트호스라는 북녘의 소도시가 내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2020년 코로나 창궐이 시작한 시점에 다시 화이트호스로 날아가는 길, 오로라를 또 본다는 것보다는 사랑스러운 도시를 다시 만난다는 게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