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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l 31. 2018

삼겹권과 계곡권

삼겹권, 계곡권 하니 무슨 소림 무술 이야기 같은 제목이 되었기는 하지만, 다들 짐작한 대로 불타는 한반도 열기를 눈곱만큼 이나마 피해보고자 계곡에 다녀온 이야기이다.


다녀온 곳은 철원의 담터계곡. 아이들이 자란 이후 계곡이란 곳을 별로 다녀온 적이 없는지라 계곡 피서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지막 다녀온 것이 벌써 4년도 훨씬 전. 그때도 올해처럼 비가 오지 않아 가물었던 여름이었다. 파주의 한 계곡에 딸아이와 그 친구까지 동행하고 갔었는데, 계곡마다 식당이 차지하고 있어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식당에서 가둬놓은 더운 계곡 물에 발 담그는 시늉만 한 채 식당 평상에서 앙상한 닭다리 뜯다 온 것이 마지막 계곡의 기억이다. 


올해는 작정하고 출발하기로 한지라 좀 멀더라도 사람이 별로 없는 곳, 그러나 유량이 풍부하고 맑은 물이 있을 것. 계곡을 차지한 닭집이 없을 것의 조건을 걸고 폭풍 검색. 멀리 철원의 직탕폭포를 목표로 삼고 '출발!' 했으나, 직탕폭포는 치와와 한 마리를 포함, 튜브를 띄우고 놀기에는 어마 무시한 물살을 가지고 있어 예비로 검색해두었던 근처 담터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은 꽤 깊어서 도로는 포장에서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먼지 풀풀 날리고 자갈이 구르는 도로를 달리면서 물놀이할 곳을 찾아봤으나 한 숨만 나온다. 내가 얼마나 순진했던가. 닭집 없는 계곡이라니, 정말 거창한 꿈이 아닌가. 담터계곡 역시 오토 캠핑장, 닭집, 방갈로 등이 계곡 진입로를 차지하고 있어 계곡에 접근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한 곳을 발견하고 주차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평일이라 사람이 적어 계곡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깔 수 있었다. 준비한 튜브에 바람을 넣어 계곡물에 띄우고 동동거리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엄마, 저 집 고기 굽는다." 

바비큐를 준비하려 했으나 계곡에 가서 그런 거 구워먹는 거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는 딸아이 때문에 계곡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은 나오다가 늦으막이 근처 식당을 가자고 타협을 봤던 터. 아이들 웃음소리만 가득하던 계곡에 점심 무렵, 한 가족이 들어오더니 드디어 고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다. 따로 바비큐 도구를 가져오지 않았던 듯 계곡 물막이 시멘트 다리 위에 커다란 계곡 돌을 줏어다 놓더니, 그 사이에 숯불을 피우기 시작한 것. 계곡은 순식간에 고기 타는 연기가 그득해졌다. 

계곡에서 고기 굽는 거 아니라고 했던 딸아이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엄마, 계곡에서 고기를 저렇게 구어도 돼? 아니, 계곡에서 고기 구울 때는 냄새를 맡은 사람은 누구나 가서 한 점씩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순간 웃음이 빵 터진 나도 맞장구를 친다.

"맞네, 연기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가서 먹을 권리를 주는 거야. 맞네, 삼겹권이 있어야 하겠네." 

"청와대 청원을 넣어볼까? 계곡에서 삼겹권을 보장해주세요. 하고"

"그럴까?"

가만 생각해보니 딸아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청정 계곡에 와서 자욱한 연기로, 냄새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고기 한 점 얻어먹는 것으로는 사실 깨어진 계곡의 평화를 보상받기에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채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기 냄새가 오죽 힘들겠는가. 딸아이는 계곡에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은 잊었나 보다. 


"그것보다 계곡권 보장 청원이나 넣어보자. 계곡마다 다 식당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우리같이 식당 이용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갈 데가 없잖아."

역세권, 숲세권도 있다는데, 계곡권이라고 없을 이유가 뭐 있겠나. 실은 서울 근교 계곡을 갈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런데는 모두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어 계곡에 접근 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멀리 강원도 철원 골짜기에 있는 이 계곡조차도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나 같은 피서객들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우니 수도권은 오죽하겠는가. 아마도 우리가 놀았던 계곡도 휴일이었으면 식당에서 출입을 통제했을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는 곳에 철망으로 된 울타리가 있었다.)

"엄마, 누군가 이미 다 했을 걸?"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 청원을 받아들여 전 국민이 아름다운 계곡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곡권 보장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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