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게만 너무나 소중한....

by 김경희
이것도 수행평가예요?

가끔 이렇게 묻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이것도 수행평가예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늘 이렇다. "미술시간에 하는 모든 활동은 수행평가야."

'이것도 수행평가냐, '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 속에는 지금 하는 활동이 수행평가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미가 들어있을 것이다. 또, 반대로 수행평가가 아니라면 대충대충 하겠다는 마음이 섞여있는 질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얄팍한(?) 속내와는 별개로, 수업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아이들의 작품은 수업하는 교사인 나 자신의 작품이 아니겠는가. 수업의 전 과정에서 아이들의 발전 과정을 보고 나 또한 배우면서, 아이들의 작품은 내 작품인양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도 자신의 작품을 소중히 여겨 줬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갖게 된다.


"이것도 수행평가예요?"가 수업 도입부에서 흔히 듣게 되는 가장 서운한 질문이라면, 학기 말에 듣게 되는 가장 슬픈 질문은 "버려도 돼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이다. 나는 대개의 경우 아이들의 활동했던 작품을 모아 두었다가 학년 말에 한꺼번에 나누어준다. 시월쯤 있는 학교 축제 전시를 준비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혹시 있을 점수에 대한 이의 제기를 받을 때 작품을 꺼내 보여주면서 왜 그런 평점을 받았는지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러 자신이 공들인 작품을 돌려받으면서 "버려도 돼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질문은 "이것도 수행평가예요?"라는 질문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만일 평가라는 것이 사라진다면 이 아이들이 수업에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참여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다소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수업이 고통이었지만 수행평가라는 현실 앞에서 억지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수업 과제가 자신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해서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자신의 성장의 과정인 작품을 버려도 되는 잉여의 존재로 여기는 아이들의 태도는 많이 아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언제 줘요?

반면, 교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의 작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동동거리기는 학생들을 보게 될 때다. 학기말, 수행평가가 모두 끝나고 평가 결과를 확인한 후 작품을 나눠주는데, 이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학기 중에 나에게 찾아와 작품을 언제 돌려받느냐고 묻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언제 줘요? 질문은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전화였다.

2004년, 그 해에 중학교 3학년 여학생들과 아트북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트북 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하드보드지로 외관상 책으로 보이는 상자를 만든다. 책 표지의 제목은 우리가 흔히 아는 책들일 수도 있고 직접 만든 가상의 제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을 열면 반전이 일어난다. 일종의 언어유희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수업이었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책 제목이 <사랑스런 강아지>인데, 책을 펼치면 보신탕을 의미하는 강아지의 뼈가 들어있는 그릇이 나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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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 모 여배우가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비판해서 한 차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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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교과서> 표지를 열면 누드 김밥이 나온다.

학년이 끝날 무렵, 여느 해처럼 나는 아이들의 작품을 모두 나눠주었다. 그런데, 겨울 방학 동안 있을 교사 연수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 사례를 나누기 위해 십 여점의 작품을 남겨두게 되었다. 물론, 작품 주인들에게는 2월 개학한 후 나눠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해 둔 터였다. 방학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찾아왔다. 자기 반 아이의 부모님으로부터 작품을 언제 돌려줄 것인지 묻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면서, 꼭 돌려줄 테니 걱정 마시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3학년이라 졸업하면 다시 학교를 찾아오기 어려우니 아마도 소중한 작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조바심이 났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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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톻해 '압력(?)'을 행사했던 학생의 작품. 얼핏 봐도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다이어트가 주제다.

아이들의 "언제 줘요?"라는 질문은 늘 나를 기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수업이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사로서 자신의 수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활동의 결과물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소중하게 보관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교사의 욕심일 뿐이다. 성장 과정의 아이들에게 수업이란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것이라야 하지 않을까. 수업의 시간은 아이들의 성장의 시간이었을 테니,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이미 아이들 속에 스며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그 모든 수업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면 아마도 탈진해서 쓰러질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 아이는 그 작품을 지금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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