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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Oct 18. 2018

6. 점찍어 그리기

예술과 과학 사이

점찍어 그리기 수업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딱 한 번 해봤던 수업이다. 다른 미술교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 아이들도 나도 그다지 재미없었다고 느끼게 되는 수업은 다시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미술과 수업에서 꼭 필요하다고 하는 단원은 설사 재미없다 하더라고 진행한다. 예를 들어 사칙연산이 재미없어한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점찍어 그리기 수업은 병치 혼합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는 수업이다.   

미술 교과에서 꼭 학습해야 하는 내용 중 하나가 색의 혼합이다. 색의 혼합은 크게 물감의 혼합과 빛의 혼합 두 가지로 나뉜다. 이때 중간 혼합이라고 하는 것을 함께 배우게 되는데, 이 중간 혼합은 실제로는 섞이지 않으나 우리 눈에 섞여 보이는 혼합이다. 병치 혼합과 회전 혼합이 여기에 속한다.

 

병치 혼합을 설명할 때 예로 드는 것 중 하나가 점묘화. 이 기법은 19세기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 회화에 적용했다. 19세기 이전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미리 섞어서 그림에 칠했다. 하지만,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다. 대신 원색의 물감을 팔레트에 짜 놓고 작은 색점을 도화지나 캔버스에 찍는다. 이 색점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시각적으로 섞여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탁색을 사용하지 않고 맑은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태양빛에 경도된 신인상파 화가들은 태양빛에 탁색이 없듯이 캔버스의 그림에도 태양빛처럼 맑은 색상을 구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물감으로 표현하는 빛의 혼합

물감을 실제로 섞지 않고 시각 작용에 의해 섞여 보인다는 의미에서 중간 혼합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색의 혼합의 측면에서 볼 때 점묘 기법은 물감의 혼합이 아니라 빛의 혼합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물감을 사용하여 빛의 혼합을 캔버스에 구현하는 회화 기법이라고 해야 할까.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물감 화가들의 선택에 의해 이미 특정한 색으로 섞인 채 도화지나 캔버스 등에 입혀진다. 우리는 화가들이 선택한 최종 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묘화에서  도화지나 캔버스에 찍혀있는 색들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과정은 고스란히 빛이 혼합의 원리에 따른다. 도화지나 캔버스에 찍힌 작은 색점들은 각각의 고유한 빛의 파장을 반사하고, 그 파장들이 우리 눈에 인식되면서 최종적으로 도화지나 캔버스의 색과 다른 혼합된 색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과학의 원리인가. 인상파 화가들이 색의 근원으로서의 빛의 현상에 경도되었던 사람들이라면 신인상파 화가들은 이를 과학의 원리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들이었다. 신인상파의 활동 기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고, 곧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하나의 미술 경향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신인상파의 단명은 과학의 원리에 지나치게 접근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은 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주의에 곧 그 자리를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과학 이론에 대한 실험에 뜨거운 열정이 덧붙여졌다면 어땠을까? 과학과 예술과의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마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표현 수업 속 감상 수업

점묘화를 처음 그린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몇십 년 후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점묘 기법을 수업 시간에 따라 할 것이라고 상상했을까? 


미술 수업시간에 이미 지나간 여러 화파들의 기법을 따라 그려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점묘 자체를 재현한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시대, 그 사람들의 시각으로 들어가 본다는 의미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으며, '왜 그 사람들은 이런 기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미루어 이해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려본다는 것은 크게 보면 감상 수업 방법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즉, 표현 수업으로 구현하는 감상수업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 감상을 표현 수업 속에 구현하는 수업 방법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미술의 전개 과정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습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수업 방법은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기말고사 이론 수업을 위해 진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반면 특정 미술 사조나 작가에 대해 연구한 후 이를 작품으로 연결하는 수업의 경우, 감상수업이라기보다는 표현 수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다. 즉, 다양한 만들기, 그리기를 하면서 자신이 주제로 삼은 미술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수업으로 명화광고 만들기, 예술가의 방, 입체파 따라하기 등 많은 수업들이 있다.


왼쪽:예술가의 방(고흐의 방.상자 안에 좋아하는 예술가의 방을 디자인한다.) / 오른쪽:명화광고(죽부인. 다빈치의 그림과 죽부인을 연결하여 만든 광고)


왜가 빠진다면....

점찍어 그리기 수업을 했던 당시 나에게는 "왜"가 없었다. 단지, 아이들이 좋아할까, 아이들에게 유익할까 등의 생각만을 막연히 했던 것 같다. 더구나 점찍어 그리기 수업은 신인상파에 대한 이해를 위한 수업은 아니었다. 병치 혼합을 이해하기 위한 수업이었다. 점을 찍어서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병치 혼합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수업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꼭 필요했을까? 점을 찍느라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일 수업의 관점을 바꾸었다면 점찍어 그리기 수업의 내용도, 이 수업에 대한 평가도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또 있다. 신규 때 여자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했던, 색종이 찢어 붙이기 수업이다. 작은 점 크기의 색종이를 붙이는 수업이었는데, 엽서 크기의 그림을 완성하는데 거의 두 달이 걸렸다. 모자이크의 종이 크기를 크게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음에도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발동된 아이들은 샤프펜슬로 색종이를 작게 찢어 붙이는데 목숨을 걸었다. 나중에 내가 한 번 만들어 보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무척 컸던 기억이 있다. 나는 미술 교사가 어떤 수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스스로 해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수업에서 "왜"가 왜 중요할까? "왜"는 바로 학습 목표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학생들이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고 수업을 기획하는 교사가 꼭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왜'가 빠진 활동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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