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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Nov 03. 2018

9. 인천 신나는미술교과연구회

교사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수업과 생활지도일 것이다. 가끔 행정업무를 잘하는 교사를 최고로 치는 관리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수업과 생활지도야말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교사가 이 두 가지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교사는 수업을 잘 하지만, 학생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상담과 생활지도를 참 잘하는 교사들도 있다. 가끔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동료 교사를 만나게 되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생활지도와 상담이 늘 어렵다. 누군가를 잘 관찰하고 어려움을 파악하여 섬세하게 살피는데 재주가 많지 않으니 늘 마음은 있어도 놓치는 일이 많다. 아마 인천 신나는 미술교과연구회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수업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게 분명하니, 나로서는 교과연구회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2012년 황해미술제 <신나는 자존>  상상놀이와 교과모임 활동 자료 아카이브 전시 모습

인천 신나는 미술교과연구회는 인천지역 미술교사들의 자율 모임이다. 교육청 등 행정기관의 요청에 의하거나 승진 가산점을 비롯하여 어떤 보상과도 관계없이 오로지 교사들의 자발성에 의해 이루어진 모임이다.               

"교과모임의 역사를 대충 정리해보면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0년대 초반에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한국미술사 공부도 하고 답사도 하면서 교과 전문성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었고요, 인천민족미술인협회 활동을 하면서 회원 중 미술교사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교과 관련 이야기와 공동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이 정식으로 결성된 계기는 1997년도엔가 교육부에서 공동수업을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공동수업을 진행하면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정기모임을 갖고 연수와 수업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3년경입니다. 그 해 인천지역 참실 대회 때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모임을 재정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상시적으로 수업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지요."(김정렬 선생님 인터뷰 중)

특히, 교과모임에서 진행했던 공동수업은 나에게 미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98년, 영상예술을 통한 창의력 계발의 열린 수업 모형 개발(슬라이드 영화 만들기)을 시작으로, 공동수업은 2012년까지 꾸준히 진행되었다.(그 이후는 공동수업보다 수업 나누기를 중심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1998년, 영상예술을 통한 창의력 계발의 열린 수업 모형 개발(슬라이드 영화 만들기)
2000년 광고 제작 수업 모형 연구
2004년 공동주택 만들기 수업과 인천민족미술인 협회의 황해 미술제 <공터> 전에 참여
2005년 비디오 케이스를 활용한 북아트 수업, 인천민족미술인협회 정기전에 <신나는 비디오 가게>로 참여
2006년 황해 미술제에 참여. 학생 미술 작품 전시회 <우리들의 함성전>, 미술과 자율 연수 2회 진행
2007년 전통미술 활성화를 위한 학교 교수-학습 자료 개발과 전통미술과 수업 방법론 직무연수 진행, 인천민족미술인협회 정기전에 학생 작품 전시  참여
2008년 애니메이션 교수-학습 자료 개발과 공동 수업
2009년 다른 나라 미술 수업안 연구와 공동 수업
2010년 2009 개정 교육과정 집중이수제에 대비한 아시아 미술 교수-학습과정안 개발과 공동 수업, 
2012년 상상놀이로 창의성 쑥쑥 신나는 미술 수업 공동 연구, 황해미술제 <신나는 자존>에 학생 미술작품으로 참여, 교과연구회 자료집 아카이브
2013-2018 정기모임과 수업 나누기
우리나라 곳곳 답사 여행

작게는 5-6개, 많게는 10여 개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함께 수업 이야기도 하고 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하다 보면 서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더욱이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이 많고 망설임이 많은 편이라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과 시각을 접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2004년 공동수업 <공동주택 만들기> 학생작품
공동수업과 전시회
공동수업은 '만드는 법', ' 그리는 법', '수업 노하우'의 공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공동수업은 그 수업이 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즉, 그 수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수업자와 학습자가 공유하는 과정이다. 수업이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다면 그 과정에서 교사 역시 성장하게 되며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업 형태라 할 수 있다.

공동수업은 미술과의 약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도시의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미술교사 수는 기껏해야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그러다 보니 서로 과목에 대해 의논할 동료 교사도 별로 없고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면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참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학교 안이건 밖에서건 서로 수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넓어질 수 있다. 좁게는 나에게 없는 수업에 대한 다양한 스킬을 배울 수 있고, 넓게는 수업에 대한 철학의 측면도 서로 나눌 수 있다. 더구나 각 교사들의 근무 조건은 남학교, 여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등으로 다양하고, 수업하는 학생들 또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수업 주제를 일반화시키기도 쉽고 학교 급별로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정보도 교환할 수 있다. 실패한 수업 경험 역시 서로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2009년, 공동수업<“신나는 방과 후 미술교실”을 위한 다른 나라 미술 감상 수업자료 개발> 중. 좌로부터 정밀묘사와 초현실주의/아트마케팅/닮음의 미학


공동 수업 중 일부는 지역 미술단체와 협동으로 전시회로 이어졌다. 교과모임 선생님들 중 인천민족미술인협회(이하 인미협) 소속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이 공동전시로 이어진 것이다. 인미협은 매해 8월경 황해 미술제란 전국단위의 미술전시회를 개최해왔는데, 당해연도 전시회 주제와 교과연구회의 연구 주제가 비슷할 경우, 혹은 전시회의 주제가 회원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인 경우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결과물을 함께 전시하여 발표해왔다. 2004년 황해 미술제 공터 전에 출품한 <공동주택 만들기>, 2005년 인미협 정기전에 출품했던 <재미있는 비디오 가게>, 2006년 황해 미술제와 함께 전시한 학생 미술작품 전시회 <우리들의 함성전>, 2012년 황해미술제 <신나는 자존>과 함께 했던 상상놀이와 교과모임 활동 아카이브 까지. 


2005년, 재미있는 비디오가게
2006년 우리들의 함성전 / 2007년 전통미술 주제 수업 전시회
세월이 흘러

세월이 흘러 영원히 청춘일 것 같았던 교과모임 선생님들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공식적인 공동수업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수업을 공유하고 나누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서로 나눈 수업이 자연스럽게 공동수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십수 년 전의 학생들과 지금의 학생들은 참 많이 다르다. 감성도, 생활도, 문화도 다 달라져서 어떤 수업은 시간의 흐름에 밀려 그 수명을 다하기도 했지만, 함께 수업을 고민했던 시간은 소중하게 남아 있다. 교과모임을 처음 시작했던 2000년대 초는 지금과 같은 온라인 소통이 없던 시절이었다.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리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수업을 서로 나누는 시대가 되니 교과모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젊은 교사들도 많아졌다. 게다가 최근 발령받은 신규 교사들을 보면 갖가지 IT를 다루는 능력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학생들과 젊은 감각으로 소통하는 등 아무런 준비 없이 교직에 '던져졌던' 우리 올드보이들과 달라 부럽기 조차 할 때가 많다. 반면, 교사들이 오프라인으로 만나 서로 수업을 나누는 모임들은 예전과 달리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보여 아쉬운 면도 있다. 인터넷에 자료는 널리고 널려있지만, 서로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의 가치는 자료 사이, 텍스트 사이의 어떤 것에 있지 않을까. 


지금, 바로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수업이라는 시간은 그 누구도 입체적으로 기록하기 어려운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지금, ' '여기'에서 숨 쉬고 바로 사라지는 공기 같은 것이 바로 수업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도 그 시간 속에서 각자는 최선을 다했음을 스스로 믿기에 학생들의 수고와 교사들의 수고 역시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화려한 학회 발표나 대회 수상과 달리 20평 작은 교실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보이지도 않고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 바로 수업이다. 사소한 것을 위한 작은 노력들의 가치를 돌아보는 일, 지금 내가 이 글을 적어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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