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오 남매의 장남이셨다.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 말고 늘 친척들이 함께 살았던 것 같다. 그중 아버지의 둘째 동생, 그러니까 둘째 작은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살았다. 상고를 졸업하신 후 모 은행에 근무하셨던 삼촌은 조카들과도 잘 놀아주셨던 분이셨다.
내가 초등학교 사, 오 학년쯤의 일이다. 어느 일요일, 삼촌이 일직 근무를 하게 되었나 보다. 삼촌은 나에게 짜장면을 사주시겠노라고, 동생을 데리고 충장로로 나오라고 하셨다. 70년대 중반, 형제 많은 집들이 의례히 그렇듯 짜장면 한 그릇을 온전히 먹어보는 것은 나의 로망이었다. 너무나도 신이 난 어린 나는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충장로로 나들이를 나섰다.
광천동에서 충장로까지 그 먼 길을 버스를 타고 갔는지, 걸어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날 나는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인어가 잡혔어요!"
삼촌이 다니시는 은행은 우체국 담과 나란히 있었는데, 휴일이라 문이 닫힌 우체국 앞에 한 남자가 난전을 펼쳐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남자가 파는 물건은 놀랍게도 인어의 사진이었다. 남자는 인어 사진을 사라면서 목청껏 외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바닥에 깔아 놓은 그 신기한 사진 주위에 몰려 서 있었다. 더러 사진을 사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15원쯤 받지 않았나 싶다. 어린 나는 돈이 없었던지라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충격적인 사진을 바라보고만 서있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인어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 나왔던 인어와 다르게 머리가 물고기, 다리가 사람이었다!
아아, 이쯤 되면 눈치챌 사람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짜장면을 먹기 위해 삼촌의 직장으로 향한 날 보았던 인어 사진은 사실 진짜 인어 사진이 아니라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었다!
L'invention Collective (1934)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짜 사진이라기엔 뭔가 어색해서 의심할 법도 했지만, 그때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작 초등학생이었고,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었고, 컬러텔레비전도 없었고, 컬러 도판으로 된 화집을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70년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이미지 정보를 손안에 넣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적인 화풍의 르네 마그리트 그림 한 점은 쉽사리 진짜 인어 사진으로 둔갑해 사람들에게 팔릴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조작된 이미지가 진실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