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창 밖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은 이사 온 집에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오래되고 낡은 고층 아파트인 우리 집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큰 도로 바로 옆에 있다. 그래서 창문을 열면 자동차 소음이 나를 때려잡을 듯 쏟아져 들어와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창문을 닫고 창가에 서서 자동차와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노라면 도시의 야경이 제법 근사해 보여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곤 한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해야겠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끄러지듯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차들의 불빛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잠시 멈추었다가, 때로는 질주하기도 하면서 질서 정연하게 어디론가를 향하는 불빛들. 창가에 앉아 불빛들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여행은,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떤 이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거나 휴식이거나 도피일 터이지만, 나는?....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나에게 여행은 '부재'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이 자리에서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 나를 지우지 않고 나를 지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그것이 여행이다. 왜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내가 나이고 싶지 않아 질 때, 내가 나를 부정하고 싶고 내가 사라지고 없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렇다고 진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 때. 그럴 때 누군가는 여행을 꿈꾸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의 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멀어지는 느낌을 자주 가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도 나에게 결국 도피인 것일까?
안방 화장실 문 옆에 큰 바구니 하나를 놓아두고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던져 넣는다. 어느 날은 문득 먹다 남긴 감기약을 던져 넣고, 어느 날은 계절이 다른 여행지에서 짐이 되지 않도록 두툼한 겨울 바지 대신 공항까지 입고 갈 기모 스타킹 두 벌을 던져 넣고, 또 어느 날은 정전이 잦다는 그 나라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여행 서적의 조언대로 서랍 어느 곳에 처박혀 있던 오래된 랜턴을 찾아 건전지와 함께 던져 넣는다.
바구니 속 물건들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임을 나는 잘 안다. 나의 세계에서 그들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저 물건들로 표현되고 있는 것임도 나는 잘 안다.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면서도 나의 세계의 경험과 습관 속에서 움직이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마음이 결국 저 물건들일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부재, 자신의 세계의 부재가 두려워지는 마음을 저 물건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은 어느새 작은 산이 되었다. 이 많은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떠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이 중 어떤 것은 나와 먼 여행지까지 동행하겠지만, 어떤 것은 다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저 작은 산은 떠나기 전 절반 이상은 허물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워진 만큼의 공간 안에 새로운 나를 채워 넣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