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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08. 2019

상  장

금장을 달고....

중학교 다니던 시절, 금장이란 것이 있었다. 시험을 보고 나면 전교 1등에서 80등까지의 명단을 뽑아 복도에 붙이고, 소위 '금장'이란 이름의 배지를 주어 시상하는 제도였다. 그러니까 금장이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일종의 당근이었던 셈으로, 금장을 따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도록 채칙질하던 학력 중심 교육의 가장 나쁜 제도였던 셈이다. 이름만 금장이었을 뿐, 쇠에 조잡하게 도금한 작은 배지였을 뿐인데, 가슴에 새끼손톱만 한 금장을 달고 복도를 걸어 다니노라면 어쩐지 마음도 번쩍번쩍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했던, 어린 시절이 새삼 부끄럽게 떠오른다.

  상  장
1등  2-3
위 학급은  중간고사에서 두서와 같은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상장>은 두 번째 근무한 학교에서 했던 조소 수업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던 여학생들과 달리 남학생들은 미술수업에 도무지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시키니 마지못해한다는 듯한 태도였는데, 내 기억에 남학생들도 즐겁게 참여했던 유일한 수업이 바로 이 조소 수업이었던 것. 완성한 작품 중 일부는 테라코타로 만들어 보관했던 수업이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유난히 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어떤 작품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매우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기성 작가들 못지않은 조형미를 뽐내기도 한다. 이 작품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마도 아마도 나의 중학교 시절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교육현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십 수년을 뛰어넘어 학력 중심 교육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는지.

 

 이 작품으로부터 다시 십 수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교육현장에는 온갖 교육실험들이 휩쓸고 지나갔고, 교육과정 또한 몇 번을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하나는 아직도 학력이 우리 교육의 유일한 목표인양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의 운영방침 내지 소신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야말로 무의미한 학급 평균 시상이라는 제도를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학교가 바뀌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니 이 작품은 비록 학생 작품이지만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수명을 다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도 어느 곳에 선가는 이 상장들은 만들어지고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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