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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10. 2019

바구니

몇 년 전, 부족한 수업시수를 채우느라 인근 학교로 수업 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소외 순회교사란 걸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순회 나간 곳의 미술 선생님의 자리에서 얇은 와이어로 만든 바구니를 보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이 만든 바구니들이었는데,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크고 작은(크다고 했댔자 고작 200ml 우유 팩 사이즈 정도.) 바구니들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기 끄트머리에 서너 시간 정도 수업의 여유가 생겼다. 남는 시간에 아이들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수업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몇 년 전 봤던 와이어 바구니가 문득 생각났다. 마침 미술실에 예쁜 빛깔의 와이어가 제법 있었다. 그걸 활용하면 따로 물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수업하기 전 미리 시제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약 80여 센티 길이의 와이어 스무 개 정도를 잘라 씨실과 날실 삼아 바닥을 엮은 후 꺾어 올려 벽을 짜서 네모난 바구니를 만들 계획이었다. 짜기 시작했는데, 어라, 와이어 다루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색깔만 근사했을 뿐, 와이어는 생각보다 미끄러웠고, 생각보다 잘 엉겼으며 한 번 구부러지면 생각처럼 잘 펴지지도 않았다.

몇십 분을 끙끙거리던 나는 마침내 네모난 바구니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와이어를 반으로 접어 비틀은 후 그 와이어를 뼈대 삼아 둥근 모양으로 짜기 시작했다. 이내 작은 바닥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제 벽을 짤 차례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빨리 늘지도 않고 생각처럼 이쁘지도 않았다. 짜 놓은 와이어는 미끄러워서 곧잘 제자리에서 빠져나와 헐렁거리고 돌아다녔고, 고백컨데 스스로 재미가 없어져서(실은, 시작부터 재미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잘라놓은 철사가 아까워 버릴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끝을 봐야 했다. 결국 바구니는 바구니도 뭣도 아닌 희한한 모양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래는 바구니 모양이요 중간은 철망으로 대충 올렸으며 마지막은 와이어를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놓는 것으로 시제품은 끝이 났다.

??????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미리 해보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하는 실수는 수업 주제를 정하면서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그 수업은 나에게만 재미있을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만 재미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재미가 없어도 꼭 해야 하는 수업도 당연히 있다. 만일 특별한 가치가 있다면 재미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수업이 꼭 좋은 수업이겠는가?) 무엇보다 바구니 엮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는 네 시간 동안 와이어와 씨름한 후 주먹만 한 바구니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교사인 나는 내 마음대로 끝을 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마음대로 끝낼 수도 없지 않은가. 미리 만들어보기 정말 잘했다. 앞으로 대바구니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어떻게 수업을 하셨까? 어떻게 하셨길래 아이들의 바구니가 그리도 이뻤을까? 그때 나는 바구니 이쁜 것만 보지 말고 어떻게 지도했는지 그 방법을 들었어야 할 일이다.  

 괴상한 바구니로 끝을 내는 것으로 바구니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구니는 내 스퇄이 아닌 것으로~~
사족
아이들에게 와이어를 주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줘봤다. 아이들은 내가 하려고 했던  고리타분한 바구니 따위와 비교되지 않는 재미난 물건들을  만들면서 놀았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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