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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행14_What good is a tail?

양곤 책방 구경

by 김경희

외국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서점에 가기는 쉽지 않다. 현지 언어를 모르니 책을 봐도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 수준인 데다 이곳저곳 기웃거릴 곳이 많으니 서점 같은 곳에는 갈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나는 특별히 서점을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길을 가다 서점이 눈에 띄면 한 번쯤은 들어가 보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특히 관심 있는 것은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이다. 어린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그 나라의 그림책을 보면 잘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곤 시내에는 골목마다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잠시 두어 군데 서점을 들어가서 그림책이나 화집을 펼쳐봤지만 아직 인쇄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탓인지 종이의 질이나 인쇄 잉크 색도, 인쇄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웅산 수지의 인기를 반영하듯 그녀의 사진이나 아마도 전기로 생각되는 책들이 꽤 있었고, 일 월이라서인지 벽에 붙이는 달력을 팔기도 했다. 내가 흥미를 가졌던 곳은 이런 서점보다 시청에서 양곤강 쪽으로 난 도로 주변의 헌책방들이다.

양곤 시청 근처의 서적 가판대와 그림책

양곤에 도착한 첫날, 슐레 파고다와 쉐다곤 파고다를 다녀온 우리는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대로 양곤의 식민지 건축물을 돌아보기로 했었는데, 그 경로에서 우연히 헌책방 거리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00짯, 1000짯 등의 균일가로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 가판대에서 마음에 드는 수채화 엽서를 발견하고 가격을 묻자 서적상은 대뜸 외국인 가격(으로 짐작되는)을 들이밀었다. 아, 책도 한 권에 오백 짯, 천 짯인데, 이 엽서 한 장을 그 가격에?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수채화 엽서를 살 마음이 사라졌다. 대신 후배 Y와 나는 균일가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What good is a tail?>은 균일가 코너에서 발견한 그림책이다. 색연필인지 콩테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다소 거친 선이 살아 있는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 1962년에 간행된 책이니 지질이나 인쇄 색도는 형편없었다. 다만 책의 표지는 투명 비닐로 소중하게 싸여 있었다. 갖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 시작하자마자 책을 사다니! 캐리어 무게를 일 그램이라도 줄여보고자 온갖 것들을 한국에 버리고 왔는데, 그것도 무게가 나가는 책을? 내가 말했다. '나중에 출국할 때 들러서 그때도 있으면 살까?' 같이 책을 고르던 Y가 말했다. '그때까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요? 지금 안사면 못 살걸요?' 망설이던 나에게 Y가 쐐기를 박는다. '선생님이 안 사시면 제가 살게요.' 후배도 책이 마음에 들었던가 보다. 여행 이틀째, 벌써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 짐이 얼마나 무거워질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지갑을 꺼냈다. '그래, 여행에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그 순간 사야 해. 다음이란 없어.' 게다가 한국 돈 천원도 안 되는 천 짯 아닌가?

선명하게 찍힌 U.S.I.S. Library MANDALEY, BURMA

호텔로 돌아와 그림책을 펼쳤다. 비닐 껍질을 벗기면 제법 깨끗해질 것 같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마분지 지질에 오래된 책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책을 뒤적이던 내가 큰 소리로 웃었다.

'Y 씨, 이 책, 만달레이 도서관 책이네.'

책을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온 'MANDALEY, BURMA'란 도장. 대체 어떤 연유로 만달레이 도서관에서 VIP 버스로 10시간도 더 걸리는 이곳 양곤까지 와서 가판대에서 팔리는 신세가 되었을까? 도서관에서 폐기한 책이었을까, 누군가가 반납하지 않고 팔아 치운 책이었을까? 그런데, 만달레이 도서관 책을 불법 해외 반출한다고 공항에서 걸리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매우 억울한데? 나는 분명히 양곤 뒷골목에서 이 책을 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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