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로 트레킹은 미얀마의 작은 도시 껄로에서 인레까지 이어진다. 당일, 일박 이일, 이박 삼일 등의 일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양곤에서 심야버스로 껄로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껄로에서 이른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쉰 후 당일, 혹은 다음날 일찍 트레킹을 떠난다. 여행객들은 트레킹을 위해 껄로에 들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골목마다 트레킹 전문 여행사들이 많다. 몇 군데 들러 상담을 받아보니, 전체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비슷했다. 요청 시에 숙소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짐은 여행사에서 인레 쪽 숙소까지 배송해준다. 여행객들은 필요한 간단한 짐만 가지고 떠나면 된다.
우리는 일박 이일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껄로는 인레보다 고지대인지라 전체적인 트레킹 코스는 완만한 편이다. 중간에 두 곳의 소수민족 마을을 들러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 준 식사를 하게 된다. 숙박은 현지인의 집에서 자게 되는데, 고지대인 데다 난방이 없어서 밤에는 매우 춥다. 핫팩을 가져가거나 얇은 침낭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관광지가 아닌 미얀마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와 다른 특별한 느낌이 있다. 트레킹은 인레호수 남쪽 끝에서 끝난다. 여기서 배를 타고 나웅쉐 등 숙소로 이동하게 된다.
배탈이 났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 먹은 것일까? 저녁부터 속이 많이 안 좋다. 짐을 싸다 말고 어제 먹은 음식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본다.
떡. 아침 일찍 사 먹었으니 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점심때 먹은 미얀마 정식. 잘 씻어서 조리했는지, 야채는 깨끗했는지 무척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식당에서 먹었으니 괜찮지 않았을까? 간식으로 먹었던 도사, 이게 가장 의심스럽기는 하다. 길거리 노점인 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릇 씻는 곳도 없었던 것 같고, 음식 만드는 인도인(으로 보이는)들의 모습이 상당히 지저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덕에 기름 두르고 부치는 우리네의 부침개 같은 음식이라 안심했었는데.... 아, 오이도 먹었구나. 야채가게에서 산 오이를 주인에게 부탁해서 깎아 먹었는데, 그 칼이 깨끗하지 않았다. 속으로 괜찮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모두가 다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원인이든 배탈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로컬 식당의 식재료들을 곁눈질로 살펴보면 그다지 깨끗하게 씻어서 조리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배탈약을 먹었으나 하루 종일 배가 아팠고, 화장실을 드나들었고, 배가 몹시 고팠다.
배탈에 제일 좋은 것은 굶는 것. 슈퍼에서 사 온 스포츠 음료를 홀짝거리면서 하루를 버텼다. 내일은 인레를 행해 트레킹을 떠나야 한다. 화장실 없는 들판을 일박 이일 동안 걸어야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어쩌면 외국인일 수도 있는 낯선 동행들과! 그것도 일박 이 일이 란 긴 시간을! 그러니, 내가 어쩌다 탈이 난 것인지 하루 전날 먹은 음식들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 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그나마 줄줄 새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스포츠음료 두 병으로 하루 나기
아침 8시, 여행사에서 호텔로 보내온 픽업트럭을 타고 여행사에 도착해보니, 이미 도착한 여러 국적의 여행자들로 여행사 사무실이 북적북적했다. 우리 팀은 한국인만 5명이다.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 그리고 우리 둘. 낯선 외국인들에게 말도 안되는 영어로 내 몸 상태를 설명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은 면하게 되었다.
여행사 사무실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은 후 캐리어에 인레 쪽 숙소 이름을 적은 택을 붙였다. 이제 캐리어는 인레 쪽 숙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 우리를 안내해줄 젊은 청년과 인사를 나누고 픽업 트럭버스(트럭 짐칸에 의자를 붙여 앉을 수 있게 개조한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30분 정도를 달린 후 껄로 외곽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미얀마의 겨울 풍경은 놀라울 만큼 한국과 닮았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어우러진 풍경이 그러했고, 낮은 산등성이에 펼쳐진 황토밭들이 그러했으며, 안개 자욱한 신새벽 풍경이 그러했다. 곳곳의 야자수와 선인장이 아니었다면 우리네 뒷산 어디메쯤이라고 해도 납득이 되는 풍경이었다. 우기가 되면 황토는 진흙이 되고 아마도 곳곳은 정글로 변하겠지만.
한국과 닮은 것은 또 있다. 그건 바로 음식. 특히 샨족의 음식을 먹다 보면 젓갈, 김치, 쌈, 된장국 비슷한 야채국 등은 평소 먹던 음식과 놀라우리만치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옥수수밭, 고추밭, 무, 유채 등 익숙한 작물들도 많이 보게 된다. 한국의 고추밭처럼 줄 맞춰 심긴 것이 아니라 마치 씨를 흩뿌린 듯 자란 낮은 키의 고추나무에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 작은 크기의 빨간 고추가 나무에 달린 채 말라가고 있다. 이렇게 막 자라는 데다 크기도 작은 고추를 어떻게 수확하는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하나하나 딴단다. 나는 무슨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고추 따는 탈곡기라도 기대한 것일까? 이렇게 딴 고추는 밭에서 말리게 되는데, 멀리 낮은 산자락에 빨간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밭들은 모두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다. 또, 벚꽃 나무처럼 분홍색 꽃이 핀 키 큰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체리나무라고 했다. 미얀마 전체에서 체리를 생산하는 곳은 껄로가 있는 따웅지가 유일한데, 건기에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꽃이라고 한다.
트레킹 코스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출발지인 껄로가 도착지인 인레보다 고도가 높아서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산을 내려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실제 걷는 시간은 오전 오후 각 두세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다만 들판에는 큰 나무가 거의 없어 태양은 뜨거웠고, 건기인지라 메마른 황토밭에서는 먼지가 일었다. 평소의 몸상태라면 절대 힘든 길이 아니었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나로서는 쉽지 않은 코스였다. 출발할 때는 행여나 뒤처질세라 가장 앞장서서 출발했지만 걷다 보면 어느새 제일 뒤로 처져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다섯 시경,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범먹이 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 되어 거의 탈진상태였다. 다른 동행들이 짐을 내려놓고 석양을 보기 위해 마을 뒷산으로 갔지만, 나는 숙소에서 무거운 다리를 찬 물로 씻고 쉬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샨족 마을에서의 점심식사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레킹 코스에는 소수민족의 마을 방문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마을에서는 직물을 짜는 샨족 할머니를 만났고, 두 번째 마을에서는 점심식사를 했는데, 아보카도 샐러드, 샨 누들, 과일 등이 나왔다. 특히 아보카도 샐러드는 아보카도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요리법이 궁금할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그 맛있는 샨누들도, 아보카도 샐러드도 맛만 보고 말아야 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다들 점심식사를 즐길 때, 오로지 나만 준비해온 스포츠 음료로 배를 채웠다는 슬픈 이야기.
그림의 떡, 점심식사(샨누들, 아보카도 샐러드, 점심상. 어두운 전등 아래
함께 동행한 친구들은 대학 졸업반이거나 독일 이직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생애 전환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각자 생각이 많은 듯했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삶의 공간에서는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상에서는 잘하지 않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어두운 전등 아래, 가져온 후레시 불빛에 의지하여 식사를 하고 술잔을 서로 나누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 일행의 이야기가 젊은 그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나름 유쾌한 저녁식사였던 것 같다.
9시가 넘어 잠을 청했다. 두터운 담요 여러 개를 포개 놓은 잠자리였다. 한 방에 사람 수대로 마련한 자리를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눅눅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깊은 산속이라 이불은 습기로 눅눅했고 대나무로 엮은 벽에서는 숲의 한기가 여과 없이 들어왔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Y가 가져온 핫팩을 얻어 허리 아래 깔고 누웠지만 한기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피곤은 추위보다 강했으니, 어느 사이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