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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여행18_면도칼과 헤어왁스

미얀마의 거리의 화가 1.

by 김경희
면도칼 그림

이 그림을 그들은 무엇이라고 부를까? 미얀마 말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편의상 면도칼 그림이라고 불렀었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화가가 붓 대신 면도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잉와 유적지에서 만난 거리의 화가

면도칼 그림은 일반 도화지가 아닌 인화지 같이 생긴 매끄러운 광택이 있는 종이에 그린다. 처음에는 옅은 농도로 바탕을 칠한다. 옅은 농도의 바탕칠은 면도칼을 움직이는 화가의 손놀림에 따라 금세 언덕의 수풀로 변한다. 운무 자욱한 강가의 우거진 수풀의 아련한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여 지켜보던 나와 후배 Y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Y에게 말했다. "야, 진짜 좋다. 꼭 우리 전통 수묵화 같지 않아?" 후배 Y는 한국화가다. 그런데, 나의 감탄이 무색하게도 화가는 그 위에 진한 색을 덧칠한다. 덧칠한 색은 면도칼이 긁어내는 선의 굵기와 방향에 따라 나무가 되고, 미얀마 전통 가옥이 되고, 우베인 다리를 지나가는 스님이 되어간다. 내가 감탄했던 담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림은 어느 사이 그 앞에 진열되어 있는 비슷비슷한 미얀마의 풍경화가 되어있었다.

사가잉 힐의 거리의 화가

그는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리는 그림의 모티브는 모두 그의 '머릿속'에 있다. 오랜 시간 같은 그림을 반복해온지라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다. 큰 붓으로 바탕을 칠하고, 면도칼로 긁고, 또 칠하고 긁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그림을 완성한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지켜보는 짧은 시간 동안 한 장의 그림을 완성했다. 물감은 빨리 건조하는 것 같았고, 건조하기 전에 재빠르게 형태를 그려내야 했기 때문에 손길은 더욱 분주했다.

사가잉 힐에서 만난 거리의 화가
헤어왁스?

'대체 무슨 물감이기에 저렇게 잘 마르지? 어떤 물감을 쓰지?'

염치없이 남의 작업대에 머리를 디밀고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이라 뚫어져라 물감통만 바라보는데,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핸드폰 카메라를 꺼낸 나는 화가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작업대를 슬며시 찍어본다. 화면을 크게 확대해서 사진 속 물감통을 확인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한다. 물감 통 뚜껑에는 헤어왁스라고 쓰여있다! 헤어왁스로 그림을 그린 거라고?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들이 진짜 헤어왁스를 썼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물감통으로 썼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일까? 한국에 돌아와서 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헤어왁스를 검색해봤다. 나도 한 번 면도칼 그림을 그려볼까? 이런 생각으로. 물론 생각만으로 끝났지만.


* 면도칼 그림은 만달레이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만달레이 힐, 사가잉 힐, 잉와 유적지에도 면도칼 그림을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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