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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02. 2020

온라인 번개

ZOOM으로 만난 자매들

설 명절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실천하느라 친정엄마도 형제들도,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두 달째. 어느 날, 톡방에서 셋째가 '우리도 화상 채팅할까?' 제안을 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학교 개학이 계속 연장되다 드디어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어 뉴스마다 갖가지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느 날처럼 sns로 수다를 떨던 중 '이러다 얼굴 한 번 못 보고 일 년 지나는 것 아니냐, '며 푸념하다 나온 이야기였다. 평소 같으면 시간이 되는 자매들끼리 가끔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했을 터였다. '학교도 온라인으로 수업한다는데, 우리도 한 번 줌으로 만나는 거 어때?' 그때만 해도 모두들 '한 번 그래 볼까?' 생각만 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다들 화상 회의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sns의 영상통화 말고.)


학교가 온라인으로 개학을 시작했다. 나도 학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연수를 받았다. 우리 학교는 구글 클래스룸과 줌을 사용하기로 결정이 난 터였다. 중3, 고3 수업이 있는 나는 4월 9일부터 실시간 수업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클래스룸으로 담임반 출석체크 공지를 하고 교과 방에서 학습자료와 실시간 수업을 할 줌 주소를 올리고, 수업시간마다 안 들어오는 학생들을 전화기 옆에 두고 독려하다 보면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고 퇴근시간이 되곤 했다.(심지어 야근도 했다.ㅠㅠ)


퇴근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매일 쓰러져 자던 날들이 열흘 남짓 지나 주말이 되었다.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자매들과 수다도 떨지 못하고 눈팅만 하던 나도 오랜만에 톡방에 참여해서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셋째가 다시 화상채팅 이야기를 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진짜 화상채팅이라도 할까?' 이미 줌으로 수업을 하고 있던 터라 내가 바로 방을 만들어 톡방에 링크를 공지했다. 진짜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언니가 서둘러 프로그램을 깔고 회의에 입장했다.(줌은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회의 참석이 가능하다.) 곧이어 한 살이라도 젊은 막내가 서둘지도 않고 익숙한 듯 회의실로 들어왔다. 화상채팅을 제안했던 셋째도 곧 회의에 참여했다. 그런데, 넷째는 일이 있는지 톡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 '얘 일 있나 봐. 톡도 안 보고 있어' '야, 우리끼리 수다 떨자.'


오랜만에 보는 자매들의 얼굴이었다. 언니와 함께 사시는 엄마도 언니의 작은 핸드폰 화면을 들어다 보며 모처럼 크게 웃으셨고, 평소 진중하신 형부도 화면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즐거워하셨다. 어린 조카들도 영상에 등장해서 한 마디씩 하고 갔다. 그런데, 셋째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소리가 나오지 않아 사장님처럼 미소만 짓고 있었다. 톡방으로 '나는 소리가 안 들려.'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나도 거기까지는 알고 있지 않은 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셋째는 회의방을 세 번이나 들락날락한 후에야 오디오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명색이 의사 선생님이 줌 회의 하나를 접수 못하고 들락거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식사 준비를 끝낸 넷째가 드디어 입장했다. 신도시에 사는 넷째는 길거리에서 만난 지인들이 '나 오늘 선생님 동생 만났어.' 할 만큼 나와 닮은 동생이다. 동생은 핸드폰을 들고 복도처럼 생긴 방을 지나 서재로 달려가는 모습이 작은 모니터에 그대로 잡혔다. '너 화면만 보면 집이 대궐인 줄 알겠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sns로 보낸 그림에 민원이 빗발쳤다. 언니는 왜 내 코가 돼지코냐며 원성, 넷째는 왜 언니만 이쁘냐고 원성, 다섯째네 딸내미는 엄마가 없다며 투정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줌 번개 도중 녹화를 시작했다. 회의가 끝나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동영상을 만들어준다. 나는 만들어진 동영상을 톡방으로 모두에게 전송했다. 영상을 받은 넷째가 엄마 핸드폰으로도 전송해드렸다. 엄마는 화면 속의 자식들에게 한 마디씩 잔소리를 하시면서 즐겁게 동영상을 감상하셨다는 언니의 전언이 있었다. 나도 이튿날 다시 보기를 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코로나 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언젠가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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