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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11. 2020

하얀 운동장

애기 사과

내가 근무하는 교무실은 3층에 있다. 복도로 나가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눈에 보이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다. 지난주부터 그 연못 가의 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초록색 잎 사이 주렁주렁 열린 새빨간 열매. 문득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진다.  아직 찬바람도 나지 않았는데 벌써 산수유가 익었을 리는 없고, 혹시 애기 사과일까? 애기 사과가 벌써 익었나?

우리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는 수량이 많지는 않으나 벚나무, 장미, 매실, 감나무 등이 골고루 심어져 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올해는 벚나무 건 장미 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올해 학교에서의 내 동선은 거의 교무실 붙박이다. 학교에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에서 움직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동료 교사들과도 점차 교류가 적어지고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면 원격수업을 하기 위해 미술실을 오고 가는 것이 학교에서의 거의 유일한 내 동선이다. 아이들이 등교를 할 때면 아이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나가서 그림도 그리고, 식사나 등교 지도를 위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갈 일조차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결에 계절도 바뀐 것 같다. 봄꽃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것도 같다.

 

창 아래로 보이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진 나는 오랜만에 교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홀로 익다 지쳐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애기사과
하얀 운동장

아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학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 같다. 일하는 틈틈이 쓸어내는데도 계단에는 먼지가 쌓이고, 아이들이 오가면서 만지작 거렸던 계단 손잡이는 어느새 둔탁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발길에 풀 자랄 틈이 없던 보도블록 틈 사이로 작은 풀들이 비집고 올라오는가 하면 넓은 운동장은 어른 무릎 높이로 풀이 자라 있기도 하다. 방학 전,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행정실에서 한 번 제거했지만, 오늘 보니 어느 사이 새싹 인양 풀들이 다시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하여 체육을 하고 쉬는 시간에 공을 차고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는 이상 겨울이 오기까지는 풀과의 술래잡기는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이곳저곳 돋아난 풀들을 제거하다 못한 행정실에서 운동장에 염화칼슘을 뿌렸나 보다. 멀리서 보니 마치 하얀 눈이라도 쌓인 양 운동장이 하얗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집은 세월이 가면 저절로 허물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손때가 타고 그래야 반짝반짝 윤이 나며, 발길 닿는 곳마다 흙은 더 단단해지기 때문에 잡풀이 자랄 겨를이 없다.  아이들이 빨리 돌아와서 학교의 곳곳을 윤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염화칼슘으로 하얗게 변한 운동장


아무도 봐주지 않은 학교 뒷뜰 꽃과 연못의 잉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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