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라고 하면 피카소를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텐데, 오늘은 입체파 화가인 페르낭 레제(1881-1955)를 소개하고 싶다. 페르낭 레제는 피카소와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화가이다. 그의 작품과 피카소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산업혁명 이후 세계에 대해 끊임없는 긍정을 보냈다는 점이다.
페르낭 레제 <건설자들>
기술의 진보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더 많은 시간과 향상된 삶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기계로 인해 인간의 입지가 더 좁아지게 될 것이라는 비판적 전망도 있다.
페르낭 레제는 어떤 쪽이었는가 하면 기술의 진보가 미래사회에 혁신을 가져올 것을 믿었다. 그의 그림에는 기계와 기술에 대한 묘사와 함께 건설에 참여하는 낙관적인 노동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공장, 발동기, 톱니바퀴, 베어링 등 기계와 이를 사용해서 건설하는 사람들. 원색의 강한 색감과 검정 테두리로 정리한 화면. 그는 모든 대상을 둥근 튜브처럼 묘사했는데,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큐비즘(입체파)에 비교하여 튜비즘이라고 불렀다. 그가 매료된 것은 사실 기계라기보다는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이라고 해야 맞겠다.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의 손, 건설, 그런 것이 그의 그림의 주제니까. 그는 기계가 노동자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바꾸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레제가 상상했듯 과연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가져오고,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인가?
<그녀, 안드로이드>는 멀지 않은 미래 사회에 로봇(영화에서는 '봇'이라고 부른다.)으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러시아와 중국의 합작 드라마다.
<그녀, 안드로이드>의 한 장 면(출처:공식 홈페이지)
러시아의 거대 기업 크로노스의 사장 토르토프는 러시아에 인간형 로봇인 안드로이드를 도입해서 부를 축척한 인물이다. 가사 도우미부터 경비, 공장의 생산라인까지, 그의 로봇은 도시 곳곳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일하고, 심지어 주인공 게오르그 사프라노프가 일하는 시체 검시소의 로봇은 그를 대신하여 시신을 검안하기도 한다. 토르토프의 안드로이드는 백화점 등에서 편리하게 구입이 가능하다.
로봇의 상용화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 예를 들어, 로봇 때문에 실직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예쁜 안드로이드와 섹스를 즐기기 위해 비밀리에 집을 구하는 남편들이 생긴다. 남편이 로봇과 잠자리를 했다면 이는 불륜일까, 아닐까. 이와 관련된 제1화 토론회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극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이다. '채굴을 비롯해 우주탐험과 위험산업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 발명된 스마트 기계가 유혹과 욕심을 위한 기계로 전락한' 것에 대한 경고에 대해 토르토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색스 봇은 정신적인 배출구로, 공격성을 낮춰준다.' (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다.) 그는 또 이렇게도 대답한다. '안드로이드는 기계다. 때문에 로봇을 질투하는 것은 커피머신이나 청소기를 질투하는 것과 같다. 섹스 봇은 사람을 닮았어도 가전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그렇다면 정말 로봇은 토르토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청소기나 커피머신 같은 가전제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등장인물 소개
로봇 제1원칙. 로봇은 자의든 타의든 인간을 해치거나 다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로봇 제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모든 명령을 따른다. 단, 제1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로봇 제3원칙.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단 첫 번째와 두 번째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만일, 이 원칙과 어긋나게 프로그로밍된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제3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거나 살인도 할 수 있을까?
<그녀, 안드로이드>의 한 장 면(출처:공식 홈페이지)
<그녀, 안드로이드>의 여주인공인 로봇 아리사는 토르토프가 중국에서 은밀하게 불법으로 수입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녀는 양자역학 컴퓨터로 움직이며 스스로 진화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가족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즉, 그녀는 로봇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는 천하무적이다. 가공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학습 능력도 매우 빠르다. 의사 게오르기 사프라노프와 그의 두 자녀인 귀여운 소니야와 질풍노도 사춘기 소년 예고르를 자신의 가족으로 등록한 아리사는 그 가정의 주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감형 로봇인 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게오르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의 사랑을 얻기를 원한다.
남자 주인공 게오르기는 한 때 잘 나가는 외과 의사였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시리즈물의 거대 악인 토르토프와는 좋지 않은 인연이 있다. 그는 알라와 이혼한 상태로, 아내가 키우는 두 자녀 소니야와 예고르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 알라는 새 남자 친구 레프와 호주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두 자녀의 이민을 막기 위해 그는 스스로 범죄의 한 복판으로 뛰어든다.
게오르기의 아들 예고르는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그가 학교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호주 이민뿐이지만 게오르기의 반대로 무산된다.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잔나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로봇 파괴 운동인 '해체자'의 리더 바르스의 여동생이다. 예고르는 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해체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게오르기의 어린 딸 소니야는 이 시리즈물에서 형사인 바를라모프와 함께 유일하게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다. 소니야는 우연히 아리사의 최초 사용자가 되고, 아리사는 그녀를 찾아 게오르기의 집까지 찾아온다. 예고르와 게오르기도 뒤를 이어 아리사의 사용자가 되는데, 아리사 입장에서 게오르기 가족은 곧 그녀의 가족이다.
<그녀, 안드로이드>의 한 장 면(출처:공식홈페이지)
이 영화에서 거대악은 대기업 크로노스의 사장인 토르토프이다. 온갖 부정으로 현재의 지위에 오른 그에게 아리사는 회사의 지배권과 새로운 부를 가져다 줄 보증수표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그로부터 벗어난 아리사를 되찾기 위해 그는 무슨 일이든 한다.
토르토프의 대척점에는 인간의 삶을 빼앗는 로봇을 없애려는 테러집단 '해체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로봇을 죽이고 로봇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칩을 전리품으로 획득한다. 그들의 로봇 파괴 운동은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시킨다. 산업혁명 당시 방적기가 사람이 하는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자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일자리를 잃고 분노한 사람들은 기계를 부수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기계를 부수면 자신들의 일자리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물에서 해체자의 활동은 미래의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봇에게는 죽음을!"이라는 해체자들의 구호는 곧 러다이트 운동의 소환에 다름 아니다.
주인공 게오르기 사프라노프의 가족과 안드로이드 아리사는 토르토프와 해체자 사이에 끼어 있다. 거대기업 크로노스의 토르토프, 해체자의 리더 바르스, 아리사로 인해 그 사이에 끼어들게 된 의사 게오르기와 그의 가족이 겪게 되는 사건, 이것이 <그녀, 안드로이드>의 주된 이야기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영화를 보시라.)
그녀 안드로이드 관전 포인트
1. 안드로이드 아리사는 공감형 로봇이다.
스타워즈의 두 로봇 R2-D2와 C-3PO
우리는 로봇의 외형에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만화 캐릭터처럼 인간의 특징은 가지고 있되 인간과 완전히 같지 않은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만화 철인 아톰에서의 아톰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에서의 R2-D2와 C-3PO 정도가 일반적으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의 피부와 털, 눈동자, 땀구멍과 같은 디테일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평정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녀, 안드로이드>에서는 캐릭터형 로봇 만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다. 특히 아리사는 다른 인간형 로봇과도 차원이 달라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게오르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질투를 하고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한다. 그녀의 의식은 마치 인간처럼 성장한다.
로봇의 입장에서 성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인간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인간과 가까워지는 것이 로봇의 성장을 의미한다면 아리사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처럼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살인 충동을 억누를 수 있는 자제력이 생긴다. 자신을 다른 인격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
<그녀, 안드로이드>의 한 장 면(출처:공식홈페이지)
그녀는 인간이 프로그로밍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녀의 사고와 행동은 세상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순수하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그녀의 가공할 만한 힘은 폭력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인간 역시 위험하지 않은가. 아리사의 입장에서, 인간이 로봇을 강간하는 것은 범죄인가 아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한 아리사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토르토프의 변에 따르면 로봇은 가전제품일 뿐이지 않는가. 가전제품을 강간하려는 인간은 인간인가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이런 도덕적 논쟁을 일으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 등장인물들의 참을 수없는 유약함
안드로이드 아리사를 포함하여 거대 악인 토르토프까지,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들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너무도 쉽게 범죄의 길을 선택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다. 양육권 소송에 필요한 돈을 위해, 로봇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거나 오빠, 혹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수술을 받기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식을 위해 등등.
<그녀, 안드로이드>의 한 장 면(출처:공식 홈페이지)
그래서일까. 등장인물들의 반복되는 저지레에 시리즈물의 후반으로 가면서 집중력이 조금씩 떨어진다.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꾼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좀 더 정당성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부분이 우리나라 드라마와 다른 점 같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인간 심리 변화나 감정 변화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래서 사건 개연성이 다소 떨어져도 정서적 공감을 통해 설득되는 경우도 있었다.)
3. 아날로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미래 세계
등장인물들은 모두 전자 팔찌를 가지고 있다. 이 팔찌 하나면 뭐든 가능하다. 홀로그램처럼 생긴 모니터 화면을 띄워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고, 은행업무를 비롯한 일상의 모든 것이 이 팔찌 하나로 가능하다. 심지어 컴퓨터 데이터도 작은 손가락 움직임 만으로 팔찌로 옮길 수 있다. 일종의 컴퓨터인 셈. 아마 미래 어느 날엔가는 핸드폰 따로, 노트북 따로, 갖가지 기기들을 블루투스나 usb포트로 연결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팔찌 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은 그럴듯 하고 멋지다. 언제나 예술은 세상의 상상을 한 발 앞서 나간다.
반면, 코믹하게도 이런 디지털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세계가 공존한다. 도시의 상공에는 늘 두어 개의 드론이 날아다닌다. 드론은 주인공 게오르기의 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떼고, 게오르기의 팔에 비친 영상으로 주차위반 고지서를 보내는 민첩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드론은 늘 도시의 상공에 머물면서도 해체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행적은 꾸준히 찾아내지 못한다. 그 결과 범인들은 너무나 쉽게 경찰을 따돌리고, 악당은 증거를 조작한다. 1화에서 토르토프의 사무실을 벗어난 아리사가 충전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메인 컴퓨터는 새로운 기기가 충전하고 있음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컴퓨터를 확인하지 않고 온 몸으로 뛰어다닐 뿐이다. 그밖에 디지털 키가 아닌 아날로그 자동차 기,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로 서명한 출국 동의서, 여권 등 영화 속 세계의 절반은 여전히 아날로그 세계에 머물러 있다. 만일 시즌 2를 제작한다면 미래사회의 모습을 좀 더 섬세하게 상상해주면 좋겠다.(아, 혼자 상상해보니 숨 막히다! 나는 지금 살고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4. 너무나도 가부장적인 세계관
<그녀, 안드로이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세계관이다. 안드로이드 아리사는 게오르기의 아내가 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다. 그녀는 자녀를 돌보고,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간 여자와 경쟁한다. (아리사의 최초 개발자의 유언은 아리사에게 가족을 찾아주라는 것이었다.) 토르토프의 아내는 유명 언론인이면서도 남편, 아버지, 아들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게오르기의 아내 알라는 새로운 남자 친구에 의지해서 현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반면, 아리사가 오매불망하는 게오르기는 너무나 차갑다. 비록 게오르기가 악당 토르토프와 대척점에 있지만, 그의 로봇관은 악당 토르토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토르토프는 로봇은 청소기나 가전제품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게오르기는 여러 번 그를 구해주고 그의 자녀를 사랑해준 아리사를 조금의 망설임도, 일말의 연민조차 없이 외면하고 버리고 떠나가게 둔다. 그는 아리사를 자신의 자녀를 구하기 위해 그저 이용할 뿐이다. 따뜻한 시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차갑다. 그의 감정은 오로지 사고뭉치 예고르와 귀여운 소니야 두 자녀에게만 향해 있다. (아, 소니야는 정말 귀엽다. 이 시리즈물에서 보고 또 보고 싶은 유일한 존재다.)
5. 탄복할만한 로봇연기
이 시리즈물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미래의 디지털기기와 함께 로봇 연기를 맡은 연기자들이다.
특히 아리사 역을 맡은 파울리나 안드레예바의 로봇 연기는 탁월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사람들은 인간형 로봇에게 알지 못할 거부감과 공포를 느낀다. 파울리나 안드레예바의 연기는 로봇과 인간 그 사이의 모습을 적절하게 연기하여 이 시리즈 물을 계속하여 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눈의 깜박임, 미묘한 신체의 움직임, 목소리 등, 미래의 안드로이드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공감이 인다. (현실에서라면, 나의 경우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아리사 외 다른 로봇들의 연기 역시 볼만 하다. 드라마 중간에 짐을 옮기거나 쇼윈도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로봇들이 나오는데, 그네들의 움직임에 하나같이 감탄하였다. 저 로봇은 어떻게 촬영했나 궁금했다. (16화 엔딩 크레디트가 끝난 후 등장인물들의 막춤이 나오는데, 로봇의 막춤을 보고 크게 웃었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영화의 원제는 "Better then us." 즉 '우리보다 나은'이라는 뜻인데, 우리보다 나은 것은 '무엇'일가? 안드로이드 아리사가 우리보다 낫다는 것일까? 그녀의 무엇이 우리보다 나은 것일까?
로봇이 상용화되는 미래사회는 페르낭 레제가 꿈꾸었던 것과 같은 유토피아가 아닐 수도 있다.(지금의 세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듯.) 과거 산업혁명 시대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렇듯(4차 산업혁명 결과 사라질 직업을 생각해보라.) 기술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명과 암 모두를 가져다줄 것이다.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지고 인간의 일을 나눠갖는 세계가 온다면 인간은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듯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될까? 일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행복할까? 그런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사회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