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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31. 2021

2_속담으로 눈을 '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 다섯 가지의 감각을 오감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80% 가까이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일찌감치 시각의 중요성을 알아차리시고 다음과 같은 속담을 남기셨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 와우!

시각의 중요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사용하는 속담이나 관용구에는 눈과 관련된 것들이 제법 많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을 비롯하여 '눈 가리고 아웅',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 '눈 뜬 장님'과 같은 속담도 있는가 하면 '눈이 돌아가다,' '눈 익고 손 설다,' '눈에 남다,' '제 눈에 안경,' '눈이 삐다,' '눈 맞다,' '눈이 시다,' '눈꼴시다,' '눈이 틔다,' '눈에 밟히다,' '눈 밖에 나다,' '눈을 의심하다,' '눈을 까뒤집다,' '눈이 번쩍 뜨이다'와 같이 다소 웃음이 비질비질 삐져나오는 표현도 있다.

그뿐이랴. '눈이 보배,'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안 보인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백문이 불여일견.'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눈 뜬 장님.' '눈 밖에 났다.' '눈에 가시.' '눈은 뜨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 '눈을 끌다.' '눈이 높다.' '눈에 불을 켜다.' '눈에 삼삼, 귀에 쟁쟁.'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눈 깜짝할 새' 등의 재치 있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섬뜩한 말도 있다.... 더 많은 표현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들만 대충 긁어모아보았다. (이외에도 정말 많다. 다 적으려면 석 달 열흘쯤 걸릴듯.)

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친구의 얼굴을 본다. 지나가는 버스의 번호판을 확인한다.(눈으로) 밤하늘의 별을 본다.'와 같이 감각기관인 눈을 이용해서 외부 세계를 감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표현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본다는 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왜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했을까? 원래 말이란건 다리 건널 때마다 각자의 생각이 보태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로 백 날 설명을 듣느니 차라리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리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늘 진실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  장님, 눈이 아무리 밝아도 코는 안 보인다.'라는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반면 '눈이 돌아가다'라는 표현은 아마도 감정적으로 몹시 격앙된 사람의 눈매가 평상시와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니 매우 사실적인 표현에 속한다.

냥아, 너는 무엇을 보고 있니?


그렇다면, 이런 표현은 어떤가? '눈엣 가시.' 세상에. 눈에 가시가 있으면 그 눈이 멀쩡할까? 또 '눈에 불을 켜다'는 어떤가. 대체 누가 눈에 불을 켜는 야만적인 행위를 한단 말인가? 정말 심각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눈 밖에 나다'라니.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눈 밖에 있지 눈 안에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눈이 높다?' 눈이 어디 이마에라도 붙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저 멀리 공중에 떠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눈이 이마에 붙어있으면 얼른 병원부터 가야 할 일이다.


내가 아무리 억지를 쓴들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다. 이 표현들의 '눈'은 현실의 내 얼굴에 붙어있는 눈이 아님을.

눈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눈은 뜨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을 하되 함부로 말하지 말고 신중하라는 경구다. 재미있다. 본다는 행위가 단순히 눈보이는 것들을 수동적으로 감각하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생각이 깃들여지는 적극적인 행위임을 말고 만든 속담임이 분명하다. 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주목이라는 중요한 심리적인 현상을 동반한다. 누구나 '그것'을 눈으로 수는 있지만 아무나 '그것'에 눈길을 주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눈길을 보내게 만든 것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여러 사람이 앉아있지만, 모두는 각자 다른 것을 본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본다. 나의 시각은 나의 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본다는 행위는 나만의 고유한 어떤 행위일 수밖에 없다. '눈을 끌다'라는 표현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그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목은 내가 의미있거나 나에게 중요해서 내가 그것을 선택한 것에 일어나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그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서 우리 모두의 눈이 그것을 동시에 보고 있을지라도 동시에 같은 것을 같은 강도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 나의 감각과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을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강도로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다는 것은 대단히 독특하고 개별적인 행위다.


본다는 행위가 없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 모두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자신의 의식 깊은 곳에 숨겨놓은 저마다의 자를 대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로 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거나 겪을 때 우리의 의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의 크기나 모양을 스스로 바꾸기도 한다. '눈이 틔다'나 '눈이 번쩍 뜨이다'와 같은 표현은 본다는 행위가 가져올 의식의 대변환을 말해주는 표현들이다. 유레카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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