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까옷.
꼬까옷.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외출할 때마다 애용했던 단어다. 내복에 셔츠에 조끼에 점퍼까지. 엄마는 추운 겨울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세라 껴 입힌 것이지만 어린 아기에게 여러 벌의 옷 입기는 매우 무겁고 번거로운 행사였을 것이다. 옷 입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달랠 때마다 나는 고갯짓으로 알 수 없는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주문처럼 말하곤 했다.
"꼬까옷 입고 어~야(저기란 의미로 썼던 단어) 가자."
이 말을 할 때의 내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쁜 옷을 입는다는 기대감으로 번거로운 옷 입기를 감내해주길 바랐을까? 아이들은 내 주문을 들으면서 외출의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번거로운 옷 입기가 즐거운 것이 되었을까? 여러 벌의 옷을 껴입어 동글동글해진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선다.
꼬까옷. 이 예쁜 어감의 단어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잊힌 단어가 되었다.
꼬까옷은 대체 뭐였을까? 입버릇처럼 그 단어를 썼는데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확히 무슨 뜻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쁜 옷인데 뭔가 더 특별한 이쁜 옷이다, 뭐 그런 의미였을까?
이런 노래도 있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꼬까신이 아직 낯설지 않았던 시절 배운 노래다. 귀엽고 앙증맞은 꽃신 하나가 노란 개나리의 색과 대비되어 예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대체 꼬까가 뭐냐고!
궁금하다. 꼬까옷이 뭘까?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꼬까옷 : 어린아이의 말이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말로, 알록달록하고 고운 옷을 이르는 말.
오, 그렇군. 알록달록 하고 고운 옷이 꼬까옷이구나.
이제 꼬까가 뭔지만 알면 되겠네. 꼬까옷은 꼬까+옷의 합성어일 테니까.
꼬까 : 어린아이의 말이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말로, 알록달록하고 고운 옷을 이르는 말.
여기에서 '어린아이의 말'이란 어린아이가 쓰는 말의 의미인 것 같다. 어려운 성인의 단어를 쓸 만큼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는 아무래도 단축어나 느낌을 강화시킨 단순한 단어를 많이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동어반복 아닌가? 사전이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어린아이들의 옷에 관한 단어가 또 하나 있었다. 때때옷.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때때옷이라 함은 설빔을 말했다. 그래서인지 때때옷을 생각하면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가 생각난다.
때때옷은 또 뭘까? 이것도 찾아보았다.
때때옷:알록달록하고 예쁘게 만든 아이의 옷.
그럼 '때때'는? 이번에야 말로 정확한 의미가 나오겠지?
때때 :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만든 아이의 옷이나 신발.
아,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느낌이다. 꼬까나 때때나 똑같이 어린아이의 알록달록한 옷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꼬까나 때때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단다!
교무실에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혹시 꼬까옷, 때때옷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물어보았다. 다들 자녀들이 사춘기를 넘어서인지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는 반응이다. 요새는 거의 안 쓰는 것 같다고도 한다. 그래서 혼자 상상해보았다.
'선생님, 꼬까옷 입으셨네요.' '할아버지, 오늘 꼬까옷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이 매장에서 제일 예쁜 꼬까옷 주세요.'
아, 이건 아닌 것 같다. 꼬까 건 때때 건 어린아이에게만 사용하는 단어인 것은 분명하다. 어린아이에게만 사용하는 단어이다 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된 것일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상품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꼬까가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사장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참 예쁜 단어인데 뭔가 아쉽다. 입 속으로 때때, 꼬까를 가만히 말해본다. 입 속에서 귀엽고 가벼운 뭔가가 간질간질 피어오르는 느낌이 난다. 아, 예쁜 색깔의 물감들이 톡! 톡! 튀어 오르는 느낌. 다 자란 성인은 도저히 소화하기 어려운, 아기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유치할 정도로 곱고 화려한 어떤 색깔이 귀엽게 물결치는 그런 느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