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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Oct 14. 2021

펜듈럼 촬영하다 밤새지 마란 말야!

* 글을 읽기 전 권장 사항: 첨부된 사진들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시기를 권해요. 왜냐하면 제가 찍은 펜듈럼 사진들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라 소박하거든요. 큰 화면으로 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못 느낄 수 있어요. 다음에는 수동 카메라로 한 번 찍어보고 싶네요.
팬듈럼에 꽂혀....

뭐에 꽂히면 옆을 보지 않고 달리는 말처럼 직진하는 습관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이번 주에 갑자기 펜듈럼에 꽂혔다.


펜듈럼이 무엇이냐. 펜듈럼은 진자(진동자)다. 전자시계 말고 똑딱똑딱하고 가는 시계의 추가 바로 진자다.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을 타지 않는가? 그것도 일종의 진자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진자는 최면술사의 주먹 끝에 달려있다. 최면술사는 시계추를 흔들면서 나른한 음성으로 속삭인다. 당신은 이제 잠이 들 것이다. 잠이 들 것이다....'                 

                       ................       레드 썬!


우연히 펜듈럼 촬영이란 검색어를 발견하고 촬영법이 급 궁금해졌다. 펜듈럼 촬영은 움직이는 진자 끝에 작은 전구를 달고, 어둠 속에서 진자와 함께 움직이는 불빛을 찍는 촬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진자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처음에는 큰 궤적으로 움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크기가 서서히 줄어든다. 이것을 기록하면 아름다운 궤적을 볼 수 있다. 하물며 이것이 빛이었을 때에야....(인터넷을 검색하면 화려한 불빛의 펜듈럼 촬영사진을 볼 수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다. 펜듈럼 촬영 메커니즘은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수동 카메라 말고 보통의 핸드폰 카메라 앱으로도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실내 자전거는 랜턴을 달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온 집안을 뒤져 자전거 랜턴을 찾았다. 가죽공예하고 남은 자투리 가죽으로 랜턴 불빛을 막고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다. 운동하겠다고 사놓은 실내 자전거에 랜턴을 묶었다. 실내 자전거는 운동기구였다가 옷걸이였다가 마침내는 랜턴까지 달게 되었다. 오마이 갓!!!

좌:랜턴 펜듈럼을 매달아놓은 모습   우:랜턴을 막은 가죽에 작은 구멍을 뚫어 불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

핸드폰 카메라를 방바닥에 놓았다. 아파트 베란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온 방 불을 끄고 커튼도 내렸다. 깜깜해야 잘 찍힐 것 같아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셔터 속도. 내 카메라는 갤럭시 노트 10+. 내 카메라에는 기본 앱 밖에 없다. 내가 촬영에 성공했으니 아마 대부분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이 될 것이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카메라 앱을 켜는 일.

고급 기능으로 들어가서 ISO 50, 셔터 속도 30초로 설정했다. 내 카메라 앱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셔터 속도는 30초. 셔터 속도 30초란 이야기는 카메라를 눌렀을 때 찰(....30초....)칵이란 뜻이다. 카메라 렌즈가 30초 동안 열려있으니 자전거 랜턴 불빛이 움직이는 것이 카메라에 그대로 기록된다.


밤새지 마란 말야!

언젠가 개그맨 김국진이 나오는 광고가 있었다. 무슨 광고인지 생각도 안 나는데, 마지막은 '밤새지 마란 말야!' 라고 외치면 '벌써 샜단 말야!"로 답하는 광고였다. 아무튼 뭔가가 진짜 재미있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밤이 벌써 샜다는 이야기. 내 모습이 그랬다. 촬영은 당연히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중간에 랜턴을 묶은 실의 길이를 늘렸다 줄였다를 반복하고, 불빛이 부족한가 싶어서 건전지를 바꾸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킨 실타래처럼 엉성하게나마 찍힌 불빛이 나를 계속 이끌었다. 십 여 회 시도 끝에 어쩌다가 한 장 그럴싸하게 찍히면 '아싸!'를 외쳤다가 '되잖아!"를 외쳤다가 하면서 마치 재미있는 놀잇감이라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다시, 다시를 외치면서 촬영을 이어갔다.


시간은 어느덧 12시. 아, 출근. 나이 생각도 못하고 12시를 넘기고 말았네. ㅜㅠ

엉망이었던 첫 사진(좌측)부터 뭔가 규칙성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성공 비스무리한 희망을 보여준 사진(우측)까지
어쩌다 이런 벌벌 떨리는 불빛이 찍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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