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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06. 2022

주의1_미술 교사들은 왜 '새로운' 수업을 갈망할까?

주목을 확장할수록 우리의 인식, 사고는 더욱 유연해지고 창조적으로 된다. 프레데릭슨은 가슴 뛰는 감정을 느끼면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세부적인 것이나 낯선 이방인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고 하였다. *1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미술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 다른 교과 교사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것 같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입시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과목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예술과 예술가가 자율성을 가지듯 예술 교과도 좀 더 자율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 교사들은 저마다의 관심 영역에 따라 다양한 주제의 수업을 구상하고 저마다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숫자만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이 다양한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미술 수업 방법 또한 미술 교사의 수만큼 다양하다. 서로 비슷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없지는 않지만 각각의 미술교사들의 일 년의 수업을 보면 다 다르다. 천 명의 미술 교사가 있다면 천 개의 미술 수업 방법론이 존재하는 셈이다.


교사가 되어 처음 수업을 하게 되는 미술 교사들은  미술 교과서나 대학교에서의 전공과 관련된 주제로 연간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 이내 시야를 넓혀 다양한 영역의 수업에 도전을 시작한다. 이는 비단 새내기 교사만 아니라 대부분 미술 교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동료 교사들에게 ‘요새 어떤 수업하고 있어요? 뭐, 재미있는 수업 없어요?’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은 미술 교사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이내 수업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모인다. ‘야, 그 수업 재미있겠다.’ 혹은 ‘그거 괜찮네.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으며 정보를 교환한다.


나는 늘 궁금했다.


미술 교사들은 왜 ‘새로운 수업’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누군가는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수업을 해야 아이들이 재미있어하지.’ 아마 그럴 것이다. 새로워야 아이들이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고, 새로워야 재미를 느껴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본다. 작년에 했던 수업을 올해 반복한다 한들 뭐가 문제인가. 학생들 입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수업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과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다른 교과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위주 교과에서 교과서라는 증명된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수업 주제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학년이 바뀌고 같은 학생을 연이어 만나게 되어 작년에 했던 소묘 수업을 올해도 한다 한들 또 어떤가. 연필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평생 동안 연필이란 한 가지 재료를 탐구하는데 학생들은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그릴 뿐이지 않는가. 아마도 미술 교과는 수업 주제를 해마다 바꾸는 거의 유일한 교과일 것이다. 심지어 교과서조차 미술 교사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미술교사들은 교과서를 절대 지존의 '교과서'로 여기지 않는다. 모든 미술교사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미술교사들에게 교과서란 일종의 참고서의 하나일 뿐이다. 도대체 미술교사들은 왜 새로운 수업을 탐구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어떤 물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새로워서 재미있고, 아이들이 신기해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 새로운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


나는 ‘새로운 수업’을 고민하며 정보를 찾아 헤매는 나의 모습을 ‘수업 쇼핑’이란 다소 냉소적인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해서 소비하는 것과 인터넷에서건 책에서건 수업을 검색하고 이를 교육과정에 나열하는 내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도대체 새로운 수업이 뭘까. 교사에게 새로운가, 학생에게 새로운가. 새로운 수업을 찾는 나는 미술 수업으로서의 가치와 미술과 교육과정을 고려하고 있는가? ‘새로운 수업’은 학생들의 정서나 미술에 관한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는가? 일으킨다면 그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왜 새로워야 하는가? 새롭지 않으면 그 수업은 가치가 없거나 낮은 가치의 수업인가?


내가 비록 냉소적으로 ‘수업 쇼핑’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할지라도 ‘새로운 수업’을 위한 나의, 우리의 탐색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내가 이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든지 간에 나를 비롯한 많은 교사가 ‘새로운 수업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면 그 안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교사란 학문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을 때조차도 무엇이 의미 있는 학습을 만드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아직 그 의미가 모호하기는 하나 ‘새로운 수업’에 호기심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새로운 수업’ 안에는 ‘새롭지 않은 수업’에는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교사의 수업과 학생의 학습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힐 수 있다면 우리는 미술 수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새로운 수업’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은 이와 관련한 교사들의 노고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암묵적으로 해왔던 교사들의 일상적 행동이 가진 교육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지난 3년동안 전국미술교과모임 선생님들과 미술교육, 철학,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술수업을 심리학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주의'는 서투르지만 그간 공부했던 것들의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바 없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해석 또한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공부하면서 계속 수정할 생각입니다. 제 글에 대한 의견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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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위니프레드 갤러거, 몰입, 생각의 재발견, 2010, 오늘의 책,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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