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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02. 2024

융합수업이 별거냐

나는 컨투어 드로잉 수업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완성할 때까지 하나의 선으로 그리는 컨투어 드로잉. 대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관찰력과 집중력을 기르기도 좋고 어울렁 더울렁 얽혀있는 선들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꽤 크다. 열심히 선을 쫓아 그리다 보면 못 그린 사람, 잘 그린 사람 구분 없이 그럴싸한 결과가 나오는 점도 매력적이다.


융합수업 이야기를 한다면서 뜬금없이 왠 컨투어 드로잉 이야기냐고? 일단 조금만 더 읽어주시라.


아이들은 집게 그리기로 시작해서 물감, 꽃, 손 그리기 등으로 난이도를 높이면서 그리게 된다.  하나를 그리는데 익숙해 질만 하면 새로운 물건을 들이민다. 물건이 바뀔 때마다 연필, 펜, 붓 등으로 도구도 바꿔보자. 이렇게 하면 노는 시간 없이 꽉 찬 두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지막은 검정 도화지에 흰 펜으로 손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샘들도 아시겠지만, 검정도화지에 흰 펜으로 그려 놓으면 완전 간지 난다.

두 번째 해에는 조금 심심한 것 같아서 채색을 더해봤다. 플러스펜과 파스텔의 조합은 부드러운 느낌이, 선이 굵은 붓 펜과 오일파스텔 조합은 강한 색채 대비가 좋았다.

삼 년 차인 올해에는 컨투어 드로잉을 와이어 드로잉으로 바꾼 후 입체로 세우는 활동을 더해봤다. (전국미술교과 밴드에 올라온 수업을 봤는데, 꼭 해보고 싶었다.)


2mm 두께의 철사는 워낙 탄성이 좋아서 생각처럼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펜 선 그대로 옮기지 않아도 되며, 전체 형태를 따라가되 불필요한 선을 생략하고 필요한 선을 새로 추가하기도 하면서 철사 고유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펜 드로잉은 평면에, 와이어 드로잉은 공간에  입체로 표현하기 때문에 철사를 구부리거나 당기면서 공간감을 표현할 수 있게 지도한다. 완성한 와이어 드로잉은 나무판에 타카로 고정시켜 세운다.

마지막 단계는 사진 촬영이다.


나는 수업에 빛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빛깔 있는 빛이 만드는 조화와 변화는 나를 황홀하게 한다.(빛이란 단어는 색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올해 컨투어 드로잉 수업 마무리가 빛의 혼합으로 빠진 이유는 따로 있다. 첫 수업에서 중학교 때 어떤 수업을 했는가 물어봤더니 코로나 때문이었는지 빛은 물론 물감조차도 섞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빛의 혼합 수업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따로 수업을 할 시간은 없어서 마무리에 짧게 넣기로 했다.


컨투어 드로잉도, 와이어 드로잉도 표현 요소는 선이다. 여기에 빛을 더하면 철사의 그림자, 즉 선의 그림자라는 요소 하나가 더 생겨난다. 이때 손전등의 위치, 방향, 개수, 색을 다르게 하면 그때마다 다른 색색의 선 그림자가 생겨난다. 와이어  드로잉이 빛깔 있는 선 그림자 드로잉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패들렛에 업로드한 사진을 보니 꽤 만족스럽다. 나는 팔짱을 끼고 오른쪽 다리를 살짝 흔들면서 생각한다.


'융합수업이 뭐 별거냐?'


사실, 요즘 나는 융합 수업이란 말을 들으면 이제 또 뭐를 더하라고  하나 싶어 좀 불편하다. 미술수업은 그 자체가 이미 융합수업이지 않는가? 심지어 수업 구상 과정부터가 이미 '융합스럽다.'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배워서 하고 있을 지라도 저마다 해석이 다르고 사소하지만 특별한 요소들을 하나쯤 더한다. 이를테면, 사소하게 손전등 하나만 더했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빛 그림자를 만날 수 있지 않는가?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미 이 부분을 이렇게 해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술 수업이 본질적으로 융합수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술에는 주제, 언어, 도구, 재료, 과학적 원리, 과정 등이 들어 있고, 이 모든 것을 융합하지 않으면 사실상 미술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뭔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비롯한 과학기술이나 문학 등등  시각적이지 않은 그 무언가가 더해지면 융합수업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좀 있는데, 과학 기술은 미술의 도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물감을 쓰듯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것이지. 현대미술 자체가 이미 경계나 한계가 사라진지 오래지 않은가. 빛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빛을 썼다고 해서 융합수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빛을 사용하는 미술은 차고도 넘친다. 게다가 미술에서 빛을 빼면 뭐가 남을까? 우리가 세상을 '보고' 색과 형을 지각하는 것 자체가 빛이 있어서 가능한 것인데.


수업에 자기만의 색깔을 덧칠하는 것은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교사가 수업 주제를 제시했을지라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생각과 상상을 더한다.


미술 수업에서 수업의 요소를 더하는 것은 늘 있어왔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면 그게 융합수업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그건 융합수업 같은 것이 아니라 미술수업은 본래 그런 거라고. 그래, 융합 수업이란 단어에 한숨 쉬지 말아야지. 우리 미술교사들은 매일매일 융합을 실천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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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컨투어드로잉에서 선그림자 수업까지 전제 수업과정을 요약한 짧은 동영상입니다.

https://youtu.be/_Mv-giN2nGw?si=Effi3cQu2BFTBZ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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