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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25. 2018

늙은 말의 노래

폴란드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판화 한 점

 폴란드 바르샤바의 벼룩시장 Bazar na kole에 간 것은 지난여름.  당시 나는 언니와 함께 체코와 폴란드를 여행 중이었다. 바르샤바는 그 여행 일정 중 마지막 일정이었다. 우리는 둘 다 공예를 좋아하고 시장 구경을 좋아해서 비교적 여행 취향이 비슷한 편이었다. 벼룩시장에 대한 설명을 들은 언니는 당연히 바르샤바 벼룩시장을 가보고 싶어 했고, 우리는 바르샤바 여행 사흘 중 하루를 벼룩시장 구경에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바르샤바 문화궁전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지나 도착한 벼룩시장.  요일마다 열리는 장이 다른데, 평소에는 야채를 판매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생활용품과 공예품 등을 판다. 도착해보니 전문 장사꾼과 일반인들이 가져온 오래된 물건과 새 물건들이 어지럽게 새 주인을 기다리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을때는 비어있던 시장이 우리가 한 바퀴 돌고 나오자 어느 사이 집에서 들고 온 물건을 펼쳐놓은 사람들로 도로까지 가득 차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 황학시장과 비슷했고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특이한 그릇이 있으면 하나 정도 살까 하면서 시장을 돌던 우리 자매의 눈에 뜨인 매장은 오만가지 잡화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주인은 인도 한쪽에 승합차를 세워놓고 서있었는데, 그 작은 차 어디에서 이 많은 물건을 쏟아냈는지 모를 만큼 다양하고 많은 양의 물건을 펼쳐놓고 있었다. 각종 도자기 그릇, 성당 천정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나무에 그려진 오래된 성화, 어디서 모아 왔는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싸구려 팔찌들이 뒤엉켜있는가 하면 매장 한쪽에는 가정집에서 쏟아져 나온 달력, 그림 따위가 쌓여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벼룩 백화점이라 할 정도의 종류와 양이었다.  


 언니는 그릇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나는 전공을 못 속이고 그림이 뒤엉켜있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액자에 들어 있는 달력 그림, 무명 화가의 유화, 액자에서 튀어나와 유리판과 나무판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그림들.... 적당한 그림을 들어 보이면 주인은 손가락, 혹은 영어로 가격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판화 한 점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액자는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유리판에 붙어 있는 판화 한 점. 그 그림이 바로 지금 안방 벽에 붙어있는 말과 소년이 그려진진 판화였다.

 세밀한 선으로 보아 드라이포인트인가 생각했는데, 좀 더 살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드라이포인트는 주로 동판과 같은 금속 판을 송곳 비슷한 철필로 긁어 가는 홈을 만들고, 그 홈에 잉크를 밀어 넣어 찍는 판화라 흰 면에 날카롭고 딱딱한 검정 선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이 판화는 검은색 면이 매끈하게 넓고, 그 위에 가늘고 부드러운 흰 선현되어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고무판화가 아닐까 다. 게다가 찍힌 종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동양의 한지, 종이 사이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A4 사이즈.  이건 틀림없이 학생들의 습작임에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만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것. 그림 아래에 작품 명과 작가의 서명이 연필로 적혀있었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 읽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폴란드어로 적혀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작게 써놓은 것인지.... 숫자 부분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먼저, 11/20의 의미는 이 판화를 총 20 찍었으며,이 그림은 그중 11번째로 찍힌 것이라는 뜻이다. 또, 오른쪽의 숫자는 찍은 해를 말하는데, 1984인지 1964인지 필체가 모호해서 읽기 힘들다. 1964로 짐작되지만 워낙 필체가 독특하니 자신할 수가 없었다. (글을 올린 후 제목을 구글링해보니 네덜란드어란다. eigen handdruk.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특별한 악수>정도가 되지 않을 까.)

작가의 서명 부분. 사진의 선명도를 조금 조정했으나 여전히 읽기 힘들다.  

 가게 주인은 액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림 가격을 매기는 것 같았다. 언니가 액자가 들어있는 그림을 들자 꽤 비싼 가격을 불렀는데, '우리는 액자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자 그림 가격이 확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참 합리적인(?) 가격 산정이 아닌가.


 언니는 친구가 부탁한 현지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나는 액자가 없는 판화 한 장과 성당이 그려진 석판화 원판 한 장을 샀다. 둘 다 액자가 없는지라 우리나라 돈으로 두 장에 오천 원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나는 그 그림의 주인이 되었다.


 한동안 그림을 잊고 있었다. 이사를 했고 개학과 함께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았다. 해를 넘겨 여유가 생겨 짐 정리를 하다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그림. 군데군데 빛바랜 한지 걱정에 배접이라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작가의 서명이 워낙 깨알 같아서 혹여라도 지워질세라 배접도 포기한 채 벽에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의 삼분의 이는 커다랗고 멍청한 눈의 말머리가 차지하고 있다.


 음.... 멍청해 보인다고 했지만, 실은 공허하고 슬픈 눈이라는 게 내 느낌이다. 아래쪽에는 긴 목의 소년이 아주 가는 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는 말을 올려다보고 있다. 제목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눈에는 늙은 말과 소년의 교감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림이다. 말의 눈에서? 소년의 얼굴에서? 모르겠다. 하지만, 멍청한 듯, 슬픈 듯, 커다란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학생일 수도, 전문 작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떠랴. 꼭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 이라야만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설혹 어린아이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를 준다면 나는 그것이 곧 명화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이 그림에 '늙은 말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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