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수업은 2014년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수업입니다. 올해로 만 사 년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특별한 수업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수업에서 교사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 아이들은 저의 교사로서의 상상을 뛰어넘는 활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빛을 체험한다는 것의 의미
미술책의 색의 혼합은 빛의 혼합과 물감의 혼합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물감의 혼합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이지만, 빛의 혼합은 대개의 경우 실제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이론 학습으로만 끝난다. 학교에서 빛의 혼합을 체험할 수 있는 관련 기자재가 많지 않고, 한 학급 학생 전체가 참여할 만큼의 기자재를 보유하는 학교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련 기자재 역시 과학과 기자재이지 미술과 기자재로 나온 것은 없다.
빛의 혼합과 관련된 수업 사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전시회에서 빛 체험 부스를 설치한 경우는 볼 수 있었지만 실제 학교에서 이루어진 수업 사례 찾기는 쉽지 않았다. 관련 수업 사례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는 아래 사지을 보면 알 수 있다. 색의 혼합을 학습한 결과물을 찍은 사진에서, 빛의 삼원색을 표현한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그 안에 물감을 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수업은 물감의 혼합 수업이지 빛의 혼합이라고 할 수 없다. 빛의 혼합 수업이라면 실제로 빛을 혼합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과학과에서의 빛의 혼합 단원이 빛을 물리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술과에서의 단원 성격은 과학과의 그것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과에서는 빛을 물리적 시각 현상의 하나로 다룬다. 그래서 빛 단원에서 다루는 내용은 물체를 보는 원리, 빛의 혼합, 빛의 반사와 굴절을 다룬다. 과학과에서의 빛의 합성은 빛과 관련된 여러 단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미술과에서의 빛은 색을 존재하게 하는 원리이다. 빛은 색을 만들고, 색은 인간의 다양한 심리에 영향을 준다. 또, 현대미술에서 빛은 물감과 같은 표현 재료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 미술교과에서의 <빛의 혼합> 단원은 바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과학의 원리와 예술적 활동이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수업 구상 과정
2014년, 일 년 수업 계획을 세울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로 돌아가 보겠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대도시 중학교였고, 일 학년 교육과정에 미술이 없었다. 집중 이수제 때문이다. 대신 이 학년은 미술을 두 시간 배운다.
이학년 수업을 맡게 되면서 일 학기 수업은 형, 색을 익히는 기초 수업을 중심으로, 이 학기는 1학기 학습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매체 중심으로 구성했다.
수업을 구상하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한 학기 한 번 정도는 강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시각적 경험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익히 알고 있던 고전적인 개념의 미술이 아닌 다른 것, 혹은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것을 체험하게 하여 생각의 틀을 깨는 정도로 설정했다. 그리고, 일 학기의 시각 경험으로 배치한 수업이 바로 빛의 혼합 수업이었다.
빛의 혼합 수업을 늘 하고 싶었으면서도 실천을 못했는데, 그 이유는 예산 때문이었다. 빛의 혼합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드웨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에 연연하다가 수업을 영원히 못할 것 같아서 랜턴을 제일 먼저 주문했다.
주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40개를 주문했다가 원하는 효과가 안 나오면 반품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개인 비용으로 몇 개의 모델을 주문해서 실험해보기로 했다. 선택 조건은 랜턴을 셀로판지로 가렸을 때 색광이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빛이 가능할 것. 거기에 저렴하면 금상첨화겠다.(아직도 집에는 당시 구입한 랜턴이 포장만 뜯은 채 굴러다닌다.)
몇 번의 구입과 반품 끝에 최종 낙점된 것은 한 업체의 자전거용 랜턴이었는데, 줌인 아웃도 되는 모델이라 빛의 크기와 광량이 조절되는, 결과적으로 보면 수업을 위한 랜턴으로는 아주 최상의 모델이었다. 여기에 추가 보충용 건전지와 셀로판지를 10세트 따로 구입했다. 셀로판지는 빛의 삼원색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셀로판지를 네 겹으로 겹쳐 고무줄로 고정했다.
흰 종이 위에 실험을 해본 결과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세 가지 색의 빛을 섞으니 흰색이 나온다!!! 우와, 진짜 된다!!!!
수업 준비, 암실
수업은 두 시간 연강으로 계획했다. 첫 번째 시간은 빛의 혼합을 이해하고 직접 빛을 섞어보는 체험, 두 번째 시간은 빛의 혼합을 활용해서 모둠끼리 라이트아트 공연하기.
자리는 네 명 한 모둠으로 배치하고, 라이트아트를 체험할 때는 두 개의 모둠을 각각 합해 여덟 명으로 조정했다.
수업 시작 일주일 전.
미술실 창문을 어두운 색의 두꺼운 켄트지로 가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 목표는 미술실을 완벽한 어둠 속에 잠기게 하는 것이었다. 미술실에 암막이 없기도 했지만, 빛의 아름다움을 강하게 느끼려면 먼저 완벽한 어둠을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언제 완벽한 어두움을 체험해본 적이 있는가? 밤이 된다 한들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고, 혹은 시골에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늘 빛 속에서 살고 있다. 완벽한 어둠을 간혹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잠든 후일 것이다. 나는 빛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둠을 먼저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술실은 실낱 같은 빛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암실이 되었다.
도입, 어둠의 체험
처음 시도하는 수업이 주는 긴장감에 싸여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
어느 시점에서 불을 끄고 켤 것인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계산해 본다.
왁자한 수다와 함께 아이들이 미술실로 들어온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바로 미술실의 불을 껐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른다. 갑작스레 밀려온 어둠에 당황하면서도 신났다.
"어, 이거 뭐야?"
"선생님, 왜 이래요? 너무 깜깜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싸~ 신난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빛이 아니라 어둠을 체험하고 있는 아이들은 어둠의 깊이를 즐기는 것 같다. 간신히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인사를 나눈다.
"어두운 미술실에서 뭐가 보이나요? 아무것도 안보이죠? 왜 안보일까요?"
"빛이 없어서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둠을 경험하기란 참 힘들죠. 빛이 없으면 우리는 사물의 형태조차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빛과 색에 대한 이론을 과학시간에 이미 배웠다.
그래서 빛의 삼원색이 빨강, 파랑, 녹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세 가지 색을 섞으면 흰색이 된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나는 준비한 촛대에 불을 붙인다.
"자, 이제 회전 촛대에 불을 붙이겠습니다."
희미한 불빛이 교실의 어둠을 밀어낸다.
"자 이제 미술실에 아주 희미한 빛이 생겼죠? 이제 짝꿍 얼굴을 봅시다. 얼굴이 보이나요?"
"네."
"우리 눈은 아주 작은 양의 빛만 있으면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자, 그런데 짝꿍 얼굴색이 어떻게 보여요? 밝은 햇빛 속에서 볼 때와 같은 색인가요?"
"아니요."
"촛불을 켜니까 주변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형태만 구분할 뿐, 색채를 알아볼 수 없네요. 그러면 색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빛이 충분하게 많아져야 하겠지요? 촛불이 점점 밝아지니까 이제 색채도 조금씩 구분할 수 있겠지요?
형태와 색채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빛이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중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주는 빛의 혼합을 공부할 거예요."
나는 파워포인트의 첫 화면을 검은색으로 만들어 미리 띄워 놓고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수업 주제가 화면에 나타나게 했다. 아이들은 이때 처음으로 수업 주제가 빛과 색임을 알게 된다.
전체 수업에서 보자면 여기까지가 동기 유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수업에서 동기유발은 학습 주제를 제시한 후 진행된다. 그러나 이 수업에서의 동기 유발은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즉, 단원명이나 학습 목표를 제시하기 전에 던져진다. 이 과정은 빛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아이들이 수업 주제에 대해 수업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빛의 두 가지 기능, 즉 형태를 인식하게 하는 것, 색채를 인식하게 하는 것 두 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빛의 혼합 실험
수업 주제를 제시한 후 미술실의 불을 켠다. 아이들은 미술실의 밝은 빛 속에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이때 아이들이 불을 다시 꺼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이들은 어둠 속이 편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빛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교실의 불을 켠 이후 오 분은 동기 유발 과정에서 알게 된 것에 과학이론을 더하여 정리하고 활동 과제를 제시하는 시간이다. 수업을 종료한 후 스스로 수업을 평가한 결과 빛의 인식 과정과 관련된 학습은 굳이 이 수업에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도입부가 너무 강렬하여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시키기도 어려울뿐더러 수업의 본래 목적인 체험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수업이 다 끝난 후 다음 차시 수업에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
교사로서 부끄럽게도 내 눈으로 직접 빛의 혼합을 확인한 것은 고작 몇 해 전이다. 아이들도 나도 글로만 빛의 혼합을 배운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술 수업 시간의 빛의 혼합 단원은 과학과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빛의 혼합은 설명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냥 해보고 몸으로 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이게 뭔지 다들 알고 있죠? 과학시간에 이미 빛의 혼합에 대해 배워서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빛을 섞었을 때 진짜 이렇게 색이 나올까요? 아니, 빨강, 녹색, 파랑을 섞는데 어떻게 흰색이 나와? 말이 되나요? 그러면 진짜 그렇게 되는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봅시다. "
각 조별로 미리 준비해둔 빨강, 파랑, 녹색 세 가지 셀로판지를 붙여놓은 랜턴과 하드보드지를 나눠주고 랜턴을 사용하는 방법과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내가 구입한 랜턴은 작은 LED 전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LED의 푸른빛이 시신경을 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직접 눈에 비치는 등의 장난을 하면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은 분단별로 빛을 직접 섞어보기 시작한다.
"우와, 진짜 된다. 흰색이 나와. 진짜 이쁘다."
"빛의 삼원색을 섞으니까 진짜 흰색이 나왔나요?"
"네, 신기해요. 진짜 나와요."
한참 실험에 빠져 신기해할 때 미술실의 불을 다시 끈다. 어두워지면 혼합 결과를 더 잘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놀잇감을 주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간다. 나의 경우, 아이들의 놀이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운 것을 토대로 다음 학급에서 수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빛의 색에 따라 변하는 색에 대해서도 이때 설명을 하면 쉽게 이해한다. 가지고 있는 손전등 중 빨강 빛 손전등 만을 켜놓고 나머지를 모두 끄면 미술실 안은 붉은빛으로 가득 찬다. 이때, 서로의 옷 색깔이나 얼굴 색깔 변화를 통해 빛이 어떻게 사물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파랑 빛 손전등만을 남기면 미술실 안의 모든 것이 새벽의 빛으로 변하고, 서로의 얼굴이 매우 창백한 색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이 수업을 만들기 시작함
미술실의 불을 끄고 빛의 삼원색이 잘 만들어지는지 열중하던 아이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랜턴을 천정에 비추고 장난을 시작했다. 한 아이가 시작하자 옆에 있던 아이가 자신의 랜턴을 함께 천정에 비추고 흔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난에 뭔가 번개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정으로 랜턴 올린 사람 누구니?"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랜턴이 사라진다. 혼날 줄 알았던 거다.
"아니, 끄라는 이야기 아니고, 우리도 다 같이 랜턴을 위로 비춰보자."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이 우리 학교 미술실 천정도 석고보드로 되어있어 흰색이다. 40명의 아이들이 흰 석고보드에 랜턴을 일제히 비추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벌어졌다.
우와~~~ 아이들도 나도 엄청난 빛의 향연에 그저 놀랄 뿐.
"여러 가지 색이 나오게 랜턴을 겹쳐보자."
파랑, 빨강, 녹색 빛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천상의 것인 양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연출한다.
그때, 어디선가 네모난 빛이 나타났다.
"어, 그건 뭐니? 어떻게 한 거야?"
"렌즈를 돌리면 빛의 크기가 달라져요."
렌즈를 구입한 나는 정작 몰랐던 기능, 바로 줌 기능이었다. 랜턴의 렌즈를 돌리면 원의 크기가 작아지고 마지막에는 작은 네모가 남게 되는데 아이들이 발견해준 것이다. 이 기능은 2차시 수업의 라이트아트 공연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천정에 빛을 섞어보는 시간은 아이들과 나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각 반의 개성에 따라서 이 시간은 매우 특색 있게 진행되었는데, 한 학급에서는 랜턴에 자신이 가진 물건들의 그림자를 비춰보는 아이가 있어서 때 아닌 그림자놀이를 했다. 또, 어떤 학급에서는 랜턴을 담은 바구니의 구멍에 세 가지 빛을 비춰 세 가지 빛의 그림자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학급에서는 천정에 빛을 비춘 상태에서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모든 랜턴을 동시에 꺼서 완벽한 어둠을 만드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한 학급 한 학급, 어느 학급도 빼놓을 수 없이 나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빛의 혼합이 주는 감동도 컸지만 각 반마다 빛의 혼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해서 노는 방법이 다 달랐다. 아이들의 활동은 수업을 기획한 교사의 상상을 넘어선 것이다. 내가 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수업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업은, 어떤 의미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출제하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수수께끼에 열중할 수 있는 주제와 방법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그 과정을 통해 정답(설사, 열려있는 경우라 할 지라도)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수수께끼를 제출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사인 나는 랜턴으로 빛을 섞는 초라한 수수께끼를 출제했지만, 학생들은 이 수수께끼를 넘어 예술로 가는 문을 열었던 것이라고 나는 이 수업을 해석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의 활동으로부터 배워 더 나은 수업을 상상하고 기획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어찌 오래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