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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pr 20. 2018

제주 4.3, 기억이 만드는 풍경

4월 13-16일, 전교조 인천지부가 주최하고 제주 다크투어리즘이 안내한 4.3 유적지 답사여행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글은 답사 일정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장소에 대한 글입니다.


장소의 기억

장소에는 저마다의 기억이 있다. 역사사건의 현장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경험의 장소일 수도 있다. 장소에 대한 기억은  따뜻한 미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제주도는 이국적인 풍경과 자연환경 덕분에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4.3의 아픈 기억을 가진 이에게 기억은 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가슴 아픈 장소로 되돌리기도 한다. 2018년 오늘, 제주는 섬 곳곳에 아픈 역사를 새롭게 새기고 있었고, 이 같은 기억의 방식은 제주가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풍경

답사 둘째 날 오후, 버스가 알뜨르 비행장 가까이 다가서자 멀리서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드넓은 알뜨르 비행장을 지키기라도 하듯 서 있는 대나무 사람은 둥글게 어깨를 숙이고 손에 쥔 파랑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최평곤 작가의 <파랑새>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 노란색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김해곤 작가의 <한 알>이다. 그 사이로 삼방산이 지평선 위로 우뚝 솟아있었다. 알뜨르 비행장, 학살의 현장이었던 섯알오름을 넘어 삼방산까지, 2018년 4월 오늘, 답사객의 눈에 비친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이곳은 제주 4.3 사건이 진정될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에서는 1945년 미군정에 의해 폐지된 예비검속법을 악용하여 각 경찰국에 불순분자 등을 구속하고 처리하도록 지시하였고,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서는 344명을 예비검속하고 그중 252명이 당시 계엄군에 의하여 집단 학살되고 암매장되어 211위는 유가족이 수습하였고, 41위는 행방불명된 비극의 현장이다.(알뜨르비행장에 대한 설명글 중에서)

알뜨르비행장은 현재 비행장이 아니나 일제가 만든 또다른 비행장 정뜨르는 현제 제주 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뜨르에서도 대규모 학살의 흔적인 유해가 발굴되었으나 예산 관계로 진상규명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알뜨르 비행장에 대한 설명 글을 읽으면서 산 쪽으로 난 길을 오 분여를 걸어가면 섯알 오름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검은 대리석의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와 불법 주륙기라고 쓰여있는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분들은 검경을 따라갈때 이미 죽음을 예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신발을 하나씩 벗어서 길 옆에 흘렸는데, 희생자 추모비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네 켤레의 고무신이 그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신발 안에는 어느 님이 담아 놓은 노자돈일까, 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간밤 내린 비에 잠겨있었다.  

희생자들이 벗어놓은 신발을 상징하는 검정고무신. 신발코에 애기동백꽃이 그려져있다.

당시 희생된 분들의 유해는 유가족들의 끈질긴 수색으로 일부 수습할 수 있었으나 일부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군경은 학살의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이 곳을 출입통제구역으로 정하여 유가족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유족들이 유해를 발굴했을 때 132위는 시신을 구분하기가 힘들어 신체 부위별로 대충 수습하여 대정읍 상모리 지경 백조일손 묘역에 함께 안장하였다고 한다. 당시 검경은 학살의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고인들이 남긴 신발 등 유류품마저 소각하였다고 하니,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이르는지 한숨이 나올 뿐이다. 불법 주륙기에 새겨진 유족 이상순 씨의 한탄했다는 "왜 유품마저 불태웠는지...."라는 문구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불법 주륙기 안내판 아래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유품을 상징하는 조형물 하나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신발, 밥그릇, 허리띠, 옷 등 유품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아마도 탁주를 담았음이 분명했을 주전자 하나가 따로 뒹굴고 있는 조형물이었다.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나 당시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가슴 아픈 조형물이 아닐 수 없다.


노래

답사를 안내한 제주 다크투어리즘은 4.3 역사의 현장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우리를 안내해주신 최상돈 님은 제주 4.3을 노래한 '애기동백꽃의 노래' 가수이다. 첫날 아침에는 수줍게 안내를 시작하시면서 꼭 필요한 말씀만 하시더니, 답사가 진행되면서 본인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 답사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도 함께 이야기해주셨다. 이곳 섯알오름에서 최상돈 님이 노래를 불러주셨으나 동영상 촬영을 하지 않은 관계로 '애기동백의 노래' 링크를 대신 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ci8-MFGyfMY


 최상돈 님의 노래는 섯알오름의 아픈 기억을 따뜻하게 감싸며 울려 퍼졌다.

최상돈 님의 노래는 오후에 방문한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에서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소감을 이야기할 때 최상돈 님은 여러분들이 찍은 동영상, 유튜브의 동영상이 자신의 앨범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야기의 진정성이 깊이 와 닿았다. 들풀처럼 바람처럼 우리 삶 어딘가에서 나부끼는 것이 진정한 민중가요 아닐는지.


다시, 인천

올해로 70년이 되었다고 한다. 9살 어린 나이에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소녀는 80의 할머니가 되었다. 소녀는 외삼촌과 이모를 잃고 연좌제의 늪에서 꿈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을 추념하여 '아이고' 곡 소리 한번 마음껏 해보지 못한 70년 세월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아픔을 아프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기쁘시다고도 했다. 제주도 4.3항쟁의 살아있는 증인 고완순 할머니의 이야기다.


길을 지나다 군경의 총알에 얼굴 한 부분을 잃어버린 젊은 여인도 있었다. 평생을 턱이 없어서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살았던,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그분의 작은 집에는 소박한 꽃으로 장식된 노래비가 그분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은 다시 그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답사에서 본 제주는 70년간 억눌렸던 슬픔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제주 곳곳에 위령비, 제단이 세워지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아픈 기억을 위령비와 제단 조성을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구조물들은 공간과 그곳의 풍경을 바꾸고, 바뀌어진 풍경은 다시 그 공간을 찾은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게 될 것이다. 지금 치유를 위한 공간들이 앞으로 제주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

지금은 2018년, 앞으로 70년이 다시 흐른 후 제주의 4.3은 어떤 모습으로 기념되고 있을까.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제주의 풍경을 미래의 우리는 또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까. 


답사를 떠났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답사를 끝내고 난 지금 마음은 '다녀와서 참 잘했다'이다. 아픈 과거지만 직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것. 어쩌면 4.3의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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