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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pr 25. 2018

1-6 융합수업에 대한  짧은 생각

융합수업에 대한 짧은 생각

빛의 혼합 수업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업이 수업 속에서 변화할 수 있는 유기체일 수 있다는 것, 수업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 교사가 꼭 많은 것을 알고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수업 속 비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것 이외에 융합수업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이 수업을 구상하고 있던 시점에 나도 융합수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갈증을 풀기 위해 융합수업에 대한 연수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융합수업이 무언가 알기보다는 미술을 다른 교과수업 한 모서리에 구겨 넣고 마치 양념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노한 씁쓸한 기억만 남았었다.


 융합수업에 끼어있는 미술-포스터, 캐릭터, 만화, 광고 그리기를 비롯한 각종 만들기. 그리기만 하면 미술인가? 만들기만 하면 미술인가? 그런 거야?


물론 미술시간에 융합의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다른 교과에 대한 잘못된 사례 역시 있을 터.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미술적인 행위를 한다고 해서 미술이 아니듯, 미술시간에 다른 교과의 내용을 끌어다 쓴다고 해서 융합수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분별하게 미술교과에 들어와 있는 과학, 수학, 인성 수업에 대해서도 나는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자동차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과학을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과학의 가치와 미술의 가치가 어떻게 만날 것인지, 과학적 사고를 빌려와야 하는 미술 수업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미술시간에 왜 수학 수업을 하는 것인지, 또는 인성 프로그램을 끌어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인 것이다. 과학을 집어넣었으니까, 수학 수업을 했으니까, 인성 프로그램을 넣었으니까 융합수업은 아니다. 융합수업의 미명 하에 한 교과가 다른 교과를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체험 자체는 미술교과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체험이 미술교과의 영역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체험으로 인해 사고와 감성이 풍부해지고, 결과적으로 미술적 사고와 행위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체험이 미술교과 안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과 간 융합 역시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융합수업은 서로 다른 교과의 단원을 융합하여 학생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새로운 사고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한 가지 학문만 했을 경우 생기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한계를 서로 다른 교과 간 융합을 통해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혼합 자체는 미술수업이 아니다. 미술이 아님에도 그것이 미술책에 나오는 이유는 시각 현상을 설명하는데 대단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미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형태와 색채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무엇이며, 그것들은 왜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신화적이거나 과학적이거나.


과학 이론을 앎으로써 미술 현상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맞지만, 이론을 안다는 것이 곧 미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원리를 앎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 하나를 더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 눈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꿈꿔볼 수 있다. 실례로 프리즘을 통과시킨 빛이 일곱 가지 색광으로 나뉜다는 과학의 성과가 인상파라는 회화 양식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하지만, 화가들이 과학의 원리를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예술관을 변화시키지 않았거나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인상파 회화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측 모네<해돋이> , 우측 쇠라 <그랑자뜨섬의 일요일 오후>

또 하나의 예로, 우리 학교 과학 선생님과의 대화를 소개하고 싶다.

 일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손수건에 쪽, 락, 치자 등으로 홀치기 염 수업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하지 못한 반이 두 반 정도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 학기 과학시간에 염색의 원리 수업이 있었나 보다. 하루는 과학 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융합수업 정말 좋네요.’하시는 것이다. (그 전에도 융합수업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눈 적이 있었다.) ‘왜요?’ 하고 물었더니, 미술시간에 염색 수업을 한 반과 안 한 반 사이에 염색 원리를 이해하는 정도에 많은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다. 염색을 체험한 반은 쉽게 이해를 하는데 안 한 반은 잘 이해를 하지 못해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과학 수업을 생각하면서 미술 수업을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 학년 과학 교육과정에 염색이 들어있었던 것도 몰랐다. 정말 우연히 겹쳤을 뿐이었다. 미술수업에서의 체험이 과학적 상상력의 폭을 넓혀준 것일 뿐, 그렇다고 해서 두 과목의 가치가 다른 하나를 위해 ‘사용가치’로 전락되는 것도 아니었다. 각각 다른 두 과목의 가치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을 뿐이다. 융합이라는 것은 교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렇게도 일어난다.

홀치기염 수업을 마치고, 기념촬영

빛의 혼합 체험은 아이들에게 강한 시각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빛을 섞기만 하고 끝났다면 그것은 과학수업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빛을 천정에 던져 섞어봄으로써 색광이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체험했다. 또 음악과 빛의 조화를 통해 빛이 예술의 한 도구가 될 수 있음도 체험했다. 물론 빛의 혼합을 몰라도 우연히 빛을 섞어서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다면 예술에 있어서 하나의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치 물감의 사용방법을 잘 알고 있는 화가처럼.


정리하자면, 특정 학문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를 통해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만나는 수업, 나는 미술 수업에서의 융합 수업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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