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업 구상 과정
공간 체험 수업이야 미술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수업일 것이다. 하지만, 주당 1-2시간 수업에 협소한 미술실, 학교라는 보수적인 공간...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수업이기도 하다.
공간 체험 수업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주관 <참교육 실천대회>에서 서울 J선생님 수업 사례발표를 들으면서였다. 그 수업은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아이들은 박스를 한 두 장씩 가지고 학교에 온다. 그리고, 가져온 박스를 활용해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큼의 집을 짓는다. 그런데, 그 수업은 한 시간이라는 수업 안에서 완성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고, 미술수업에서 공간(건축)을 경험하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겼다고 하였다.
멍 때리면서 발표를 듣던 내 머릿속에서 엉뚱한 상상 하나가 갑자기 떠올랐다. 수업 시간이 부족해? 그러면 여러 반을 이어서 수업하면 되지 않나? 1반 수업하고, 이어서 2반 수업하고.... 한 학년이 차례대로 수업을 하면 두 시간 × 학급 수니까 부족한 수업 시간을 보충하고도 남지 않을까?
내 머릿속은 수업에 대한 상상으로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래, 처음 수업을 시작한 반은 건축의 콘셉트를 잡는 거야. 다음 반은 그 콘셉트에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이는 거야. 먼저 수업한 반이 만든 것에 붙여서 다른 공간을 만들고... 그러다 보면 미술실이 작은 도시가 되겠네. 그러려면 행사가 없는 주에 수업을 해야겠네. 반별로 이어서 수업을 하니까 이건 릴레이 수업이네. 푸하하. 그럼 내가 전국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릴레이 수업을 하는 거네?’
이때까지만 해도 공간 만들기 수업에 대한 상은 막연한 것이었다. 다만, J선생님 수업에서처럼 박스를 사용한다는 것. 한 학년 전체, 전 반이 이어서 수업을 한다는 것 두 가지만 머릿속에 있었다.
이월, 신학기 수업 계획을 세우면서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처음 수업을 하는 학급에게는 몇 가지 권한이 주어진다. 첫째, 미술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공간은 땅이라는 물질 조건에 구애를 받는다. 따라서 이 학급이 정한 땅의 모양은 이후 학급의 활동의 토대가 될 터. 이는 변할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간을 구획하고 남는 시간 동안 공간의 콘셉트를 정하고 기초공사를 한다. 재료는 철저하게 박스 상자로 한정하고, 박스를 잇는 것은 나사못과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종이박스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미리 가져오라고 하고, 나사못과 드라이버는 다양한 사이즈로 미리 준비해놓는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분해해서 재활용하게 해야지. 박스가 부족할 것을 대비해서 학교 식당 박스도 모으고 나도 마트 장 보러 갈 때면 큰 박스 몇 개 더 들고 오고.....(실제 수업에서는 나사못과 드라이버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사 조이고 분해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박스도 생각보다 단단했기 때문에 글루건을 사용했다.)
두 번째 권한은 공간에 이름을 붙일 권한이다. 이들은 공간의 이름을 정하고 이름표(문패)를 붙이며, 이 이름표는 열 개 학급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 두 번째 수업을 하는 학급은 첫 학급의 공간을 보고, 그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다 보면 첫 학급의 구상은 마지막 학급에 가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성이 될 수도 있겠다.
각 학급은 자신들의 구상을 간단한 메모로 다음 학급에 전달할 수 있다. 이 메모는 다음 학급에게 무시될 수도 있으며 존중될 수도 있다. 각 학급은 그 학급만의 독자성을 가질 수 있으나 먼저 수업한 반이 만든 공간에서 다른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수업을 마친 학급은 자신들이 한 작업에 대해 사진 기록과 보고서를 남겨 인터넷에 올려 공유해야 한다. 각 모둠은 한 명의 기록자를 정해야 하고 수업 끝나기 20분 전에 모둠 이름표로 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단 일주일만 진행한다. 2주 차, 각 학급은 두 번째 시간에 완성된 공간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수업은 완성된 공간과 각 반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자신들의 구상과 다른 학급의 구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볼 수 있고, 여기에 대한 감상문을 적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까지 공간 만들기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다.
여기까지가 처음 내가 구상했던 수업 흐름이었다.
2. 비밀기지 만들기
대강의 수업 흐름을 정한 나는 건축 수업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 위해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이것저것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책 한 권. 바로 <비밀기지 만들기>란 책이다. 오가타 다카히로라는 일본 사람의 책인데, 일본 기지 학회 소속이라고 한다.(그런데, 회원은 한 사람뿐이라고) 일본에도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는 비주류 문화 전사들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비밀기지에 대한 추억은 나에게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 살았던 나는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무릎은 진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달려 다니다 나무에 긁히고 넘어져 상처가 나면 그 상처가 마르기도 전에 새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뒷산은 우리 아지트였다. 우리는 키 낮은 아카시아 나무로 집을 짓고 그 안에 숨어서 놀았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나무집은, 저자의 말로는 비밀기지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비밀기지는 어린 시절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공간에 대한 추억인 동시에 공간과 집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책의 뒷부분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비밀기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들을 소개하고 있다.(이 부분이 매우 흥미롭다. 아주 작은 책자라 다 읽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시길.)
수업의 제목은 <비밀기지 만들기>를 빌려오기로 했다. 수업을 끝내고 나면 한 주 정도는 미술실 수업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와서 놀 수 있도록 개방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거기서 무엇을 하고 놀까?
3. 수업 일기
"지난주에 오늘부터 공간 만들기 수업을 하기 위해 모둠을 짰지요? 오늘부터 만들기 시작할 건데, 지난주에 만들었던 모둠은 지금부터는 조직이라고 부를 거예요. 모둠의 장은 보스, 여러분은 비밀조직의 조직원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각 조직의 비밀 기지를 만들 거예요."
아이들은 강한 흥미를 보인다. 특히 조직이라는 말이 주는 비밀스러움, 비밀 기지라는 말이 주는 상상력이 아이들을 흥분시키나 보다.
“그런데, 이 수업은 릴레이 수업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릴레이 수업이란 마치 체육대회 때 릴레이 경기를 하듯 뒷 반은 앞 반이 했던 수업을 이어받아하는 수업이에요.”
“선생님, 그럼 우리 반이 완성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렇지. 우리가 하려고 하는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은 두 시간 안에 완성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릴레이로 진행하는 거고. 대신, 여러분 반은 가장 먼저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많이 만들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미술실에 공간을 만들 땅을 정하고 공간의 이름을 정할 권한을 줄 거예요. 여러분이 만드는 이름은 마지막 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사용할 거예요. 마지막 반 수업이 끝나면 그대로 완성하는 거고요.”
사실 이런 수업 형태는 하나의 모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개의 미술 수업이란 것은 자신의 결과지를 받아 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반에서 한 것을 받아서 해야 하고, 내가 한 작업이 미완성이라 그 결과를 볼 수 없다. 학년 전체의 수업이 다 끝나기 전에는.... 과연 아이들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이들은 의외로 수업에 집중하고 즐거워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하고 있다.
다만 걱정인 것은 열 개 반이 수업을 하는데 열 번째 반이 표현할 것이 남아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과 박스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수업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 여덟 개 학급이 박스를 가져왔고 그 박스로 준비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첫 번째 수업한 반에서 박스가 2/3가 사라지고, 두 번째 수업한 반에서 거의 모든 박스가 사라졌다. 과연 열 개 반 수업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혹시 모를 박스 부족 사태를 대비하여 박스종이를 구입해서 준비실에 넣어 두었다.
공간 구획을 시작했다. 교실에 테이프로 구획을 정하는데 서로 넓은 땅을 갖겠다고 난리가 났다. 심지어 복도로 나가서 만들면 안 되느냐고 호소하는 조직도 있다.
아이들의 발랄한 작명이 이루어졌고, 대문에 명패를 만들어 붙이라고 하였다. 일부 조직에서 이의신청이 들어왔다. 비밀기지인데 이름표를 붙이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조직마다 나름의 콘셉트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으나 자신들의 콘셉트를 드러낸 조직은 겨우 두 개 조직. 하나는 나사란 이름의 조직으로 로켓모양을 만들고 있고 다른 하나는 열차라고 한다. 이 모둠은 지나치게 완결적이라 다음 학급에서 어떻게 덧붙여나갈지 궁금했다.
미술실 문은 잠겨있다. 두 번째로 수업하게 될 학급의 아이들은 미리 정해놓은 모둠끼리 줄 맞춰 미술실 앞에 앉아있다. 수업은 미술실 앞 복도에서 시작한다. 릴레이 수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조직의 이름이 들어있는 통을 내밀며 조직의 보스에게 뽑으라고 한다. 아이들의 흥분과 탄식, 한숨 소리.
만들기 전, 아이들에게 오늘 뭐할지 정하는 회의를 간단히 시킨다. 먼저 수업한 반에서 남긴 메모를 존중할 수도, 씹을 수도(?) 있다는 말에 무척 즐거워하는 아이들. 하지만 다들 착해서 가능하면 살리려고 노력한다는...
먼저 수업한 학급이 다 만들고 난 후 마지막 수업하는 학급은 무슨 활동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이는 우려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멍석만 깔아주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찾아낸다.
기지들 간 비밀 통로는 벽을 마주하고 있는 조직끼리 창을 만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지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조직은 그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발장, 책상 등의 가구나 자신들이 평소 갖고 싶었던 것, 예를 들면 사진기 등을 만들었다. 심지어 애완동물도 만들었다. 결국, 어른들의 틀에 박힌 사고, 뭔가를 완성하고 나면 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아이들은 수업 속에서 놀이를 찾아내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확장된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었다고 봐야겠지. 어쩌면 유아기 때 해야 했던 놀이를 중학교 삼 학년이 된 오늘에서야 다시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먼지 때문에 미술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수학 교과교실에 수업하러 온 아이들이 창문으로 들여다본다. 원래 다른 반 수업할 때는 공개하지 않고 두 번째 주에 짠하고 공개하려고 했는데 먼지 때문에 창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보지 마! 하며 창을 닫았는데, 나중에는 열어놓고 편하게 들여다보도록 했다.
노~올~자!
아이들은 왜 비밀기지를 만들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놀기 위해 비밀기지를 만드는 거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비밀기지란 공간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2주 차 수업은 과자파티로 정했다.
처음에는 각 기지별로 놀게 했다. 자유롭게 다니게 하면 친한 아이들끼리가 되기 때문이다. 기지 속에서 속닥속닥 이야기 소리, 바삭바삭 과자를 먹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그러다 떠들썩 웃음소리가 터지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나와서 서로 다른 기지를 들여다보거나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티는 딱 한 시간만 한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는 법. 아쉬움을 남기고 교실로 향한다. 교실에서의 한 시간은 정리 학습지를 하는 시간이다. 이 학습지를 통해 수업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학습지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더 이 수업을 하자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업과정에서 교사인 내가 한 일은 아이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부족한 물품을 보충해주는 일이 전부였다. 나는 아이들의 참여를 격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스로 의논하고 할 일을 찾아갔으며, 서로 할 일을 지정해주었고 참여하고 싶어 했다. 왜 그랬을까?
먼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이 수업의 제목이 <비밀기지> 임을 알게 된다. 제목이 주는 은밀함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상상을 시작한다. 즉, 수업 그 자체를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수업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체험을 체험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구상하고 구상한 것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래서 아이들의 소감문 한쪽에서 쓴 것처럼 ‘선생님이 정해준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표로 나아갔기 때문에 즐겁게 참여한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작성하는 학습지는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확인함으로써 교사로서 내 수업을 반성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경우 아이들은 수업과정에서 교사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해서 적는다. 좋은 평가를 위해 선택하는 일종의 전략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 교사들이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 글 중에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이런 부분이야말로 학생들이 수업에서 스스로 얻어낸 진짜 성과이며, 수업에 숨겨진 진짜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수업을 구상하면서 학습 목표로 삼았던 것은 공간을 체험하기, 모둠활동을 통한 공동체 의식 기르기, 자원 재활용, 평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의 네 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수업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공간에 대해 느끼기를, 수업 과정에서 공간을 ‘함께’ 체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교사의 말이 없었어도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공간과 건축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릴레이 수업이란 방식을 통해 3학년 전체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공동체 의식 기르기란 모둠 구성원들 간의 협동을 통한 공동체 의식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매 수업이 끝날 때 메모로 다음 학급에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메모로 전하고, 다른 학급의 공간을 이어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지나가면서 미술실을 들여다봤고, 다른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기지를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도 몇몇 후기에서 확인하였다.
설문지를 작성하기 전, 전체 학급의 활동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 수업 전 과정을 공유하였다. 기록한 사진과 영상은 학급 컴퓨터에 넣어주었고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져가도록 했다.
다음은 세 번째 시간에 작성한 비밀기지 만들기 설문 내용과 아이들이 작성한 설문 결과를 스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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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에서 자신이 했던 일을 적어보세요.
(이 부분은 각자 활동한 내용을 적은 것이라 생략한다.
2.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에서는 조직별로 여러 가지 만들기를 했습니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힘들었던 점과 그 이유를 적어보세요.
* 아쉬웠던 점은 주로 많이 못 만들어서 아쉬웠다. 수업이 짧았다. 그 외 다른 반 한 것 위에 하다 보니 내 맘대로 못했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
3.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은 하나의 기지를 각 학급이 이어서 릴레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업했던 학급이 생각한 것과 최종 완성된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이와 같은 수업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세요.
4. 이 수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거나 알게 된 것, 배우게 된 것이 있다면 적어보세요.
* 그동안 아이들은 ‘미술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나 봅니다. 미술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5.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설문 결과가 모두 호평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박스가 이렇게 더러운 줄 처음 알았다. 내가 만든 우체통을 다음 반이 변기로 만들어서 속상했다. 우리 조직은 왜 구석지에 좁은 땅을 가졌나? 조직 이름이 아망떼가 뭐냐? (아망떼는 박스에 쓰인 상품 이름인데, 이 상자로 출입구를 만들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등등 투덜거리는 설문도 적지 않았다. 설문 결과가 이렇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과자파티 시간이 시험 기간이었고, 모처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설문 시점도 중요하다!)
수업을 체험하는 수업
미술교사로서의 고민 중 하나는 ‘체험’에 대한 것이다. 체험이라고 하면 교육과정에서의 체험이나 학생들의 체험학습, 수업에서 실습, 동기유발 같은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에게 ‘체험’은 미술 교육의 본질 같은 것이다. 아마도 교육학적 용어나 미학 용어로 뭔가 적절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가방끈이 짧다 보니 딱히 적절한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으니 그냥 ‘체험’이라고 부르겠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과정 중심 수업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체험’이라는 단어와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단어는 ‘몰입’ 정도가 아닐까 싶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미술 수업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교사가 제시하는 학습 목표를 찾아가는 추리소설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평가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학생들에게 수업이란 교사의 의도에 맞추어 정답을 찾아가는 문제풀이의 과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업의 학습 목표란 수업이 가지고 있는 가치이면서 한계임에 분명하다.
한때, 새로운 수업, 재미있는 수업 소재에 목말라한 적도 있었고,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미술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꽤 어려운 수업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아이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나 참 괜찮은 미술교사야 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완성 작품의 수준과 미술 수업의 가치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기 시작했다. 만일 아이들이 스스로 가치를 확신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사의 취향에 맞춰 정답 찾기를 하고 있었던 거라면, 수업의 곳곳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뭔가를 배웠을 것이라고 수업의 가치를 역설할 수 있을 것인지 최근의 나로서는 확신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체험이라고, 미술 수업의 목표는 미술 수업 자체를 체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술 수업을 미학적으로 체험하는 것.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수업이 과연 가능할까? 누가 알겠는가? 내가 상상하는 수업은 언어적 수사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체험’은 현재 내 수업의 화두일 뿐, 그런 이상적인 수업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자신하지 못하겠다. 다만, ‘체험’하는 수업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게 만든 수업의 경험이 있었다면 바로 ‘릴레이로 만드는 공간 체험 수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1. 이 수업은 2015년,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2. 총 수업 시간은 2주간, 학급당 4시간, 10개반 40시간이었습니다.
3. 첫 주-만들기, 두번째 주-놀기와 수업 평가를 하였습니다.
4. 본 글은 전국미술교과모임 회지에 발표한 원고를 재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