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체험수업인가?
‘체험’의 힘은 체험이 수업의 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데 있다. 동기유발의 측면에서 본다면 체험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유발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체험은 동기유발 측면보다 좀 더 강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수업 주제를 자기화시킨다고나 할까?
시대착오적이었던 야생화 수업
색체 수업 중 <야생화 그리기> 수업을 예로 이야기해보겠다. 한국화 채색화 기법의 <야생화 그리기> 수업은 지난 2000년 초부터 진행했으니, 매년 수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근 10년 넘게 진행해온 익숙한 수업 중 하나다. 그런데, 2014년의 경우, 예년과 달리 아이들의 수업 참여가 매우 시들함을 느꼈다. 총 8차시 수업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수업 자체에 대해서도 물론, 야생화에 대해서도 큰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고민하면서 수업 마무리에 들어갔는데, 마지막 8차시는 그림 여백에 수업에 대해 느낀 점, 그리는 꽃에 대한 느낌을 짧은 글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그 시점에서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갑자기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고, 그림을 대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그 시점이 바로 아이들이 그림을 자기의 것으로 대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까지의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교사가 제공하는 사진을 보면서 낯선 한국화 물감과 붓으로 타자화된 상태에서 수업을 참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넣는다는 것은 타자화가 아니라 그림을 자신의 것,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야생화 수업을 처음 시작했던 2004년과 2014년은 10년이란 시간적 간격이 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0년 초의 아이들은 야생화라는 수업 소재가 하나의 시각적 자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야생화라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자극이 될 수 없다. 영상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다양한 자극은 일상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즉, 같은 미술 수업 주제라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담지 못하면 그 생동감을 영원히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술 수업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나 기법의 전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미술 수업은 미술 그 자체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때 체험의 요소가 사라진다면 아이들은 수업을 교사의 의도에 맞추어 정답을 찾아가는 문제풀이의 과정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건 교사의 의도도 아닐뿐더러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대단히 불행한 ‘사건’ 임에 틀림없다.
릴레이 수업으로 '비밀기지 만들기'
2015년 5월에 진행한 공간 만들기 수업인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이다. 이 수업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수업이 끝난 후 체험 보고서를 적게 하여 포트폴리오에 넣게 하였지만 수업 과정에서는 어떤 평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수업의 참여도는 99.9%를 웃돌았다.
비밀기지 만들기 수업은 서울의 한 미술 선생님 수업을 전해 들으면서 구상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공간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런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박스를 한 두 장씩 가지고 학교에 온다. 그리고, 가져온 박스를 활용해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큼의 집을 짓는다. 그런데, 그 수업은 한 시간이라는 수업 안에서 완성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고, 그렇다면, 미술수업에서 공간(건축)을 경험하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겼다.
나는 그것에 대한 고민의 해결책으로 학급별 릴레이 수업이라는 형태를 생각해보았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건축의 다른 이름으로)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으로 그것을 완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업을 시작하는 학급에서는 미술실이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을 구획하고, 만들어질 공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공간은 땅이라고 하는 물질적 조건에 구애를 받는다. 좀 더 쉽게는 미술실이라는 공간을 분단별로 나눌 때 어떤 모양, 어떤 크기로 나눌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두 번째 학급부터는 이전 학급의 공간을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이고 공간을 구축해나간다. 각 학급은 수업이 끝난 후 자신들의 구상을 메모로 다음 학급에 전달할 수 있다. 이 메모는 다음 학급에게 무시될 수도 있고 존중될 수도 있다. 먼저 수업을 마친 학급은 자신들의 구상을 간단한 메모로 다음 학급에 전달할 수 있다. 각 학급은 그 학급만의 독자성을 가질 수 있으나 먼저 수업한 반이 만든 공간에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전체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각 학급은 두 번째 시간에 완성된 공간을 볼 수 있다. 이때, 자신들이 만들었던 공간 구상이 다음 학급을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볼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한 감상문을 적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내가 처음 구상한 전체 수업 기획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한 권, 일본의 오가타 다카히로라는 사람 <비밀기지 만들기>라는 제목의 작은 책에서 힌트를 얻어 수업의 제목을 정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릴레이 수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각 반의 수업 시간을 합치면 총 20시간이 되는데, 나중에 참여하는 반은 할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려는 우려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할 일을 찾았고 먼저 수업한 학급이 주로 공간을 구획하고 벽을 쌓고 나누는 활동에 집중했다면 나중에 수업한 학급은 주로 공간을 꾸미고 성격을 규정짓는 활동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더 이 수업을 하자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업과정에서 교사인 내가 한 일은 아이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부족한 물품을 보충해주는 일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의논하고 할 일을 찾아갔으며, 서로 할 일을 지정해주었고 참여하고 싶어 했다. 왜 그랬을까?
먼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이 수업의 제목이 <비밀기지> 임을 알게 된다. 제목이 주는 은밀함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상상을 시작한다. 즉, 수업 그 자체를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수업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체험을 체험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구상하고 구상한 것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래서 아이들의 소감문 한쪽에서 ‘선생님이 정해준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표로 나아갔기 때문에 즐겁게 참여한 것이다.
나는 수업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공간과 건축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릴레이 수업이란 수업방식을 통해 3학년 전체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는 체험의 요소가 단순히 동기유발의 성격이 아니라 수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 요소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배낭여행을 떠나자
배낭여행을 떠나자는 원래 역사과 선생님과 함께 공동수업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로의 진도 조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혼자 진행하게 되었다. 전체 수업과정은, 자료 조사(미술책, 역사책)-배낭여행을 위한 비행기 티켓과 숙소 정하기-자료 찾기-이미지 조사와 가공-팸플릿 제작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수업은 총 8차시 정도로 진행되었는데 전체 과정에서 아이들 개인차는 다소 있지만 대체로 수업 참여도는 무척 높은 편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배낭여행을 위한 비행기 티켓과 숙소 정하는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배낭여행을 수업을 넘어서 현실 속의 어떤 것으로 여기게 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생각이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제작 후기에서 실재 배낭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고 적기도 했다.
체험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몇 가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수업이 체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험이란 내가 직접 겪는 것이다. 즉 나의 경험을 통해서 미술적인 방식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란 뜻이다. 미술 작업 과정이 사고하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면 미술 작업의 소산인 작품은 사고와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술작업의 최종 결과물인 작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미술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확장과 감각의 확장이야말로 미술교육이 지향해야 할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