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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29. 2018

8-1 닮음의 미학

도화지는 왜 네모난 모양일까?
전통 회화의 상당 부분은 네모난 모양을 가진 재료 위에 그려져 왔다. 지금도 학교에서 회화 관련 단원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네모, 네모다. 도화지가 그렇고, 캔버스가 그렇고, 한지가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네모난 모양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다. 그림은 처음부터 네모난 모양이었을까?  
현실과 미술과의 경계가 없었던 원시미술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기원전 15000년에서 1000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굴에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가득 그려져 있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라스코 동굴벽화와 더불어 원시 미술을 대표해왔다. 그런데,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그려진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원시인들은 이 그림들을 왜 그렸을까?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더불어 원시시대를 대표하는 조각품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높이 11cm에 불과한 작은 조각상이 그것이다. 그들이 이런 기형적인 여인 조각상을 만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원시시대 미술품이 제작된 동기에 대해서는 유희설, 주술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사실 문자로 기록된 사료가 없는 선사시대의 정확한 진실은 오직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뿐. 수 만년이 흐른 지금, 우리로서는 제한된 정보로부터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원시시대는 예술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동굴벽화에 짐승을 그려놓음으로써 그들은 현실의 소와 사슴을 벽에 가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벽의 짐승을 사냥함으로써 현실의 짐승들을 사냥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풍만한 가슴과 배를 강조한 조각품을 지니고 다님으로써 실제로 다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원시시대에는 이처럼 미술과 현실, 주술과 현실이 하나였던 시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미술이 네모나거나 세모날 필요조차 없었다. 미술과 현실이 하나였으므로. 미술과 현실 그 사이의 경계는 당연히 필요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이 시기의 미술은 삶의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벽이거나 혹은 천정이거나.


조각과 회화의 독립

회화와 조각이 현재와 같은 형태, 즉 독립된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천년 왕국이라는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건축으로부터 독립했다.


중세 때까지 회화와 조각은 건축의 부속물로써의 성격이 강했다. 즉, 성당과 왕궁 건축장식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미술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의 지위 역시 당시로서는 장인의 위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의 기술자, 즉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묘사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혹은 조각을 잘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장인이었던 것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받아야 했고,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할 때면 세세한 것까지(심지어 물감의 색깔까지) 일일이 따져서 계약을 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 분수. 건축물의 벽면에 조각이 들어갈 자리를 미리 정해놓았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예술가의 달라진 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전과는 달리 예술가의 “창조”란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의 달라진 위상은  네모난 틀로 둘러싸인 그림이라는 것이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로 인정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한 기술력의 결과로써의 미술품, 또는 회화가 아니라 마치 신이 세계를 창조했듯이 미술이라는 새 세계를 예술가가 창조한다는 사실이 인정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손가락 카메라(학생작품)

이제 손가락을 들어 네모난 공간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나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을 액자로 둘러싸보자. 액자로 둘러싼 순간 대상은 현실과 다른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갖는다. 나의, 우리의 선택을 통해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이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약속

그림은 문화적인 것이다. 그림 속에는 무수히 많은 약속이 숨어있다.


아래 그림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의 그림이다.

왼쪽 두 점의 그림은 우리나라 1학년 어린이의 그림이고, 오른쪽 그림은 노르웨이 7세 어린이의 그림이다. 그런데, 세 점의 그림 아랫부분에 공통되게 가로로 그어진 선들을 볼 수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이 선이 땅을 의미함을 바로 알아차린다.


그런데, 이 선 하나만 가지고 우리 모두가 땅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볼 때 하나의 약속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즉, 네모난(혹은 세모이거나 다른 모양이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을 볼 때 가로선, 수평선을 기준으로 아랫부분은 땅으로, 윗부분은 하늘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그리게 된다면 마치 지구에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땅에 해당되는 도화지의 아랫부분에 수직(혹은 수직의 느낌으로)으로 그리게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을 도화지의 대각선 방향으로 그리게 되면 어떤 느낌이 날까? 아마도 넘어지는 것으로 느끼고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요약
▷ 그림은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이다.
▷ 테두리-표현된 대상의 영역을 주변과 분리, 고립시키는 벽.
▷ 경계를 만듦으로써 그림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 네모난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원근법으로, 현대 사진 역시 투시 원근법의 확장에 다르지 않다.
▷ 서양 미술에서, 건축의 일부분이었던 회화가 르네상스 이후 독립된 예술로 인정을 받으면서 점차 벽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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