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모방하기 위한 예술가의 다양한 노력들
선원근법의 탄생
흔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비교하면서 신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화하였다고 이야기한다. 미술에서 이와 같은 세계관의 변화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진 선 원근법은 건축가 부르넬레스키가 처음 고안하였다. 현재 선원근법(투시 원근법)은 건축 설계에서는 물론 회화, 사진, 영상 예술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런 투시 원근법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선원근법의 발견이 미술사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원근법의 발견은 단순히 현실 세계를 보다 잘 묘사하게 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원근법은 신 중심 세계의 종말을 알리면서 인간 중심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미술에 있어서의 혁명적인 보는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아래 그림은 각각 중세 때 지어진 성당의 장식 조각과 르네상스 시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회화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왼쪽 조각품의 그리스도는 사도들보다 훨씬 크게 묘사되어 있으나 오른쪽 그림에는 작은 크기로 묘사되어 대조를 이룬다. 이런 묘사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세 시대의 큰 것은 위대한 것, 권력이 있는 것, 혹은 신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종교화에서는 하느님, 혹은 예수님> 마리아> 성인> 보통사람들의 크기로 묘사되어있고, 세속화에서는 왕이나 영주, 제후> 기사> 평민이나 농노의 크기로 묘사되어있다. 중요한 것(신과 가까운 것)을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간적인 것)을 작게 그리는 중세의 묘사 방식은 고대 회화에서도 볼 수 있다.
중세의 원근법, 동양의 원근법
위 왼쪽 그림은 고대 이집트 벽화 <수변의 수렵>이다. 중앙의 왕, 오른쪽의 왕비, 다리 사이의 공주는 신분, 혹은 권력의 차이에 따라 크기의 변화를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고구려 시대 안악 3호분의 묘 주인의 초상이다. 여기서도 역시 같은 형태의 묘사 방법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묘사 방법은 근대 이후 서양미술이 유입되기 전까지 종교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용주사 삼세여래도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김홍도가 그린 <서당도>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 원근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역 원근법이란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그리는 일반적인 원근법과는 달리 가까이 있는 것을 작게, 멀리 있는 것을 크게 묘사하는 원근법을 말한다.
<서당도>는 서당에 모여 앉은 학동들을 훈장님이 엄하게 꾸짖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로, 김홍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우리는 <서당도>를 감상할 때 역 원근법을 사용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 채 감상해왔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김홍도의 <서당도>를 보면 오른쪽에 앉은 학동들이 아래로부터 차례로 어린아이에서부터 갓 상투를 튼 새신랑까지 순서대로 앉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들이 어린 순서에서 성장한 순서로 앉아있는 것으로만 여겨왔던 것이다. 그러나 훈장님과 맨 위 새신랑의 체구를 비교해보면 김홍도가 감추어놓은 속임수는 금방 드러난다. 훈장님이 멀리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크게 묘사가 되어있는 것이다. 여기에 선을 그려보자.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서양과 다른 동양만의 묘사 방식은 산수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중국 원나라의 화가 조맹부의 <추색>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가을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자연의 묘사를 보면 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양한 시점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서양의 투시 원근법과 같이 하나의 시점으로 자연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화가가 이동을 하면서 다양한 장소를 순차적으로 하나의 화면에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묘사 태도는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 선의 그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우리나라 시골 풍경을 찍은 다음 이미지 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정선의 진경산수화인 <장안사>이다.
풍경 사진은 투시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으며, 가까운 곳과 먼 곳의 거리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때문에 멀리 있는 마을은 물론 나무보다 훨씬 높은 것이 분명한 산 조차도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보다 훨씬 작게 찍혀있다. 그러나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는 가까운 곳의 나무나 멀리 있는 장안사 건물이 모두 화가와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묘사되어있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인간 중심이 아닌 자연 중심으로 묘사하려는 태도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투시 원근법의 의미, 세계관의 변화
모든 것을 신 중심으로 판단했던 중세와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는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재편한다. 즉, 신과 가까운 존재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것이 위대한 것이다. 따라서 나와 가까운 사람이 크게 묘사되고 나와 멀리 있는 그리스도는 비록 신적인 존재일지라도 작게 묘사되는 것이다. 즉, 신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선원근법, 즉 기하학적 원근법(투시 원근법)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더욱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한 발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묘사의 문제 이전에 서양 가치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미술시간은 물론, 세계사 시간에 미친 듯이 외웠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차이점, 즉 신 중심의 세계관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 이 두 세계관의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