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작은 정원
‘띵동’
올 손님도 없고 기다리는 택배도 없는데, 의아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니 양팔 길이의 기다란 택배 상자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이게 뭐야?”
“H 언니가 엄마한테 보낸 선물이래.”
“세상에 웬 꽃이야. 예쁘다.”
며칠 전 사촌 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다. 엄마에게 작약꽃을 선물하고 싶다 했다. 특별한 날도 엄마 생일도 아닌데. 언니에게 이유를 묻진 않았지만 짐작은 됐다. 난 친정에 내려온 뒤로 엄마와의 이야기를 종종 인스타에 올렸었다. 재작년 병마와 싸운 엄마가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우리가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아마 그런 엄마에 대한 응원 내지는 잘 살아주고 있음에 대한 감사하는 언니의 세심하고 예쁜 마음의 선물이었으리라.
"엄마, 꽃 들고 서봐. 사진 찍어서 언니한테 보내주게."
작약꽃을 들고 있는 엄마의 입가가 수줍은 미소로 활짝 피었다. 엄마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노동이나 큰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꽃선물 한번 못한 딸이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킁킁~ 작약꽃은 향기가 참 좋아. 엄마가 고마워한다고 H한테 꼭 얘기해 줘."
엄만 유난히도 식물을 좋아한다. 한때 우리집 베란다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들로 가득 찼었다. 엄만 따스한 봄이 되면 으레 단골 꽃집에 가서 식물들을 데려왔다. 키가 크고 작은 식물, 꽃이 피는 식물 그렇지 않은 것 등등... 베란다는 엄마의 작은 정원이었다. 식물들에게 시시때때로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볕을 쐬어 주며 정성을 쏟았다. 정성을 쏟은 만큼 식물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짙고 무성한 초록잎과 형형색색의 꽃을 틔었다. 그 일들은 단조로운 엄마의 일상에 숨통을 틔게 해주는 일들이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베란다의 식물들이 시들고 하나둘씩 화분들은 사라져 갔다. 엄마를 대신해 물을 줄 사람도, 관심을 쏟을 여력도 우리에겐 없었다. 엄마의 건강과 함께 생기가 넘쳤던 정원은 휑해지고 쓸쓸해졌다. 그런 베란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의 건강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가 정말 많이 아팠구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엄마, 이제 화분 안 사? 예전에 좋아했잖아."
"옛날엔 좋아했는데. 아픈 뒤로는 가꾸는 게 귀찮고 싫어."
휑한 베란다가 보기 싫어서, 엄마에게 화분을 사자고 물어봤지만 엄마는 싫다고 했다. 엄마도 사라져 가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헛헛했던 걸까.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보며,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무서웠던 걸까.
‘엄만 이제 아름다운 것만 보고 예쁜 생각만 해. 꽃 선물 내가 많이 할게. 특별한 날이 꼭 아니어도.'
작약꽃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나지막히 읊조렸다. 이제 엄마는 예쁜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했으면 좋겠다고....
꽃병에 꽂혀있는 연분홍의 작약꽃들이 얼마 안 돼 금세 꽃을 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