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취미를 꿈꿔요

-오일파스텔

by 꿈꾸는기리니

석 달 전부터 친정에 내려와서 지내고 있다. 8개월 전 아이를 낳고 부모님께 아이를 보여드리려 내려왔다가 잠시 얹혀살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삶이 어느 정도 적응되고 시간적 여유도 조금 생길 때였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SNS 게시물이 있었다. <하루 7분 오일 파스텔> 온라인 그림 모임이었다.

‘7분만 투자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가능한 건가. 해볼까.’


난 어릴 적부터 손재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 때 무언가를 그리고 오리고 붙이는 미술 수업, 유독 바느질이 많았던 가정 수업은 내가 금손이 아닌 똥 손임을 다시금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손만 대면 뚝딱 작품을 만들어내는 친구들은 장인처럼 보였고 못내 부러웠다. 동시에 그런 부류의 일들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했다. 한마디로 내 관심 밖이었다. 그동안의 나라면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심코 지나쳤을 테지만 문득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엄마도 함께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재작년 엄마는 혈액암을 진단받았었다. 삶에 대한 기대도 한 줄기 희망도 없었던 엄마. 손녀가 태어나고서야 절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가고 있지만...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오래도록 생각해왔던 터였다.

언젠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

"글쎄."

"엄마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은 없어?"

"그러게. 남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데. 나는 그런 거 없어."




그러고 보니 살면서 엄마랑 함께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여행을 같이 간 적도, 다른 딸들처럼 엄마와 쇼핑을 하며 이 옷은 나이 들어 보이고 저 옷이 더 어울린다는 등의 살가운 오지랖을 부려본 적도 거의 없다. 무뚝뚝한 딸로 엄마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걸 더 좋아했다. 꿈을 찾겠다는 명목 하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됐을 때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하는 엄마를 귀찮게 여겼다. 그런 나에게 엄만 이따금 서운한 듯 이야기하곤 했었다.


"다른 집 딸들은 엄마랑 친구처럼 잘 지낸다는데, 넌 무정해서 시집가면 엄마한테 연락도 안 할 거야."


나를 향해 서운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엄마의 마음을 무심코 넘기기 일쑤였다. 그땐 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엄마의 삶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었다. 내 꿈, 난 누구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몹쓸 병이 찾아왔다는 걸 알았던 날 푸쉬쉬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고향에 내려와 엄마를 간병을 하면서도 앞으로는 뭘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의 생각들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엄마와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 오늘도 엄마와의 시간이 주어졌고 함께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 온라인 그림 모임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엄마와 난 그림을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케치북에 우리 다운 꽃이 차곡차곡 늘어가는 것만큼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쌓여갔다. 엄마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이야기했었던 게 얼마 만인지. 예전에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공감은 쉽게 하지 못했었는데... 어느덧 우린 공통의 관심사로 같이 그림을 그리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 내가 그린 이 꽃 어때?”

“엄마 너무 예쁘다. 나중에 우리 같이 전시회 열까?”

“더 연습해야지. 이 실력으론 안 돼.”


늘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다던 엄마의 삶은 바짝 말라버린 무미건조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엄마의 삶에 생기 있는 꽃이 활짝 피어났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렵고 생각만큼 손은 따라주지 않지만. 잘 그려지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날도 있지만 그런데도 엄마와 계속 그려나가고 싶다.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엄마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고, 본인을 꼭 닮은 꽃 그림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는 그 모습이 좋았다. 똥 손을 면치 못하고 투덜거리기도 하며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다운 그림을 매일 그려나가 보고 싶다. 엄마와 나의 시간의 공백을 채워나가고 싶다. 그동안 못다 누린 시간을. 진하고 밀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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